발달장애 부모들이 퍼뜨리는 ‘선한 영향’

연중 기고 l ‘사회적 경제를 다시 본다’ ⑫
최경민ㅣ아해하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등록 : 2023-12-07 15:40
아해하제 조합원들이 카페 운영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강화도 큰나무카페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해하제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전 생애에 걸쳐 비슷한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

20대 발달장애 자녀를 둔 아해하제사회적협동조합(아해하제)의 한 이사의 말이다. ‘감내’라는 표현에 담긴 외로움과 헌신이라는 두 단어는 발달장애 부모 모두가 공감하는 단어이지 않을까 싶다.

발달장애 부모들이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협동조합으로 모여 이를 극복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 최아무개씨의 자녀는 학령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여러 시설의 문턱을 두드릴 때마다 다양한 이유로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했다. 몇 년 동안 가정에서만 지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출구 없는 깜깜한 터널 속에 갇힌 채 고립되어갔다. 그러던 중 지역사회 자조모임이었던 아해하제를 통해 발달장애 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힘과 용기를 내 참여하게 됐다. 아해하제사회적협동조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아해하제는 ‘아이들의 미래’라는 순우리말이다. 2019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청년 등 협동조합 창업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했다. 그다음 해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하면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돌봄, 취약계층 고용, 사회서비스 사업들의 기반 조성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의 의미 있는 성과도 냈다. 장애인복지시설 운영을 통해 중증발달장애인 네 명이 자립에 성공했다. 발달장애 관련 기업 최초로 식품진흥원과 손잡고 소스 생산과 판매로 중증 발달장애인 두 명을 직접 고용하는 실적을 이뤄냈다. 서초구 지정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제공 위탁기관에 선정돼 21명의 성인발달장애인에게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복지사업부터 사회적경제 영역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엔 두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협동조합으로서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사업마다 특성에 맞는 전문가의 참여와 지역사회 인프라를 보다 폭넓게 이용할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작용했다. 또한 발달장애 당사자와 가족의 적극적인 참여로 사업의 당위성을 높일 수 있었던 점도 주효했다.

아해하제는 장애인이 속한 지역사회의 환경적 조건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에 발맞춰 사회적경제를 활용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역사회 발달장애 인식개선과 장애인 가족 지원사업, 다른 기업과의 네트워크 및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아해하제의 역할이 커질수록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협동조합 설립과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아해하제도 해마다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컨설팅과 당사자와 가족의 자조모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설립을 독려하고 있다.


실제 발달장애 가족이 설립한 협동조합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해하제도 회원사로 참여한 ‘발달장애지원 이종협동조합연합회’는 전국에 퍼져 있는 발달장애 관련 협동조합들의 연합체다. 지난 4월 정식 출범과 함께 6월 비전 선포를 기점으로 회원사 가입 문의도 늘고 있다. 연합회는 21개 협동조합이 모여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이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지원’이라는 모토로 운영되고 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협동조합 설립과 사회적경제 활동에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자녀의 삶에 필요한 부분의 운영에 직접 참여해 당사자와 가족의 삶을 보다 진취적으로 계획하려는 의지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당사자 가족의 운영 참여는 지역사회 발달장애인을 발굴하고 서비스를 지원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효과도 내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비장애인의 고용,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도 주고 있어 긍정적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아해하제는 지역사회와 발달장애 관련 협동조합과 연대하고 상생하여, 후배 기업을 선도하며 성장하고자 한다. 아울러 발달장애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사회 발달장애인이 살아온 환경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누리며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키워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고자 한다.

최경민ㅣ아해하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