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조혜림 주무관이 11일 성북구청 통합민원실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그는 지난해 성북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신원 확인이 어려워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못해 곤란을 겪는 민원인을 적극적으로 도와 적극행정
우수등급을 받았다.
3년간 다른 공공기관서 못 푼 민원
부담됐지만 도우려는 마음으로 나서
“지문 일치 통보받고 제 일처럼 환호성”
지난 12월 적극행정 우수등급 받아
“‘한번 해볼게요’라는 주무관님의 말이 큰 희망이 됐고 정말 고마웠어요.”
지난 11일 성북구청 2층 통합민원실 앞에서 유민아(56)씨가 조혜림(41) 주무관을 만나 감사 인사를 했다. 유씨는 조 주무관의 도움으로 3년여 만에 만든 내국인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고, 행복의 문을 따준 분이다”라고 말했다. 손을 마주 잡은 조 주무관도 환하게 웃었다.
재외국민이었던 유씨는 귀국 뒤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신분증을 만들지 못해 경제·사회 활동에 많은 고충을 겪었다. 18살 다소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입양돼 영주권을 받았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뒤 2003년부터 한국에 머물렀다. 당시에는 재외국민 거소증을 발급받아 지낼 수 있었는데 2016년 법 개정으로 재외국민 거소증 제도가 폐지됐다. 주민등록증으로 바꿔 발급받아야 했지만, 유씨에게는 신원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그사이 마음의 병도 생겨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유씨는 퇴원 뒤 2020년 성북동으로 이사를 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새 출발을 준비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1년 반 넘게 걸려 미국 영주권을 취소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을 만들 방법을 좀처럼 찾을 수 없어 또다시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공공기관 예닐곱 곳을 찾아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더는 해줄 게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뿐이었다. 지난해 5월 유씨를 돕던 공익변호사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북구청 자치행정과에 문의하면서, 성북동 주민센터 담당자인 조 주무관과 연결됐다.
그동안 진행 상황을 들은 조 주무관의 첫마디는 “제가 해볼게요”였다. 성북동은 주민의 15% 정도가 외국인이라 재외국민 등록, 체류지 변경 업무, 해외 출생아의 국내 출생신고 등의 사례가 많아 어떻게든 도울 방법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선뜻 나섰다.
제일 큰 걸림돌인 신원을 확인할 방법부터 찾아봤다. 참고가 될 만한 귀화 외국인의 신원조회 절차와 지침 등을 살폈다. 유씨의 십지문(열 손가락 지문) 기록이 있다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 관련 경찰서, 경찰청 등에 지문 대조 확인 공문서를 보냈다. 한 달 만에 한 곳에서 일치 통보를 받았다. 조 주무관은 “통보서를 받고 마치 제 일처럼 기뻐 환호를 질렀다”고 그날을 돌이키며 말했다.
민원인 유민아씨(왼쪽)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있다.
신원 확인 뒤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기승전 ‘신분증’인 셈이다. 유씨의 경우 재외공관에 영주권 취득 신고를 하지 않아 재외국민 등록부등본이 없었다. 입양될 때 지문이 등록되지 않아 여권 발급 기록증명서도 떼기 어려웠다.
재외동포청의 영주권 취소 자료를 받기 위해 필요한 출입국 기록증명서는 신분증이 있어야 뗄 수 있어 조 주무관이 재외국민 주민등록증을 우선 발급했다. 그제야 재외동포청에서 영주귀국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9월에 마침내 유씨의 내국인 주민등록증이 발급됐다. 조 주무관은 “서류가 있어야 등록하는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등록 뒤 서류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며 “성북동 이은창 동장님이 실무자인 제가 하는 일을 믿고 맡겨주셔서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조 주무관은 지난해 11월엔 유공 직원으로 구청장상을 받았다. 12월에는 성북구 하반기 적극행정 시상에서 우수등급자로 뽑혔다. 유씨와 지인들이 인사혁신처 온라인 플랫폼(적극행정 온), 서울시 게시판(적극행정 추천) 등에 적극행정 우수공무원으로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선례가 없어 부담을 안고 ‘맨땅에 헤딩’하며 풀어갔는데 주위 사람들에게서 칭찬도 많이 듣고 상까지 받아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2011년 공무원이 됐다. 장위동 주민센터에서 일한 뒤 두 아이 출산과 육아를 위해 6년 동안 휴직하고 2021년 복귀했다. 성북동 주민센터를 거쳐 이달부터 교통행정과에서 일하고 있다. “20~30대 때 업무를 더 배우지 못한 게 아쉽고 후배들에게 (업무를) 물어보는 게 부담이 된다”면서도 “일과 가정을 병행해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조 주무관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배려심이 깊어지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마인드 컨트롤도 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휠체어 탄 어르신이 전통시장에 갔다가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주민센터를 찾아왔을 때 불편하지 않게 넓은 공간에서 신청서를 쓸 수 있게 도와줬다. 이전엔 많이 힘들었던 흥분한 민원인을 진정시키는 것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한다. 그는 “앞으로도 동료 직원, 민원인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친절한 동료, 공무원으로 일해 나가려 한다”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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