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장기전 대비하려면 ‘우울의 전염’ 차단이 우선
시아버지 병구완에 지친 40대 직장여성 “병문안도 스트레스”
등록 : 2017-02-23 16:50 수정 : 2017-02-23 16:51
치매 기운이 있는 노인분들 가운데는 정상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자주 보입니다. 제 지인의 부친은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멜론 맛이 나는 빙과를 하루 10개, 오직 그것만 드신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배우자나 가장 가까운 자식을 의심합니다. 그것은 언젠가 자기를 버릴 것이라는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혹은 배우자가 점차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더 나아가 자기를 의심하는 상황에 이르면 충격이 1차, 2차, 3차로 이어집니다. 아직 살아 있는 분이 그렇다는 것은 정말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틀에 박힌 위로나 덕담 역시 맥이 탁 풀리게 합니다. “곧 나아질 겁니다. 이 또한 지나갈 테니까요.” 물론 선의로 한 말들이지만 그런 진부한 위로의 말들을 계속해서 듣다 보면 충분히 지치고 짜증 날 수 있습니다. 침묵할 때는 침묵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겠지요. 그런 소통 문화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 이해하세요. 형제가 없으면 없는 대로 부담이고, 많으면 많은 대로 시끄럽습니다. 누가 아픈 환자를 모실 것인가의 책임 문제, 그리고 유산 문제를 놓고 형제자매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집니다. 제사보다 제삿밥에 더 관심 있다는 옛말 그대로인 세태입니다. 고질병 혹은 장기 환자가 있을 경우 단기전이 아니고 장기전입니다. 마라톤 한다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아니면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겠죠. 집안의 형제자매들끼리 모두 부담을 나누거나 불가피할 경우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이 도덕적 무게까지 온전히 짊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장기전에 대비하려면 ‘우울의 전염’을 하루빨리 차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한국적 여건으로 볼 때 일상 생업에 지장이 있겠지만, 의도적으로라도 집안의 우울한 분위기를 직장으로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집안의 당번을 정해놓고 나머지 사람은 바깥에서 유쾌하지는 않더라고 정상적인 일상의 모드로 이어나가야 합니다. 가끔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커피를 홀짝거리며 수다를 떨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겨냅니다. ‘식구가 병석에 있는데, 어떻게….’ 물론 좋은 뜻이지만 긴장이 계속되면 몸과 마음이 버텨내지 못합니다. 곧 봄입니다. 화사한 봄 햇살이 필요한 것은 환자만은 아닙니다. 가족들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글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MBC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