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재 양천구청장이 지난 26일 시행 한 달째를 맞이한 ‘행복버블 찾아가는 세탁서비스’ 현장 점검에 나섰다. 올해 처음 시작한 ‘행복버블’은 취약계층 주민의 주거지를 방문해 겨울이불 등 대형세탁물을 ‘수거-세탁-배달’까지 한
번에 해결해주는 서비스다. 이 구청장(맨 왼쪽)이 강동석 한진세탁 사장과 함께 목3동에 있는 오아무개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60대 후반의 오 할머니는 “세탁비 부담에 2년 동안 겨울이불을 세탁하지 못했다”
며 이 구청장과 강 사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구, 올해 ‘찾아가는 세탁서비스’ 첫 도입
취약계층 대상 수‘ 거-세탁-배달’ 서비스
총 1천 가구 혜택…세탁소 23곳과 협약
지역경제 활성화, 돌봄 서비스도 ‘강화’
이 구청장, 참여 세탁소 찾아 진행 살펴
직접 이불 수거 나서며 주민과도 소통
주민 “2년 못한 빨래 해결” 감사 인사
세탁소 “주민과 소통 는 것이 최대 성과”
“2년 동안이나 빨래를 못했던 겨울이불을 깨끗이 세탁해주신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지난 26일 양천구 목3동 ㅅ빌라에 사는 오 아무개 할머니가 이기재 양천구청장과 강동석(60) 한진세탁 사장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 구청장과 강 사장은 오 할머니의 작은 월셋집 거실에서 겨울이불을 비닐포장재에 담고 있었다.
이 구청장은 이날 ‘행복버블 찾아가는 세탁서비스’(이하 행복버블) 현장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한진세탁을 방문한 뒤 오 할머니 집을 찾았다. 한진세탁은 오 할머니가 거주하는 ㅅ빌라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시행된 지 한 달가량 된 행복버블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취약계층 의식주 관련 예산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이 구청장의 구정철학이 낳은 정책이다. 양천구의 올해 예산은 총 9332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7%가 늘었을 뿐이다. 최근 20년간 역대 최저 증가율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예산은 5404억원으로 11.1%(540억원) 늘렸다. 양천구는 복지예산의 큰 폭 확충을 위해 업무추진비를 10%일괄 삭감하기도 했다.
양천구는 늘어난 복지예산으로 기존 사업을 더욱 튼실히 하는 한편, 새로운 복지사업도 도입했다. 행복버블(5천만원)은 △주거환경 개선사업인 ‘희망의 집수리 사업’(2억6천만원) △취약계층을 위한 ‘밑반찬 바우처’ (2억5천만원)와 함께 새로 시작한 대표적인 ‘생활밀착형 맞춤 복지사업’이다.
이 구청장과 강 사장이 목3동 한진세탁 앞에서 수거해 온 겨울이불 등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다.
행복버블의 새로움은 취약계층을 위한 ‘원스톱 세탁서비스’라는 데 있다. 장애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취약계층 주민의 집을 방문해 겨울이불 등 대형세탁물을 ‘수거-세탁-배달’까지 한 번에 해결해준다. 이를 통해 스스로 빨래하기 어렵거나 세탁소까지 나오기 힘든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대상은 △65살 이상 홀몸 어르신, 부부 노인 △중증장애인 △한부모·조손·소년소녀 가정 등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 약 1천 가구다. 구는 한 가구당 최대 5만원씩 지원한다. 두터운 겨울이불(세탁비 2만원+배달비 5천원)의 경우 2채까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지난 26일 오후 3시 한진세탁에 도착한 이 구청장은 우선 강 사장에게 지난 한 달 동안의 행복버블 진행 상황을 물었다. 강 사장은 “지금까지 모두 15가구가 행복버블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답했다. 강 사장이 배정받은 70가구의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양천구는 행복버블 사업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 지난 2월19일 구내 세탁소 23곳과 이 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협약식’을 했다. 참여 세탁소는 양천구의 3개 법정동인 목동(9곳), 신월동(5곳), 신정동(9곳)에 고루 분포돼 있다. 23개 세탁소의 위치와 크기 등을 고려해 행복버블 이용 가구가 배당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강동석 사장도 목3동, 신월1동, 신월2동의 70가구와 행복버블로 인연을 맺은 것이다.
이 구청장과 강 사장이 오 할머니 집에서 가져온 겨울이불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행복버블의 주요 성공 변수 중 하나가 바로 이들 세탁소 대표들의 적극성이다. 강 사장은 이와 관련해 “참여 세탁소들은 행복버블 사업을 통해 매출이 일정 부분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것보다는 ‘나도 지역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긍심도 생긴다고 말한다”고 적극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 세탁업은 최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표적 업종이다. 강 사장도 예외는 아니다. 강 사장이 세탁업을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20여년 전이다. 당시 건설회사에 다니던 강 사장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세탁업에 뛰어들었다. 강 사장은 “당시는 세탁업이 호경기였다”며 “세탁소 대표들이 돈도 꽤 벌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매출은 계속 떨어지고, 젊은 세대는 세탁업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현재 세탁소 대표들은 대부분 60~70대로 계속 고령화하고 있어요. 이에 따라 세탁소 수도 2000년대 초반 4만2천 곳에서 지금은 2만2천 곳으로 거의 절반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강 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세탁소들에 손을 내밀어준 구청에 고마움을 나타내면서 “우리 구의 세탁소 대표들이 다른 구의 세탁소 대표들에게 행복버블 사업 자랑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강 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주민들의 만족도는 어떠냐”는 질문을 이어갔다. 강 사장은 “오랫동안 세탁을 못한 겨울이불 등을 뽀송뽀송하게 세탁해서 가져다 드리면 박카스 등을 건네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고 답했다. 이 구청장은 “거동이 불편한 일부 주민의 경우 겨울이불을 1~2년을 넘어 4~5년까지도 세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행복버블이 그런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사장이 지난 3월13일 신월1동에 사는 홍아무개 할머니 댁을 방문해 겨울이불을 수거하고 있다. 올해 89살인 홍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겨울이불을 세탁하는 데 애먹고 있었다.
간단한 상황 점검을 마친 이 구청장과 강 사장은 곧 세탁물을 수거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챙겨 오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60대 후반인 오 할머니는 오랫동안 국외에서 선교활동을 한 뒤 20여 년 만인 2년 전 귀국했다. 나이가 많아 선교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국한 뒤 간간이 봉사활동을 하는 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혼자서 생활하는 오 할머니에게 두꺼운 겨울이불 빨래는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지난해 겨울이 지나 철이 바뀐 뒤에도 이불을 빨지 못했다.
“세탁을 못한 상태라서 겨울이불을 못 덮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겨울이 너무 추우니까 세탁 못한 이불이라도 다시 덮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오 할머니는 세탁을 못한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말했다. “혼자서 무거운 이불을 세탁하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결국 기초생활수급자 입장에서는 돈이 없으니까 세탁소를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오 할머니는 올해도 겨울이불 세탁 문제로 걱정이 많았는데 행복버블을 통해 그 걱정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구청장과 강 사장은 오 할머니에게 덕담과 위로의 말을 건넨 뒤 겨울이불을 챙겨 다시 한진세탁으로 돌아왔다. 세탁소에 도착한 뒤 강 사장은 이 구청장과 함께 할머니의 이불을 이리저리 꼼꼼히 살폈다. 이불에서 몇 군데 얼룩을 발견한 강 사장은 얼룩 종류에 맞는 얼룩제거제를 뿌렸다. 얼룩이 금세 연한 빛깔로 변했다. “이렇게 얼룩 제거를 위한 전처리를 하지 않으면 세탁 뒤에도 얼룩이 남아 있을 수 있다”며 다시 한번 할머니의 겨울이불을 꼼꼼히 살펴보는 강 사장의 모습에서 행복버블을 단순한 매출 확대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마음이 드러나는 듯했다.
강 사장이 홍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겨울이불을 세탁소에서 가장 큰 15㎏ 용량 세탁기에 넣고 있다.
“행복버블이 조금 수익 개선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참여하는 세탁소 대표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은 양천구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대표가 말한 ‘소통’은 오 할머니처럼 혼자 사는 홀몸노인에게는 ‘돌봄 안전망의 강화’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강 사장 등이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송하는 과정에서 취약계층 주민들의 안부 확인도 병행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체적으로 20%에 머물고 있는 행복버블 이용률은 날씨가 따뜻해지는 4·5월이 되면 빠르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행복버블 이용률이 높아지면 강 사장 등 세탁소 대표들은 취약계층 주민들과 더 많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확인할 것이다.
강 사장은 오 할머니의 겨울이불을 12㎏ 용량의 공업용 세탁기에 넣으면서 “행복버블을 만일 사계절에 걸쳐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면 더 큰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사업 확대에 대한 희망을 나타냈다.
이 구청장은 강 사장의 말을 경청한 뒤 “행복버블이 아직 시범사업인 만큼 주민들의 만족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잘 점검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행복버블을 통해 주고받는 두꺼운 겨울 이불들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소통의 매개가 되어 양천구 전역에 봄기운을 보다 일찍 전하고 있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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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