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장애-비장애 함께하는 일터’를 꿈꾸다

⑮ 양평슈타이너학교 졸업한 딸과 함께 ‘옥수수인형극단’ 창단한 김현숙씨

등록 : 2023-12-07 17:31 수정 : 2023-12-07 23:57
김현숙 바꿈살이 수공예 공방 대표. 강정민 작가

아이 발달장애 인지한 뒤 교육에 최선

서울서 경기도로 대안학교 찾아 이사

학생들 대상 수공업 수업 맡아서 하고

대학 편입해 언어재활사 자격증도 따


막내 졸업한 뒤 인형극단 만들어 활동

장애-비장애 소통 ‘바꿈살이 공방’ 열어


딸이 유치원 단기직 취직하며 ‘웃음꽃’

“이제 연극 등 제가 좋아하는 일도 해요”

경기도 양평군에서 ‘바꿈살이’ 수공예 공방을 운영하는 김현숙(55)씨는 하는 일이 많다. 그는 옥수수인형극단 대표이자 수공예 강사이고 유튜브 채널 운영자다. 육아로 일을 그만두었던 김씨가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김씨는 스물다섯 살에 오빠네 서점 일을 도와주다가 거기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동네 서점을 차렸다. 그런데 아이 중 막내가 남달랐다. 막내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서점을 정리하고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2001년에 4살인 막내를 강동구 곡교어린이집에 입학시켰다. 곡교어린이집은 국내 최초로 장애 통합교육을 시도한 곳이다. 그는 막내를 일반 학교에 입학시키면 아이가 행복하기 어려울 거 같았다. 대안을 찾다가 경기도의 발도르프대안학교에 아이를 입학시켰다. 발도르프 교육은 1919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에 의해 시작된 대안교육이다. 사고(머리), 감정(마음), 의지(손과 발)가 조화롭게 균형 잡힌 인재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도르프 인형. 강정민 작가

김씨는 발도르프 대안학교 학부모 대상 수공예 동아리를 이끌며 지도했다. 그는 발도르프 필통을 실물이 아닌 사진으로만 보고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막내가 4학년 때 김씨는 아이를 일반 학교로 전학시켰다. 전학 간 학교는 학년당 한 학급만 있는 작은 규모였다. 당시 학교엔 특수교육 보조원이 있어서 막내가 적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막내는 새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힘들어했다.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때마침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발도르프 학교가 세워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2009년 양평슈타이너학교가 세워지자 그는 막내를 그 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가 개교할 때 전교생이 9명으로 규모가 작았다. 학교는 학부모의 손이 필요했고 그는 수공예 수업을 맡게 됐다. 그는 여러 유형의 발달장애 학생들을 만나면서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잘하려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5년 뒤 그는 원광디지털대 언어치료학과에 편입했다.

3년이 지나 막내가 12학년으로 양평슈타이너학교를 졸업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졸업한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발도르프 인형으로 공연하는 극단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막내와 막내의 졸업 동기 그리고 김씨 이렇게 셋이 ‘옥수수인형극단’을 창단했다.

소품인형 떼굴떼굴 떽떼굴 할아버지. 강정민 작가

눈·코·입을 단순화해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높이는 발도르프 인형을 만들고 대본을 준비해 인형극 연습을 했다. 그리고 어린이집으로 공연하러 다녔다. 공연을 좋아하는 어린이들 모습을 보면서 단원들은 감동을 느꼈다.

2021년, 김씨는 원광디지털대 언어치료학과를 입학한 지 6년 만에 졸업했다. 졸업 뒤 2급 언어재활사 자격증도 땄다.

“학생이 느닷없이 화를 낸다는 말을 교사들이 가끔 해요. 학생이 화낸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다만 그걸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까 교사가 ‘느닷없이’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교사는 발달장애 학생들과 수업할 때 말로 지시한다. 비장애인의 접근 방식이다. 학생에 따라서는 시각적 자극인 숫자나 색상을 이용해 작업을 구조화하면 교사의 다른 개입 없이 과제를 잘해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 방법을 그는 공부하며 배웠다.

학업을 끝낸 그는 인형극단과 바꿈살이 수공예공방의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김씨는 공방에서 학생과 성인을 상대로 수업하고 발도르프 인형 등을 네이버스토어(naver.me/5kqU9YJk)에서 팔고 있다. 그는 바꿈살이 공방이 장애인·비장애인 구별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나아가 장애인의 일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수공예 활동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어릴수록 자연물로 수공예를 하면 세상의 모든 게 연관돼 있음을 알게 돼요. 나도 세상의 부분이고 우리는 서로를 돌보면서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죠. 양털은 양에게 얻은 것이니 양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요.”

양모그림 ‘용을 제압하는 미하엘(미카엘)’. 강정민 작가

아이들과 이런 활동을 하고 싶은 선생님께 그는 도움을 주고 싶다. 바꿈살이 공방 유튜브 채널에 활동 영상을 올려뒀다. 올해는 ‘학년별 수공예’라는 커리큘럼을 짜서 선생님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리베라아카데미’라는 플랫폼에서 매달 셋째 주 화요일에 1학년은 뜨개질, 2학년은 코바늘뜨기 등의 수업을 한다.

“항상 막내가 성인이 되길 바랐어요. 그러면 아이는 독립하고 나는 엄마를 졸업하고 나로서 살아야지 별렀어요.” 6년 전, 막내가 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막내와 함께였다. 그런데 2년 전 동네 어린이집 원장님이 막내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원장님은 장애를 이해하는 데 일회성 교육보다 함께 생활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었다. 막내는 하루 3시간씩 아이들의 열을 재고 선생님을 돕는 일을 한다. “적은 월급으로 생활비도 내고 저축도 해요. 얼마 전엔 식구들 치킨도 사줬어요.” 김씨가 더없이 환하게 웃는다.

옥수수인형극단의 발달장애 청년 둘은 극단 초기엔 연습하는 걸 귀찮아했는데 지금은 먼저 연습하자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작년엔 춘천인형극제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올해는 우수상을 받았다. “어디를 가나 발달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데, 인형극을 하면서 달라졌어요. 인형극을 보고 감동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 걸 인식해요.” 막내도 스스로를 배우라 말하며 뿌듯해한다. 동네 마트에서 만난 어린이가 막내를 보고 인형극 해준 언니라며 반갑게 인사한 일도 있다. 유튜브에서 ‘옥수수인형극단’을 검색하면 배우들의 공연 모습을 볼 수 있다.

35회 춘천인형극제 아마추어 인형극 경연대회 우수상 수상 모습. 이다은(왼쪽), 김성민(오른쪽) 배우. 김현숙씨 제공

김씨는 잠시 가르치는 일을 그만둔 적이 있다. “그런데 저한테 수공예를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수공예를 하면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그걸 에너지로 삼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뒤로 가르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김씨는 발달장애를 가진 막내를 위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학교와 지역에 내놓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배워서 보탰다. 그는 막내를 포함한 청년 둘을 위해 인형극단을 만들었고 막내는 초단시간 근로자로 취업했다. 여전히 막내의 출퇴근을 도와주지만, 이 정도의 자립만으로도 기쁘다. “올해 제가 연극도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도 해요.” 이제 김현숙씨는 자신을 위한 삶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단단히 뿌리 내리길 바란다.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