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이 지난 2일 마포구 상암동 디엠시(DMC)산학협력연구센터에 있는 한빛센터에서 캠페인 진행 보고서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영상시대, 크게 는 방송 관련 청년들의
열악한 노동인권 개선 위해 만남 이어가
청년유니온 활동 등 ‘청년 정책’에 관심
“아픈 이 위해 애쓴 시간, 자부심 될 것”
“영상시대가 되면서 방송사 스태프, 유튜브 편집자 등 영상 관련 종사자는 크게 늘고 있지만 그들의 노동인권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입니다.”
지난 2일 마포구 상암동 디엠시(DMC)산학협력연구센터에서 만난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센터장의 말이다. 연구센터 6층에 자리한 한빛센터는 방송 노동자들의 쉼터인 ‘휴(休) 미디어노동자 쉼터’와 방송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당 행위를 신고하는 ‘미디어신문고’ 등을 운영하고 있다. 카페·휴게실·상담실 등을 갖춘 ‘쉼터’가 낮시간 동안 미디어노동자가 방문해 쉬어가거나 상담하는 곳이라면, ‘신문고’는 방송 제작 현장에서 일어난 근로시간 위반, 임금체불, 성희롱, 갑질 등 부당행위 신고를 받고 피해사실 조사와 사실 확인 및 시정요구를 하는 상담창구이다.
한빛센터가 지상파·케이블·종합편성 등 방송사를 포함해 100여 개 미디어 기업이 밀집한 상암동에 자리잡은 것은 이곳이 씨제이이엔엠(CJ E&M) 조연출로 일하다가 방송업계의 문제를 지적하며 2016년 세상을 떠난 이한빛 피디의 유지를 이어받아 설립된 단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티브이엔>(tvN) 드라마 <혼술남녀>를 제작하면서 가혹한 노동조건에 시달렸던 이 피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CJ E&M은 사과는커녕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이에 청년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35개 단체가 대책위를 꾸려 유족과 함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촉구했고, 결국 CJ E&M은 2017년 6월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이후 유족들이 CJ 쪽에서 받은 보상금을 전액 출연하면서 한빛센터가 2018년 문을 열게 됐다.
김영민 센터장은 2017년 대책위 활동에 참여하면서 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2005년 연세대에 입학한 김 센터장은 2010년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사회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김 센터장은 졸업 뒤 2016년부터 청년유니온에 활동가로 결합했고, 2022년 2월까지 정책팀장과 사무처장 등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2010년 3월 만들어진 청년유니온은 만 15~39살의 청년이면 누구나 고용형태(구직자, 실업자, 비정규직, 정규직)에 관계없이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다.
김 센터장이 한빛센터 회의실에서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 사회의 가장 고통받는 한 부분과 접하는” 삶이지만 “아픈 이들을 돕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이 저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일이 많았습니다. 청년유니온 창립 때부터 중요한 목표였던 최저임금 인상과 청년실업부조 도입이 제가 활동하는 시기에 이뤄졌죠. 특히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의 초기버전으로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의 제도 논의에 직접 참여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시와의 ‘사회적 교섭’에서 출발해서 청년일자리정책협약, 청년기본조례를 거쳐 도입된 청년수당이 최종적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담당한 거죠.”
김 센터장은 “청년유니온 활동은 청년들이 힘을 모아 정책에 관여하고 논의하면서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2022년 2월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임기를 마치자마자 한빛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2년 임기인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을 4년 동안 했습니다. 더 이상 청년이라기에는 멋쩍기도 하고 원래 세대교체가 빠른 조직이어서 다른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청년유니온 활동을 마치고 ‘시민사회나 노동계 내에서 활동을 좀 더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데 한빛센터의 경우 제가 해오던 청년노동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특정 산업현장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빛센터가 활동하는 방송 부문이 청년 노동자가 많은 영역이기도 합니다.”
청년유니온에서의 활동이 청년 활동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거시적’ 활동이라면, 한빛센터의 활동은 방송 부문이라는 특정한 영역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김 센터장은 지난 2년 동안 “카메라 뒤에 가려져 있는 많은 청년”을 만났다.
김 센터장은 월~금 오전 9시30분에 센터에 도착해 2명의 사무국 활동가들과 회의를 한 뒤 다양한 ‘카메라 뒤 청년들’을 만난다. 그들은 때로는 쉼터를 찾는 이들일 수도 있고, 혹은 방송 현장 안팎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또 간혹 추모제 등에서 만나기도 한다.
“방송미디어산업에 관여하는 다양한 직군으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미디어 분야 청년들의 상황을 좀더 이해해가고 있습니다.”
김 센터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이 장악한 방송미디어업계에서 청년들은 여전히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고 했다.
“가령 옷이나 소품 등을 코디하는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들의 경우도 상황은 매우 열악합니다. 스타일리스트들은 자기가 스타일링하는 연예인의 촬영이 있으면 현장에 따라가야 하고, 촬영이 없을 때도 옷을 빌리고 반납하고 수선하는 등의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김 센터장은 “이렇게 노동 시간은 긴데 임금은 평균 150만원 정도”라며 “그나마 이것도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크게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가 스타일리스트 상황을 처음 다뤘던 2020년에는 평균 90만원이었거든요.”
김 센터장은 이렇게 ‘카메라 뒤 청년들’의 문제를 들으면서 이를 알리고 모아가면서 문제를 풀어왔다.
김 센터장이 한빛센터에서 센터가 지난해 8~9월 유튜브 영상 편집자 285명을 조사한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렇게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면서 미디어 환경 변화와 함께 새롭게 나타나는 노동 문제에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갔다. 유튜브 영상 편집자 문제도 그중 하나다. 한빛센터는 지난해 8월28일~10월9일 유튜브 영상 편집자 285명을 조사했다. 이어 12월6일 한빛센터에서 ‘유튜브 시대의 이면, 영상 편집자의 노동실태’라는 제목으로 실태조사 결과 토론회를 열었다.
“최근 유튜브 편집일을 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는데, 단가가 무척 낮았습니다. 완성된 영상 1분당 1만~1만5천원 정도인데, 단기간에 무리한 제작을 강요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또 업무소통을 위한 대기 기간이 너무 길거나 대금 지급과 관련한 부당한 대우도 많았습니다.”
김 센터장은 유튜브 영상 제작자는 물론이고 ‘무늬만 프리랜서’와 같은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실태 조사를 하고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바쁜 시민사회 활동 속에서 자신의 성장은 어떻게 챙길까?
“매일매일 우리 사회의 가장 고통받는 한 부분과 접하는 것 같아요. 방송에 있는 청년들이 겪는 새로운 문제를 같이 고민해야 하니까요. 가끔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당면한 일을 잘 해결해나가면서 시간이 쌓이면, 아픈 이들을 돕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이 저의 자부심이고, 자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센터장은 현재 시민단체가 위축된 측면이 있는 데 대해 “조직된 단체보다 개인에 더 주목하는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청년 분야를 봐도, 청년의 목소리를 전하는 대변자로 단체보다는 개인이, 커뮤니티 글이 더 부각되는 현상이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도 “어떻게든 헤쳐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로 모이는 것을 낯설어하고 개인화가 심해진 것 같아요. 아무리 개인화하더라도 사람은 외로운 존재니까 모이고자 하는 욕구가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럴 때 모이는 공간들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센터장은 그 논의가 ‘갈라치기’ 등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해결이 되도록 하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 뒤에 있는 청년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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