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나의 목소리, 색깔, 표정만 있으면 됩니다
40대 중반 명퇴 가장 “무기력에 무척 우울한 나날입니다”
등록 : 2017-02-09 16:23
“나는 돈 벌어오는 기계가 아니야, 아니라구!” 점차 오십견이 다가오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도 뭉치고 기분도 자주 상합니다. 사소한 일에 복수를 결심하기도 하지요. 허세와의 싸움도 시작됩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하면서 모임에서 가장 먼저 계산대로 달려가고는 합니다. 삶에는 목숨 걸지 않으면서, 산에는 목숨 거는 유형도 제법 많습니다. 평일 등산이지요. 상당수는 혼자 가지 않고 꼭 누군가를 부릅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어딘가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겠지요. 등산은 당구장과 더불어 직장을 잃은 남자들의 사랑스런 놀이터입니다. 바로 그럴 즈음 저는 <그림동화>에 나오는 ‘브레멘 음악대’라는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할 테니 간단히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당나귀는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어졌다며 주인이 죽이려고 합니다. 때마침 브레멘 음악대장이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당나귀는 브레멘으로 향하는 길에서 노래를 잘하는 수탉, 입 냄새가 심한 개, 쥐를 잡지 못한다고 쫓겨난 고양이를 만나 곧 친구가 됩니다. 그들 모두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불쌍한 처지들이지요. 요즘으로 하면 구조조정, 효율, 인공지능, 세계화, 혹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멋진 이름 앞에서 속수무책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 가장들의 삶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마치 오렌지의 내용물을 모두 짜내서 단맛을 빼내고 난 뒤 쓰레기통에 매몰차게 던져지는 껍질 신세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 동화를 무심히 읽을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함께 떠나기를 망설이는 수탉에게 당나귀는 이렇게 권유합니다. “죽음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너는 찾을 수 있을 거야. 너는 훌륭한 목소리를 지녔고, 우리가 함께 연주를 하면 좋을 거야. 우리와 함께 브레멘으로 가자!” 혼자는 무력하지만, 함께하면 무한한 힘을 내는 마력이 있습니다. 친구, 동료, 가족들과의 관계를 서둘러 복원시켜야 할 이유입니다. 가장 든든한 힘이 되니까요. 이 동화에서 ‘죽음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이라는 표현은 너무도 유명한 말입니다. 땅에 떨어져 무참해진 자존감에 이처럼 멋진 위로의 말과 응원가가 어디에 있을까요? ‘훌륭한 목소리’라 표현되는 자기만의 기술이나 쓸모는 누구나 있습니다. 그거만 있으면 됩니다. 반드시 필요한 시기가 옵니다. 꼭 옵니다. 무력감에 시달리던 저도 1년 반의 시간이 지나 기적처럼 제가 할 일을 찾았습니다. 내 목소리, 내 색깔, 내 표정만 있으면 됩니다. 서두른다고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안식년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세요. 기회가 오면 더 멋지게 장식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브레멘 음악대’를 다시 읽어보세요. 죽음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미래는 열심히 준비하는 자의 것이지, 미리부터 걱정하는 자의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점, 명심하세요! 글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대표이사·MBC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