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조류독감? 우리 닭은 그깟 감기 걱정 안 해요

사료 대신 ‘밥’ 주고 생긴 대로 키우는 바보숲 농장·방사해 키우는 맹추네 농장

등록 : 2017-02-02 16:10

생매장한 닭이나 오리, 메추리 등 가금류가 3300만 마리에 육박한다던 지난달 21일, 홍일선 시인과 통화했다. 그는 여주 점동면 도리 늘향골에서 닭 500여 마리를 키운다. 닭은 그의 생계를 책임져주고, 그는 그런 닭을 위해 감사의

헌시를 쓰는 시인이다.

“안녕하시죠?” “그럼요. 세상이 병들어 죽어가는데, 나만 이렇게 건강하니 미안할 따름입니다.” “아니, ‘바보숲 명상농원’ 닭님들이 걱정돼서….” “애고, 번지수를 잘못 짚었네. 솔직히 우리 닭님들은 저보다 더 건강합니다. 수천만 동류들이 생매장되고 있는데 저희들만 건강한 게 미안한지 좀 시무룩해 보이긴 하지만요.”

생매장되고 있는 가금류의 80%가 닭이고, 이 가운데 산란계(사람이 달걀 빼먹을 요량으로 키우는 닭)가 열에 아홉이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생긴 대로 살기만 한다면 무슨 탈이 나겠습니까. 조류인플루엔자야 사람에겐 감기에 불과한데, 사람이 감기 걸렸다고 떼죽음을 당하거나 전염이 우려된다고 무더기로 생매장당하지는 안잖아요. 지독하게 허약할 때나 위험하지. 닭도 건강한 여건에서 건강하게 자란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홍 시인은 닭에게 사료를 주는 게 아니라 ‘밥’을 준다. 달걀을 뽑아내기 위해 밤낮없이 반강제로 먹이는 것도 아니다. 닭의 본래 습성대로 해 지기 전 한 차례만 준다. 그러면 닭들은 마당이고 밭이고 산이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벌레도 잡아먹고 씨앗이나 모래도 주워 먹는다. 대신 그가 주는 밥은 좀 특별하다. 밥에 콩비지, 싸라기, 깻묵, 쌀겨 등을 발효시켜 섞어준다.

바보숲 닭들은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마당이나 밭, 뒷산 숲에까지 올라가 논다. 몇몇 개성 강한 놈들은 한동안 돌아오지 않기도 하는데, 대개 한두 달 지나면 병아리 4~5마리씩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바보숲 농장에서 닭들은 그야말로 ‘더 킹’이다.


홍 시인의 바보숲 농장은 ‘생계형’ 닭농장이다. 도시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나 가능하다. 도시나 마을 인근에서는 민원 때문에 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급자족을 목표로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시농부 김명희씨는 파주의 아파트 안에서 애완용으로 닭을 길렀다. 닭이 크고 숫자가 늘면서 지금은 아파트 앞 텃밭에 사과 궤짝 등으로 만든 우리에서 기른다. 암탉만 다섯 마리다. 하루에 두어 번 닭장 문을 열고 텃밭에서 놀 수 있게 해준다. 닭들은 두 아이가 충분히 먹을 만큼 알도 주고, 텃밭에 뿌릴 퇴비도 만들어준다. 아파트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닭장에 놀러온다.

고양시 선유동 ‘맹추네 농장’에서도 닭 15마리를 키운다. 인근 ‘우보농장’에서 시작한 닭농사는 벌써 6년째다. 닭장이 하도 고상해 이곳에선 ‘닭텔’이라고 한다. 다만 상주하는 회원이 없다 보니, 날마다 먹이와 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걱정인데, 열선을 이용해 한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도록 하고, 모이통에 모이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흘러나오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 해결했다.

맹추네 닭들도 방사해 키운다. 주중에 들르는 회원은 닭장 문부터 열어주는 게 일이다. 닭들은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밭으로 나갈 기대에 요란 법석을 떤다. 바보숲 닭님처럼 이곳 닭들도 해가 서산에 걸릴 즈음이면 알아서 닭텔로 들어간다.

일산 외곽의 ‘가좌농장’에선 회원제로 닭을 기른다. 이 농장에선 어린이농부학교를 개설해 운영하는데, 아이들을 위해 2012년부터 농장 한편에서 닭을 기르기 시작했다. 농업진흥청에서 육종한 토종 교잡종 ‘우리맛닭’, 바보숲 농장에서 토종 씨암탉과 유정란 30개를 분양받아 시작했다. 첫해 20여 마리가 부화했다. 가좌농장은 마을 옆인데다 도로변이어서 방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닭장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밭농사는 둘째였다.

지난해 60마리 이상으로 늘면서 계사용 하우스도 새로 짓고, 닭 펀드를 도입했다. 1계좌에 10만원으로, 1년에 달걀 120개를 제공하는 걸 목표로 했다. 현재 가입자가 50여 명 83계좌에 이른다. 겨울엔 닭들이 제 몸부터 돌보느라 알을 적게 낳긴 하지만, 산란은 꾸준하다. 최대한 자연에 준하는 환경을 유지하기 때문에 조류독감이나 방역이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농장지기 매산(김명원)은 심리학자다. 심리상담소와 연구소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농장에 전념한다. 올해는 새로 지은 2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마련해 닭을 200마리로 늘릴 계획이다. 보통 공장식 계사에선 닭 한 마리당 A4 용지 한 장 정도의 공간만 허용한다. 닭들은 옴짝달싹 못 하고 그저 밤낮없이 먹고 알만 낳아야 한다. 가좌농장 닭은 그런 닭들에 비해 50배의 활동 공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닭 하우스 앞에는 대형 고무통이 있다. 콩비지, 쌀겨, 깻묵 등이 섞여 발효되고 있다. 발효된 먹이는 소화 흡수율이 높고, 유익한 미생물이 많아 장을 튼튼하게 하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준다. 여기에 농장에서 나오는 농업 부산물이나 음식 잔반 등을 함께 먹이로 준다. 그렇게 먹고 누는 똥은 분해가 잘돼 우리 안에선 악취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왕겨, 톱밥, 낙엽 등을 섞어 수북이 깔아줬으니 악취는커녕 발효 과정에서 나는 향기까지 풍긴다.

가좌농장의 닭 펀드는 단지 회원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달걀을 공급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자원 순환의 고리를 완성하고 싶다. 버려지는 각종 농사 및 음식 부산물은 닭의 모이가 되고, 역시 버려지는 왕겨, 낙엽 등은 닭똥과 함께 발효돼 퇴비가 되며, 그 퇴비를 이용해 작물을 기르자는 것이다. 버려지는 게 없다. 닭도 사람도 농작물도 서로가 서로를 길러준다. 건강한 닭과 달걀은 덤이다.

글·사진 김명원, 김상호 도시농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