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청량리 588’ 재개발, 다음 달부터 본격 철거로 충돌 예상

2020년까지 65층 주상복합과 45층 호텔 등 서울 동부권 랜드마크로 탈바꿈

등록 : 2017-02-10 09:00 수정 : 2017-02-10 09:42
지난달 25일, 동대문구 전농동 620번지 일대 ‘청량리 588’ 집창촌에서는 철거된 곳과 일부 영업하는 곳이 공존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국내 집창촌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인 ‘청량리 588’이 다음 달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성매매 업소가 밀집한 롯데플라자 뒤편의 동대문구 전농동 620번지 일대는 청량리4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이 결정됐지만 주민 간 이견으로 20년 넘게 재개발이 지연돼왔다. 그러나 구역 내 최대 용지인 롯데플라자(롯데쇼핑)가 지난해 12월 영업을 종료하고 철거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인 청량리 역세권은 청량리4구역 재개발 사업이 본격 진행됨에 따라 지역 발전의 교두보로 새롭게 부상하고, 동부 서울의 중심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며 개발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경춘선이 지나는 청량리4구역은 2020년까지 65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4개 동과 호텔·오피스텔·백화점 등을 갖춘 42층 규모의 랜드마크 타워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의 다른 성매매 집결지인 천호동과 미아리 ‘텍사스촌’이 대규모 주상복합시설로 재개발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청량리 588’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성행하던 성매매 업소 ‘유곽’에서 시작됐다. 유곽은 서울 태평로와 종로 일대로 전파됐고,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성매매가 불법이 되자 지금 자리로 떠밀려와 ‘청량리 588’을 형성했다. 규모가 컸던 1980년대에는 업소가 200곳이 넘었고, 종사자도 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대문구는 청량리4구역에 대해 2014년 9월 사업시행인가, 2015년 1월 관리처분인가를 고시했다. 지난해 7월부터 이주와 철거 작업도 시작했다. ‘청량리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위원회’의 설명을 들어보면, 전체 세입자 716가구 가운데 85%가량이 이주한 상태다. 남아 있는 세입자들과는 이주 협의를 이달 안으로 마무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철거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동대문구와 추진위원회의 설명과 달리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4구역 비상대책위’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비상대책위는 추진위원회 쪽이 주민들과 원만한 사전 협의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내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상대책위의 김숙현 위원장은 “불법이지만, 지역 특성상 성매매 여성 세입자가 많다. 전보다 단속이 크게 늘어 지난해 8월부터 현재까지 단속만 100여 차례가 넘었다. 이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성매매 여성의 얼굴을 향한 감시카메라(CCTV) 등 비상식적인 영업 방해부터 중단해달라”고 말했다.

비상대책위는 △주민과 사전 협의 없는 이주와 철거 불인정 △주민 생존권을 보장하는 재개발 이행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병억 추진위원장은 “전직을 위한 직업훈련소 운영 등 근거가 없는 보상은 힘들지만, 민간단체 등을 통한 간접 지원은 모색해볼 수 있다”며 조속한 재개발 추진을 기대했다.

지난해 12월1일에는 추진위원회와 비상대책위 사이에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추진위원회가 부동산을 무단 점유한 사람을 강제로 내보내는 명도소송 강제집행을 성매매 업소 3곳에서 시도한 것이 발단이었다. 갑작스러운 강제집행에 비상대책위 소속 세입자들은 집기 등을 던지며 반발했고, 1시간30분 만에 강제집행은 중단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동대문구가 중재에 나서 12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 강제집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동시에 서울시는 동대문구와 추진위원회, 비상대책위에 강제철거 예방을 위한 사전협의체 구성을 요청했다. 하지만 청량리4구역은 서울시가 지난달 6일 사전협의체 운영을 법제화한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조례’의 소급 대상지가 아니어서 협의체 구성이 의무가 아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현재는 관리처분인가를 마치고 이주와 철거 단계에 접어들어 사전협의체 구성 의무가 없고, 구성하더라도 주체는 구가 아니라 추진위원회”라고 설명했다. 다만, 추진위원회의 불법적인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구가 강제집행 현장에서 단속을 철저히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추진위원회의 강제집행은 서울시 권고 등으로 잠시 보류됐지만, 3월이면 다시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달 안으로 협의가 되지 않으면 또다시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비상대책위는 지난 7일부터 동대문구 청사 앞에서 구청장이 사전협의체 조정자로 나서 줄 것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