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날갯짓’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황다연 l 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 변호사

등록 : 2024-03-07 16:10
세상은 ‘더 좋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작은 노력들’이 모일 때 변화돼나간다. 2017년 여름 햄버거 프랜차이 즈 업체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먹고 혈변을 본 아이들의 가족이 제기한 소송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계 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아 보이는 이 소송이 진행되면서 축산물위생관리법 법령이 개정돼 소비자들이 좀더 안 전한 식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2017년 여름, 유명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먹고 혈변을 본 만 1살에서 만 4살 사이 유아 5명의 가족들이 해당 업체를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장염 환자들에게서 원인균을 배양하기는 쉽지 않은데, 당시 아이들 중 두 명에게서 장출혈성대장균이 확인됐고, 2016년 7월23일 햄버거를 섭취한 만 1살 아이와 2016년 9월25일 햄버거를 섭취한 만 4살 아이는 용혈성요독증후군으로 이어져 신장투석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햄버거는 가장 보편적이고 안전한 식품이라고 믿었던 만큼 많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명 ‘햄버거병 사건’입니다.

‘증거가 없어서’ ‘상대가 대기업이어서’ 다들 손사래를 쳤던 이 사건은 돌고 돌아 저에게 왔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고소장을 접수한 다음날, 서울중앙지검은 가습기살균제사건을 수사했던 보건의료사건 수사팀에 사건을 배당했습니다. 몇 달간의 수사 끝에 패티를 납품하는 공장의 원료육에서 수차례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장출혈성대장균은 매우 적은 균량으로도 인체에 감염할 수 있고, 용혈성요독증후군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며, 심한 경우 신부전증으로 발전해 사망률이 3~5% 정도에 이르는 치명적인 균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것은 이 사건에 축산물 위생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연관돼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담당 공무원은 2016년 6월30일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쇠고기 패티에서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된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균이 검출된 패티가 생산되는 기계에서는 쇠고기 패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패티도 번갈아가며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돼지고기 패티는 균 검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오염 가능성 있는 제품을 모두 회수 및 폐기하고 소비자가 섭취하지 않도록 공표했어야 하나, 그 공무원은 패티 유통량을 확인하지도 않고 하루 만인 2016년 7월1일 ‘회수 대상이 없다’는 이유로 처분을 면제해버렸습니다.

회수·폐기돼야 할 패티가 이미 모두 출고돼 전국 매장들로 유통됐으나 일반 국민은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공무원의 위법한 처분면제는 나비효과가 되어 여러 아이가 아프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팠던 아동 중 한 가족이 제기한 국가배상사건 2심 재판부는 얼마 전 국가에 ‘피해 아동 측에 위로와 유감의 뜻을 표할 것, 소속 공무원들이 축산물의 검사, 위해 축산물의 회수 및 폐기 등을 비롯한 축산물위생관리법상 책무를 다하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여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비록 하나의 사건에서 내려진 화해권고 결정이고, 그마저도 소송 담당 공무원이 거부했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소송이었는데, 미약한 날갯짓이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보입니다. 균 검사 의무가 아예 없거나, 오염 위험이 낮은 식품을 검사하는 것으로 균 검사 의무를 빠져나가던 문제가 있었던 축산물위생관리법 법령도 이 사건을 계기로 개정됐습니다. ‘이 음식 먹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뜰 때마다 위해식품에 대한 회수 및 폐기, 공표 절차가 예전과 달리 제대로 이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여 세상은 더 안전한 방향으로 바뀌어가겠지요. 밖에서 활기차게 뛰어놀고 들어온 아이들이 간식을 찾습니다. 오늘 간식은 햄버거입니다.

황다연 l 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 변호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