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가 열린 영화관 앞. 이재인 제공
영화에는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나에게 베를린 영화제는 이런 것이었다.
베를린 한복판 동물원역에 있는 ‘초팔라스트’(Zoo Plast)라는 유서 깊은 영화관 앞에 빨간 카펫이 깔리면 5분도 안 되는 학교길을 20분도 넘게 돌아가야 했다. 곳곳에 길이 막히고 교통 통제를 알리는 표지판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항상 기대와 흥분이 묻어 있었다.
그 분위기에 휩싸여 나도 몰려든 군중 뒤를 빙 돌아 학교로 향하곤 했다. 가끔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의 누군가가 플래시 세례를 받는 모습이 보이면 발뒤꿈치를 한껏 들어올려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던 것 같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들의 모습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어떤 큰 경험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모자와 넥타이, 어떤 때는 지팡이까지 갖추고 영화관 앞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유럽 문화’라는 단어와 단단히 묶여 있다.
그러나 세월이 꽤 흘러 내가 다시 베를린 영화제를 찾은 이유는, 그때의 향수 때문도 어떤 영화 때문도 아니었다. 영화제가 시작된 뒤 얼마 안 돼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눈에 띄는 실망과 비판 섞인 신문기사를 읽다 못해서 무작정 사진기를 들고 집을 나섰던 것뿐이다. 어제 신문에는 그 비판이 극에 달했다.
남우주연상을 탄 배우가 수상 소감을 밝히기 전에 씹던 껌을 트로피에 붙여놓았다지 않나, 감독상을 탄 사람은 트로피를 받으러 나오지도 않았다지 않나, 2017년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었다.
영화관들은 텅 비어 있었다. 상영관과 시각을 안내하는 전광판에는 좌석이 비어 있음을 알리는 초록색 불이 여기저기 들어와 있었다. 아무리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이라고는 해도 경쟁 부문의 모든 참가작들이 상영되는, 일반 관람객들에게 천국과 같은 날에 그런 쓸쓸함이 감돌 줄은 몰랐다.
눈앞으로 20년 전 초팔라스트 극장 앞의 풍경이 오래된 필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때에 비하니 모든 것이 거대해졌다. 곳곳에 최첨단 기술을 완비한 영화관들이 생겨 더 이상은 길을 막고 빨간 카펫을 깔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그 대신 관람객들이 영화관에서 영화관으로 다니느라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어쨌든 올해 베를린 영화제를 보는 시선은 차갑다. 혹자는 세계 정치에, 혹자는 베를린에서 났던 테러에, 또는 출품작들의 작품성에, 주최 측의 역량 부족에 각각 책임을 돌린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관들을 다녀온 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기사가 하나 있다. 베를린 영화제가 “건강하게 살을 뺄” 필요가 있다는 <슈피겔>지 속 한 사설이다.
무명 영화들을 배척하고 유명인들을 섭외해놓고 환영사까지 정치색으로 물들여가며 얻은 결과가 시상식의 그런 추태라고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고려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유명하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듯 거대하다고 해서 모두 위대한 것도 아니다.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