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언석 도봉구청장(오른쪽)이 지난 10월12~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LA 한인 축제의 브이아이
피(VIP) 바이어 초청 상담회에서 도봉구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도봉구 제공
1년 6개월 전,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봉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의욕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는 ‘구청장만의 결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아, 구청장이 이런 것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구청장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먼저 말해보면, 취임 당시 도봉구의 숙원사업인 GTX-C 도봉구간 지하화, 북한산 고도지구 완화, 우이경전철 방학역 연장, 도봉동 화학부대 이전부지 개발 등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이런 사업은 법적인 제약과 규제로 기초자치단체가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중앙부처, 서울시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기초자치단체의 권한만을 가진, 재정자립도도 높지 않은 도봉구가, 구청장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앙부처가 우리 구의 입장을 미리 이해하고 배려해서 좋은 선택을 해주기만을 마냥 손 놓고 기다릴 것인가? 결국 나는 우리 구를 외부에 세일즈하는 ‘영업맨’으로서의 역할을 자처했다.
한 기관의 장이 다른 기관에 부탁하는 것이 무슨 기관장의 일이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구청장의 책임과 결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업이라면 권한을 가진 다른 기관과 협상하는 것이 구청장의 책무 중 하나 아니겠는가? GTX-C 도봉구간 지하화는 대통령실, 국토교통부 장관, 서울시장을 수차례 만나 지상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소음, 분진 등의 문제를 호소하고 지하화 추진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 우리 구민이 힘을 보태며 결국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도봉구를 직접 찾아 GTX-C 노선 지하화를 발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에는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던 수많은 숙원사업이 임기 1년여 만에 해결됐다. 우이방학경전철 전략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됐으며, 북한산 고도지구와 준공업지역 재건축재개발 용적률 완화가 각각 33년, 20년 만에 완화됐다. 또 도봉동 화학부대 이전부지는 국기원 이전과 한옥마을 조성으로 결정 났다.
구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해보면, 얼마 전 한 매체는 나를 ‘미국까지 가서 양말 파는 구청장’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구청장이 왜? 미국까지 가서? 굳이 양말을? 판다고?’라는 수많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여기에는 우리 구 양말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도봉구는 전국 양말생산의 40%를 담당하는 양말산업의 메카다. 소규모 가내수공업의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최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구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장비 현대화와 경영 효율화 등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책 중 하나로 지난 10월, 3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축제와 연계해 해외시장 개척을 도모했다. 당시 참가한 양말업체뿐 아니라 지역 화장품업체도 준비해 간 품목을 완판하고 향후 수출계약도 체결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또한 같은 시기 오렌지카운티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한인비즈니스 대회’에서 오렌지카운티 한인상공회의소 노상일 회장과 도봉구 소재 기업의 해외시장 판로개척에 대해 논의했다. 내년엔 라스베이거스 소비재 전시회, 세계한인비즈니스 대회 참가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향후 양말산업뿐 아니라 지역 기업의 수출 판로 개척, 그리고 우리 구가 올해 전국 최초로 시행한 해외 청년 인턴십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선 8기 핵심공약인 중소기업 정책과 청년 정책은 기존 자치구에서는 하지 않던 새로운 분야까지 확장하고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공의 역할과 분야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우려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는다.
공공에 거는 시민의 기대는 더 높아질 것이다. 과거를 답습하며 구청장이 무슨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며 뒷짐 지고 있다가는 뒤처지기 마련이다. 이제 공공기관과 기관의 장은 스스로 새로운 역할을 만들고 몇 수 앞을 보는 행정을 해야 할 때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