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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시작한 일…돈도 벌고 건강도 챙겨”

서대문구 동행식당 ‘영미김밥 2호점’에서 일하는 김지현·김귀순씨

등록 : 2024-03-14 15:00
서대문구 영미김밥 2호점에서 근무하는 김귀순씨(왼쪽)와 김지현씨가 8일 영업개시 간판에 있는 김밥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고 있다. 영미김밥 2호점은 3월 준비 단계를 거쳐 4월1일 정식 개점한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60살 이상 주민 18명 번갈아 근무하며

동행카드 소지 노인들에게 ‘무료 식사’

맛과 청결 가장 중요시…4월1일 개점

가족 응원 큰 힘 “오래 했으면” 바람

“내 손으로 직접 돈을 벌 수 있다니 감개무량하죠.”(김지현) “진짜 이제 나도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큰 보람을 느껴요.”(김귀순)

김지현(73)씨와 김귀순(71)씨는 지난 1월부터 개점 준비 중인 동행식당 ‘영미김밥 2호점’에서 일한다. 두 사람은 지난 8일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고 했다.

서대문구는 지난해 말 서울시 동행식당 운영 공모에 선정돼 서대문구청 맞은편에 분식집 ‘영미김밥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가게 이름은 서대문구 맛집으로 소문난 신촌역 앞 ‘영미김밥’에서 따왔다. 동행식당을 열기로 한 서대문구가 주위 여건에 안성맞춤인 메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영미김밥을 찾아냈다. 주인이 흔쾌히 상호 사용을 허락하고 음식 ‘비법’도 직접 전수했다.


서대문구는 영미김밥 2호점을 서대문시니어클럽에 위탁해 운영한다. 영미김밥 2호점 직원들은 지난 1월 영미김밥에 가서 위생관리, 재료 납품 등 직원 교육을 받았다. 영미김밥 2호점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60살 이상 서대문구 주민으로 시장형 일자리 12명,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6명 등 모두 18명이다. 직원 중에는 20년 이상 식당을 운영한 사람, 5년 이상 김밥집을 운영한 사람도 있다. 영미김밥 2호점은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영업한다. 식당 근무자 12명이 돌아가며 출근하는데, 이틀에 하루꼴로 출근해 5시간씩 일한다.

직원들은 2월부터 영미김밥 2호점에서 음식을 만들며 내부 시식 기간을 거쳤다. 지난 7일에는 구청 직원을 대상으로 시식 행사를 했다. 영미김밥 2호점은 4월1일 정식 개점해 김밥, 떡볶이, 잔치국수 등을 판매한다. 5월에는 동행식당으로 동행카드가 있는 노인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할 예정이다.

김지현씨는 주부로만 살았다. “집에서 쉬고 있자니 너무 무료했어요. 사람이 일하고 움직여야 건강에도 좋죠.” 김씨는 “허전하고 외로웠는데 친구가 심심하니 함께 가보자고 해서 왔다”며 “일해보니 뭔가를 배운다는 게 즐겁고 돈도 벌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김귀순씨는 ‘장사의 달인’이다. 옷가게와 분식집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일을 접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13년 동안 모셨어요. 그러고 나니 저도 다리가 아파서 수술했죠.” 김씨는 “워낙 일한 지가 오래돼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영미김밥 2호점이 가장 신경 쓰는 게 맛과 청결이다. “우선 우리가 만들어서 직접 먹어봐야 손님한테 나갈 만한지 알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뭔가 1% 부족했는데 배운 것을 기억하며 했더니 요령이 생겼어요.” 김귀순씨는 “이제 김밥 간을 맞추는 것과 김밥 마는 데 자신이 생겼다”며 “맛도 정말 좋아졌다”고 했다. 김지현씨는 “무엇보다 청결한 게 기본이다”라며 “청결하게 만들어 손님한테 내어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손님한테 죄짓는 것”이라고 했다.

김지현씨는 처음에는 남편이 반대했다고 한다. “힘든데 왜 하느냐, 하지 말라고 했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김씨는 그동안 남편과 함께 차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이제 분식집에서 일하게 돼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없는 게 살짝 고민스럽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함께 여행을 다니지 못할까봐 말릴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그래도 내가 일하면 즐겁다고 했더니 그럼 해보라고 했다”며 “일도 열심히 하겠지만, 남편과 함께 여행도 자주 가겠다”고 했다.

이와는 반대로 김귀순씨는 남편이 흔쾌히 응원해줬다. “내가 좋아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요. 대신 힘들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더군요.” 김씨는 “손자들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집에 있어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데 밖에 나가서 일한다니 안쓰럽게 여겨 하는 말이라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집에서 영미김밥 2호점까지 걸어서 다닌다. 김귀순씨는 “30분 정도 걸려야 운동하기 딱 좋은 거리인데 20분도 채 안 걸려 운동한 기분이 안 난다”며 웃었다.

김지현씨는 “월급을 받으면 손자 대학 등록금에 보태겠다”며 “돈을 처음 벌어봐서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느꼈다”고 했다. 김귀순씨는 “여행 가는 데 보태고 날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식들 끼고 살면 좋을 게 하나도 없고 자식한테 걱정만 끼친다”며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사는 게 서로 속 편하다”고 했다.

“내 가게처럼 생각하고 일해야죠.”(김지현) “책임감 갖고 정성껏 일해야죠.”(김귀순) 두 사람 모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김지현씨는 “힘들고 아프면 일을 못하니 건강관리를 잘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김귀순씨도 “내 마음 컨트롤을 잘해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그렇지 않고 내가 아프면 자식들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두 사람은 “영미식당이 잘돼서 오래오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