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소비자 권리와 소비자 단체의 역할

연중기획 l ‘㈔소비자와함께’ 소비자를 생각한다 ①
정길호ㅣ㈔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

등록 : 2024-01-04 14:42 수정 : 2024-01-04 14:45
2021년 6월10일 소비자와함께 등 한국소비자단체연합 소속 9개 단체가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설치법 통 과 촉구 시위를 벌였다. ㈔소비자와함께 제공

소비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해 소비자 이슈 발굴과 문제 해결을 위한 소비자 단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정부나 국회는 환경 변화를 예측해 대처하기보다는 사후적 조처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례 없는 소비자 문제들은 해결이 어렵고 임시로 내놓는 조치는 국민의 눈높이와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다. 이때 소비자는 언론에 호소하거나 시민사회단체(NGO)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최근 소비 관련 환경 변화 양상은 다양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활동 증가와 소비행태 변화, 국제간 분쟁으로 인한 원자재값 폭등과 물가상승 압력, 젊은 세대의 부동산·주식 ‘영끌투자’로 인한 금융 피해, 수술 후 의료분쟁, 전기자동차 판매가 늘면서 생기는 배터리 화재, 자동차 급발진 사고 등 소비자들은 다양한 문제들로 고통을 받고 있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는 지난 12월5일 주요 식품업체들에 라면 등의 가격을 속히 내릴 것을 ‘분노하는 마음으로’ 촉구했다. 이들 업체가 식품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도 주요 식품가격을 인상해 지난해 상반기 호실적을 낸 데 이어 지난해 3분기에도 ‘어닝 서프라이즈’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금융 환경 변화로 금융소비자의 피해도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 단체와 ‘금융소비자연맹’이 연대해 주식회사 ‘카카오’의 행태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카카오가 유명 증권사 펀드매니저를 사칭해 불법 ‘리딩방’ 계정으로 활동하는 것을 방치하는 등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단체는 이에 해당 채널이 저지른 자본시장법 및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을 방조한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카카오를 고발했다.

우리나라는 소비자 안전과 관련해 대재앙에 가까운 인재를 경험한 바 있다. 2020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가 무려 95만여 명, 사망자도 2만여 명에 이른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참사였으나, 제도와 법률적 미비로 피해자 보상에 대해서는 회사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지난 8년간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316건(교통안전공단 발표) 신고됐지만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동차의 결함이 아닌 운전자의 부주의로 처리되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근본적 해결책으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24조에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라고 되어 있다.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헌법 이하 법률 및 시행령에 권리보호 조항이 필요하다. 소비자 단체들은 집단소송제도, 증거개시제도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등 일명 ‘소비자권익 3법’을 정부가 조속히 통과해주길 요구해왔다.


‘집단소송제’는 50명 이상이 소송을 내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도 동일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업행위 과정에서 반사회적 위법 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가 입은 손해 이상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입증 책임’은 급발진 사고처럼 그 책임이 설계·제조자 쪽에 있는 것으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는 상품 설계·제조상 필요한 정보를 알 수 없고 기업이 관련 정보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들은 소비자 단체들이 10년 이상 요구했던 ‘소비자권익증진 기본법’으로 제정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소비자 권익 확보가 어려운 것이다.

소비자 단체의 사명과 역할이 실질적인 소비자 권리 보호와 증진에 있다면, 이를 뒷받침할 소비자 권익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정길호ㅣ㈔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