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매운 족발 골목의 저녁 풍경.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동대문은 골목마다 이야기가 깊다. 흥인지문을 중심으로 옛 도시의 구획과 문화재가 그대로 남아 있고, 디디피(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를 중심으로 패션타운의 활기가 뒤섞인 덕이다. 길마다 시간이 교차하고 사람 흔적이 살아 있다.
김이 펄펄 오르는, 40년 된 맛집이 있는 골목에서 점심을 먹고 청계천 골목을 산책하면, 물길 따라 옛 서울이 펼쳐진다. 새벽 노동을 끝낸 시장 지게꾼의 보폭을 따라 600년 도성 밖으로 나서면, 골목은 선하게 먹고살았던 서민들의 집을 품는다. 우직한 장인들이 만들어온 동대문 맛집 골목부터 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의 집터까지. 동대문 골목 속으로 맛과 멋의 여행을 떠나보자.
40년 명인의 손맛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의 어느 식당이든 들어가 앉으면, 곧 세숫대야 같은 양푼에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펄펄 끓여 내온다. 양푼에 먼저 밀떡과 감자, 버섯류를 넣어 익혀 먹고 남은 육수에 칼국수까지 끓여 먹으면 온몸에 열이 후끈 오른다. ‘만능 소스’로 고기 맛을 끌어올리고, 채소에 겨자와 다진양념, 식당 비법이 담긴 국물장을 입맛에 맞게 섞으면 된다.
투박한 손으로 닭을 잘라주던 ‘원조 원할매 소문난 닭한마리’의 안복순 사장은 “여긴 40여 년 동안 닭만 요리한 명인들의 골목이야”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2만원 내외의 닭 한 마리를 보양식 삼아 2~3인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추운 겨울에 이만한 위안이 없다. (서울 종로구 종로5가 281-9 일대 / 1·4호선 동대문역 9번 출구에서 5분)
서울 속의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촌 골목’
광희동에는 ‘중앙아시아 음식골목’이 생겨났다. 키릴문자로 쓴 간판이 많은 이곳은 1990년대 한국·러시아 수교 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대문시장 물건이 고대의 실크로드처럼 이곳을 거쳐 중앙아시아 내륙으로 수출되는 동안, 자연스레 100개 남짓의 식당이 생기며 음식골목이 되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식 양고기 요리와 국수, 몽골식 양고기구이인 ‘호르호그’, 러시아식 흑빵과 수프 ‘보르시’(고기와 홍당무를 비롯한 채소를 넣고 뻑뻑하게 끓여 샤워크림을 끼얹어 먹음) 등이 골고루 유명하고 맛있다. 식료품점에서는 아침에 갓 구운 쫄깃한 빵을 싸게 판다. 대부분 현지의 재료와 향신료를 쓰기 때문에 맛이 진한 편이다. 여행지의 향수를 간직한 한국인 단골들도 제법 늘었다. 한 끼 식사를 하는 동안 대륙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 1가 120 일대 / 1·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에서 5분)
스트레스 날리는 ‘창신동 매운 족발 골목’
길 건너 창신시장에서는 진한 숯불 냄새가 지나가는 손님들을 붙잡는다. 동대문 도매상인들이 일하다 새벽이면 찾는 곳이 ‘창신동 매운 족발 골목’이었다. 상가 가까이에서 식사에 반주까지 하며 먹는 음식으로, 스트레스까지 풀어주는 음식으로 매운 족발만 한 게 없었다고 한다.
동대문상가에서 막 퇴근한 초로의 신발장수는 “둘이 오면 뒷다리 메뉴(2만5000원 안팎), 셋이 오면 앞다리 메뉴가(3만원 안팎) 양이 딱이야”라며, 단골의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혀가 얼얼해지도록 맵지만, 직화로 불맛이 고깃결마다 배어들어 젓가락질을 계속하게 된다. 주먹밥이나 달달한 쿨피스로 매운맛을 잡아주면 족발 한 그릇이 뚝딱 사라진다. (서울 종로구 종로51길 23 창신시장 내 / 1·4호선 동대문역 2번 출구에서 5분)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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