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세월을 이어온 우리 그릇, 방짜 유기
수천 번 두들겨 만든 완전한 그릇, 살균력과 보온·보랭 기능까지 갖추고 현대화한 디자인으로 생활 속에 들어와
등록 : 2017-03-02 15:49
일본 왕실의 유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유기그릇과 숟가락 등이 보관돼 있고 중국의 옛 문헌에도 신라동, 고려동으로 기록돼 있을 만큼 이름을 날렸다. 조선 시대에도 중국 사신들이 돌아갈 때 꼭 챙겨갈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유기그릇은 제작 기법에 따라 주조법과 단조법으로 나뉜다. 녹인 쇳물을 틀에 부어 만드는 주조법은 다양한 모양과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질은 단조 방식인 방짜 유기를 더 쳐준다. 방짜 유기그릇은 아무리 높은 온도에서도 인체에 해를 끼치는 유해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 “주물로 만들다 보면 유기에 보이지 않는 기포가 남게 마련이에요. 이 기포가 탈을 부리지만 방짜는 이런 기포나 불순물이 들어가면 제작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두들기다 보면 깨지거든요.” 이씨가 설명하는 방짜 유기의 특징이다. 수십 번의 열처리와 수천 번의 두들김 끝에 완성되는 방짜 유기그릇은 불순물이 남지 않아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없는데다, 보온·보랭 효과와 살균력에 몸에 이로운 무기물질까지 배출하는 ‘완전한 그릇’이라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2003년 박종현 경원대 교수는 유기그릇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장균의 하나인 O-157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음을 밝혔고, 허정원 박사(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도 비브리오 패혈증과 콜레라 등 병원성 비브리오균과 유해 미생물에 대한 살균 효과가 뛰어남을 입증했다. 또한, 유기그릇은 농약을 비롯한 몸에 해로운 독성 물질에 반응한다. 연탄가스에도 유기그릇은 색이 변하는데, 이 때문에 유기그릇이 실생활에서 멀어지게 되기도 했다. 국가적 행사에 빠지지 않는 그릇 방짜 유기그릇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무기질인 구리, 아연과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등 미네랄 물질도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부시 대통령 방한 등 국가적 행사에도 방짜 유기그릇을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방짜 유기그릇이 완전한 그릇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아직 일반에 널리 쓰이지 않는 데는 관리의 어려움과 높은 가격 등이 꼽힌다. 그러나 관리와 보관의 어려움은 최근 발달한 세제와 수세미 등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비싼 그릇은 정성스럽게 닦고 보관하잖아요. 방짜 유기그릇은 그보다 조금 덜 정성을 들여도 아무 문제 없이 쓸 수 있어요. 가격도 수입산 그릇보다 더 저렴할 거예요. 처음 쓰면 더러 물때가 남기도 하는데, 이는 몇 차례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요. 유해한 성분으로 그릇이 얼룩지거나 변색되면 토마토주스나 케첩을 쓰면 다시 깨끗해진답니다.” 설거지도 흔한 초록색 수세미로 하면 충분하다고 한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사진 놋이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