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잃음의 지혜 아는 자

잠룡물용(潛龍勿用) 가라앉을 잠, 용 룡, 아닐 물, 쓸 용 항룡유회(亢龍有悔) 오를 항, 용 룡, 있을 유, 뉘우칠 회

등록 : 2017-02-10 18:00
유력 여야 정치인들의 대선 출마가 잇따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 출마를 하든 안 하든 이들은 언론 표현에 따르면 모두 ‘잠룡’들이다. 잠룡(潛龍)은 물 밑에서 하늘로 오르기를 기다리는 용이다. 보통 웅지를 품고 도약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잠룡이란 말은 주역 건(乾)괘의 초구(初九) 효사에서 비롯되었다. 음양의 양(陽)을 뜻하는 양효 6개로만 이뤄진 건괘의 효사를 순서대로 요약하면 ①잠룡물용(潛龍勿用) ②현룡재전(見龍在田) ③종일건건(終日乾乾) ④혹약재연(或躍在淵) ⑤비룡재천(飛龍在天) ⑥항룡유회(亢龍有悔)이다. 내용으로 요약하면 ①물속에 잠긴 용이다. 아직 때가 아니다. ②겸손하게 힘과 지혜를 기른다. ③스스로 반성하며 고뇌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④때를 만나면 놓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⑤뜻을 이루면 마음껏 펼친다. ⑥권력에 미련을 두면 후회만 남는다.

주역 64괘에 대한 풀이는 대부분 철학적 해석이 주를 이루지만, 건괘는 역사적 풀이도 가능하다. 건괘 효사는 주나라 창업자인 문왕과 무왕의 창업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즉 ①~④는 문왕의 창업기를, ④~⑤는 무왕의 역성혁명을, 그리고 ⑥은 나라를 빼앗긴 은나라 주왕을 교훈으로 삼으라는 가르침이란 것이다. 대망을 품고 사람들에게 덕을 베푸는 시기, 박해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힘과 지혜를 기르는 시기, 마침내 잡은 기회에 지혜와 힘을 펼쳐 대망을 이루고 대업을 펼치는 시기, 그리고 마지막은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는 시기이다. 모든 효사의 공통적인 열쇳말은 ‘때를 아는 것’(時中)이다.

정유년 대한민국은 잠룡이 승천하는 해이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가 진짜 용이라고 나선다. 그러나 때가 아닌 용은 쓰면 안 되고(잠룡물용), 다 올라간 용은 내려올 때를 놓치면 안 된다(항룡유회). 박원순 시장과 반기문 총장의 불출마는 그래서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권을 고대하는 자가 권력의 유한성을 인정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도 욕심에 약한 인간이니까. 그래서 공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얻음의 이익만 알지, 잃음의 지혜를 알지 못한다. 진퇴존망을 알아서 그 바름(正)을 잃지 않는 자, 그가 진실로 지혜로운 자이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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