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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봉사, 미안함 덜고 자부심 생겼죠”
금천구 독산4동 ‘나눔 가게’ 정심이발관 주인 김충태씨
등록 : 2023-12-14 14:35
금천구 독산4동 정심이발관 주인 김충태씨가 지난 6일 이발의자에 팔을 걸고 서 있다. 김씨는 지난 9월부터 지
역 노인을 위해 이발 봉사를 시작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나이를 먹어 크게 할 것도 없고 봉사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마침 지난 9월 초 독산4동 동장이 이발관으로 김씨를 찾아왔다. “차 한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동장님이 이발 ‘나눔 봉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김씨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김씨가 봉사활동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무료 이발을 몇 번 했어요. 협회에서 단체로 양로원에 가서 하는 봉사였죠.” 덕분에 2017년 3월 구청장 표창도 받았다. 김씨는 열일곱 살이던 1965년 이발을 배우기 시작해, 제주도로 건너가 서귀포에 있는 이발관에서 5년 동안 일했다. “호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4살 적어요. 이용사 면허 시험을 볼 나이가 안 돼 5년 동안 수습으로 일했죠.” 김씨는 호적 나이로 19살이던 1971년에야 제주도에서 이용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1974년 초 강북구 삼양동에 와 지내다, 1978년 경기도 성남을 거쳐 1980년에 금천구 독산동으로 왔다. 김씨는 2000년에 지금 있는 건물로 이사 온 이후 지금껏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이 공단지역이었어요. 공장에서 야근하고 아침에 퇴근하면서 이발하러 오는 손님이 많았죠. 그래서 30~40대 때는 새벽 5시에 문을 열었습니다.” 김씨는 20대 때부터 솜씨가 부쩍 늘어 단골이 많았다고 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세심해요. 멋 좀 부린다는 사람은 아무한테나 이발을 안 하잖아요.” 김씨는 “내 마음에 안 들면 손님이 괜찮다고 해도 다시 의자에 앉혔다”며 “신경 써서 더 해주고 하니 손님이 늘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손님들 발길이 점점 줄어들었다. 김씨는 “언제부턴가 이발관은 미용실에 밀려 영세업종으로 전락했다”며 “요즘 이발관을 찾는 손님은 50대부터 80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금천구만 해도 1990년대에 이발관 140여 곳 있었지만, 70여 개로 줄었다. 김씨도 처음에는 이발 의자 4개로 시작했지만 이제 2개로 줄었다. 정심이발관은 커트는 1만2천원, 머리까지 감으면 1천원 추가해 1만3천원, 커트와 염색을 같이 하면 2만5천원이다. 면도는 1만3천원, 이발과 면도를 같이 하면 1만5천원을 받는다. 김씨는 “동네 미장원도 커트를 1만8천원씩 받는데, 그에 비하면 저렴한데도 젊은 손님은 안 온다”며 아쉬워했다. 김씨는 멋을 알고 좋은 이발관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미식가’라고 불렀다. “멀리서 오는 단골손님이 아직 있어요. 이곳에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도 여기로 오죠. 저는 이런 손님을 ‘미식가’라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 멀리까지 가잖아요. 이발소도 마찮가지죠.” ‘미식가’가 멀리서 정심이발관을 찾아오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김씨는 65살이던 2014년 9월 한국이용사회 중앙회가 개최한 이용기능경기대회 창작커트 부문에서 금상을 받을 만큼 이발 솜씨가 좋다. “금천구지회에서 세 명 나가서 혼자 상을 받았어요. 정말 뿌듯했습니다.” 김씨는 “작품 하나 만든다고 생각하고 손님 머리를 만진다”며 “문 열고 나갈 때 멋있다고 하면 흐뭇하다”고 했다. “내년이면 이발을 한 지 햇수로 60년이 됩니다. 점점 나이를 먹으니 힘들어지죠. 나이는 속이지 못하나봅니다.” 오랜 세월 이발사로 살아온 김씨는 시력이 나빠지고 손가락 통증이 생겼다. “10여 년 전에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관리를 잘 못해 눈이 나빠졌어요. 그래서 세밀하게 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김씨는 “손가락 관절도 안 좋아 손님 머리 감겨줄 때 심하지는 않지만 통증이 있다”고 했다. “일터가 있으니 일하는 거죠.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노는 것보다는 낫죠.” 김씨가 이발 봉사를 시작했지만, 따지고 보면 서로서로 돕고 산다. “음료수 사오는 손님도 있고 농사지은 것 가져다주는 손님도 있어요. 밥 제때 먹으라고 당부하는 손님도 있고 이발관 바닥 쓸어주는 손님도 있어요.” 김씨는 “내가 나이 먹어 힘들다고 주위 사람들이 다들 내 일처럼 도와줘 정말 고맙다”며 “나이를 먹어 언제까지 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발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