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봉사활동을 하니 ‘찐’ 이웃이 생겼어요”

송파구 위례동 주민 50명 참여 뜨개봉사단 만든 김계현 단장

등록 : 2023-12-21 14:55
지난 5일 송파구 위례동주민센터 2층 회의실에서 위례뜨개봉사단의 김계현 단장(왼쪽 둘째)과 재능기부 강사 강보영(왼쪽 셋째)씨, 단원들이 지역 홀몸 어르신들께 설날 선물로 드릴 뜨개 모자와 목도리를 보여주고 있다.

2018년부터 주민자치회 활동하면서

22~23년 ‘나무 옷입히기’ 사업 진행

30~80대 참여주민 활동 속 ‘뿌듯함’

“음식·뜨개교실 등 봉사영역 넓힐 것”

“다가올 설날에 동네 홀몸 어르신들에게 드릴 뜨개 목도리와 모자 각 50개씩 만들어요.”

송파구 위례뜨개봉사단 첫 모임이 지난 5일 오전 위례동 주민센터 2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예닐곱 살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들과 중장년, 노년의 여성 약 50명이 자리했다. 단장을 맡은 김계현(57)씨가 활동 계획과 내용을 알린 뒤 재능기부로 참여한 강사 강보영씨가 코바늘 뜨개 방법을 설명했다. 김 단장은 늦게 온 사람들에게 빈자리를 안내하고 뜨개 초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베테랑’ 단원들 이름을 불러 이어줬다.

이날 김 단장을 같은 층에 있는 주민자치회실에서 인터뷰했다. 단원 신영숙(68)씨와 정소진(36)씨도 함께했다.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김 단장은 “단원들이 즐겁게 할 수 있게 잘 엮어주고, 봉사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참여자들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고 연령대 성향에 맞춰 말 걸기를 하며 관심을 보여준다. 정소진씨는 “이 모임에 오면 관심 받고 누구의 엄마가 아닌 제 이름으로 불리는 게 참 좋다”고 말했다.


위례뜨개봉사단은 ‘트리니팅’(나무에 뜨개옷을 입히는 것) 참여자 중심으로 50여 명이 모여 지난 11월에 만들어졌다. 트리니팅은 2018년부터 위례동 주민자치회 자치활성화 분과위원으로 활동해온 김 단장이 2021년 제안해 추진한 사업이다. 송파구 지역공동체 활성화 공모사업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진행했다. 사업 참여자들은 5월부터 10월 말까지 나무에 입힐 뜨개옷을 만들었다.

트리니팅 사업 참여 주민 50명이 모여 만든 위례뜨개봉사단의 첫 모임 참석자들이 뜨개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해 트리니팅 사업 참여자들은 형형색색의 털실로 풍선, 겨울에 핀 꽃망울, 위례동을 지키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행복을 꿈꾸는 고래 가족 등 80여 점을 만들어 동 주민센터 인근 나무들에 입혔다. 올해 참여자들은 피카추, 미키마우스, 뽀로로 등 캐릭터와 해바라기·파랑나비 등 100여 점을 만들었다. 이들 작품은 동 주민센터, 장지천 호수공원 등의 나무에 전시해, 오가는 아이들과 주민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고 있다.

트리니팅에 참여한 주민들은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육아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다’ ‘성취감을 느낀다’ 등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지난해 큰딸 집 근처로 이사 온 신영숙씨는 올해 트리니팅에 참여하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었다. 적적하게 지냈는데 좋아하는 뜨개질도 하고 이웃들을 만나면서 동네에 애착심도 생겼다고 했다. 손주들이 할머니가 뜨개질해 만든 송파구 캐릭터 ‘하하·호호’를 보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때 뿌듯함도 느꼈다.

2년 전 출산해 자녀 3명을 키우는 정소진씨는 직업군인으로 육아휴직 중이다. 지난해 아이들과 산책하며 우연히 트리니팅 참여자 모집 안내 펼침막을 보고 신청했다. 처음엔 뻘쭘했는데 김 단장과 다른 참여자들이 먼저 다가와줘 이내 편해졌다. 막내로 불리며 손재주가 많아 ‘금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씨는 “육퇴(육아 퇴근) 뒤 밤늦게까지 뜨개질해 몸은 힘든데 즐겁다”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이웃들 만나 힐링할 기회도 있어도 뜨개 모임을 하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트리니팅 사업 참여 주민 50명이 모여 만든 위례뜨개봉사단의 첫 모임 참석자들이 뜨개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 단장은 “참여자들의 눈빛에서 읽히는 마음을 모아 봉사단을 정식으로 만들게 됐다”고 했다. 봉사하면서 ‘찐’ 이웃사촌이 생겨 김 단장은 자기 삶도 풍요로워졌다고 말한다. 그는 “소진씨 같은 재주 많은 동생도 생기고, 아이디어 많고 적극적인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위례동에 살면서 복 많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봉사를 수행하는 마음으로 한다. “봉사하면서 칭찬만 받을 수 없다”며 “오해의 말과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기도 해 버텨내며 내공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하며 얻는 보람도 큰 힘이 된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나도 행복해지는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가고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봉사단 활동을 위한 운영비는 자발적인 모금으로 마련한다. 김 단장이 중심이 되어 단원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뜨개 재료는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트리니팅 사업에선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털실을 재사용해왔다. 일일이 푼 실을 빨아서 건조기로 말려 리폼하고, 실이 엉키면 끊지 않고 풀어 쓰고, 자투리 실도 다양하게 활용하며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다.

위례뜨개봉사단은 내년 설날에 이어 어버이날에도 외로운 홀몸 어르신들에게 뜨개 선물을 전할 계획이다. 뜨개뿐만 아니라 김치나 반찬 등 음식 봉사로도 넓혀갈 예정이다. 아이들 대상 무료 뜨개 교실을 열어 정서적인 안정감도 주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다. 김 단장과 두 명의 단원은 “봉사 방식을 더 다양화해 가족들도 함께하는 봉사단으로 발전해갔으면 좋겠다”고 입 모아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