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종점마을을 가다

아파트·옛 마을 사이 언덕, 버스는 헐떡이며 올라온다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 주변 마을

등록 : 2017-02-09 12:36

흑석동은 지금 재개발 중이다. 마을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모이던 흑석시장에서 눈으로 웃음으로 한마디 농담으로 인사를 주고받던 사람들은 옛 마을과 함께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골목길을 누비며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식의 손을 잡고 거닐던 흑석동은 머지않은 미래에 옛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추억으로 물려주기 안타까운 마을이 흑석동이다.

서달산 품에 안긴 흑석동

관악산 줄기가 북으로 뻗어가다가 한강에 다다르기 전에 밀어올린 봉우리가 서달산이다. 서달산은 공작이 알을 품은 형국이다. 공작의 오른쪽 날개에 해당하는 오른쪽 산줄기는 국립현충원을 품는다. 왼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중앙대학교와 고구동산, 노량진근린공원을 지나 노들역과 사육신묘로 이어지면서 흑석동을 품는다.

흑석동은 서달산 기슭을 타고 오르며 형성된 마을이다. 서달산 정상 아래 달마사라는 절이 있고 달마사 입구에 마을버스 종점이 있다. 마을버스 종점 이름이 ‘흑석동 달마사’다. 이곳은 대방역을 오가는 동작01번 마을버스, 상도역을 오가는 동작21번 마을버스, 낙성대역을 오가는 동작14번 마을버스 등 마을버스 세 노선의 종점이다.

동작01 마을버스가 오가는 노선은 대방역~노량진역~상도역~중앙대~흑석시장~달마사다. 대방역에서 회차한 버스가 상도역을 지나 중앙대 후문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중앙대 후문 앞이 서달산 왼쪽 산줄기를 넘는 고개 중 하나다. 고개를 넘은 버스가 구불거리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중앙대 중문 정류장에 정차한다.

중앙대 중문 부근의 옛 이름이 명창굴이다. 도로가 생기고 주택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에는 실개천이 흘렀다. 중앙대 중문 정류장 왼쪽에 주택가로 들어가는 오르막 도로가 있다. 예전에는 산으로 오르는 언덕바지였다.


달마사와 거북바위

동작01번 마을버스 종점에 내려 앞으로 조금만 가면 달마사를 가리켜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린 숲길을 걸어 달마사에 도착한다. 달마사는 1931년에 창건한 절이다. 달마사를 품은 산 이름이 서달산이 된 것은 달마 스님이 서쪽 나라 인도에서 온 것과 관련됐다는 해석도 있다. 서달산은 공작산, 재강굴산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형국이라서 공작산이라고 했고, 산이 붉어서 재강굴산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서달산에는 검붉은빛 바위가 많다.

달마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면 한강이 보인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올라가면 거북바위가 나온다. 거북바위 앞에서 보면 달마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비탈 마을 흑석동과 한강, 여의도, 남산, 북한산이 보인다. 거북바위는 거북 형상의 바위다. 이 바위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거북바위 아래에서 샘물이 솟았다. 1970년 이곳에 동굴을 파고 용왕상을 봉안하고 영천(신기한 약효가 있는 샘)이라 했다. 예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이 터를 ‘용왕궁터’라고 했다.

거북바위에서 서달산 꼭대기는 금방이다. 정상 정자에 올라 관악산과 삼성산 줄기가 이어지는 풍경을 본다. 늘 푸른 나무의 꼭대기가 눈높이다. 그 뒤로 여의도와 목동의 빌딩 숲이 보인다.

재개발 아파트와 옛 마을

숲길에서 다시 마을버스 종점으로 돌아왔다. 동작01번 마을버스가 올라왔던 길을 따라 걸어서 내려간다. 길 왼쪽에 산비탈 마을을 없애고 들어선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성벽처럼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길 오른쪽은 골목길과 텃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옛 마을이다. 그사이에 난 오르막길로 마을버스는 그르렁대며 힘겹게 올라온다.

옛 마을 골목길로 들어간다. 응달진 골목은 얼음길이다. 미끄럽기도 하지만 발소리가 창문 안으로 들어갈까 하는 마음에 조심조심 걷는다. 햇볕 드는 담장 아래 지난가을 핀 꽃이 그대로 말라 남았다. 돌무더기 위 텃밭 옆 마른 덤불이 울타리다.

마른 꽃에 남은 보랏빛은 엄동에도 빛난다. 마른 꽃이 남아 있는 그 자리에 생기 도는 꽃이 다시 피어날 때쯤 이 마을 사람들은 이삿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재개발은 그렇게 마을을 없애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마을이 없어진 자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텃밭에서 자라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던 채소와, 봄 여름 가을 담장 아래 피어나 사람을 반기고 마을길을 환하게 만들던 꽃들도 사라진다. 이미 재개발로 사라진 흑석동 옛 마을의 절반이 그랬다.

더 오래전에 사라진 흑석시장도 그립다. 흑석시장은 흑석동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다.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팔던 시장 골목 노점에는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젊은 남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르던 곳이다. 누구네 집 아이들이라는 것을 다 아는 주인아줌마는 아이들의 또 다른 보호자였다. 1000원짜리 국수와 2000원짜리 냉면을 팔던 ‘정주분식’ 아줌마는 추운 겨울에도 연탄불 앞에서 몸을 녹이며 면발을 삶았다. 힘들고 아플 때에도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안부를 물었다. 값은 쌌지만 양도 넉넉하고 맛도 좋았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면발을 들이켜는 손님에게는 덤으로 면발과 국물을 더 얹어주기도 했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은로초등학교가 나온다. 옛날에 은로초등학교 아래에서 검은 돌이 많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흑석동이 됐다. 지금 그곳도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