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을 깨며 ‘녹색 미래 씨앗’ 심기

오승록ㅣ노원구청장

등록 : 2024-04-11 14:53
지난해 11월4일 노원역 일원에서 열린 제1회 노원 차 없는 거리 행사에는 7만5천여 명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거리에 자동차를 비우는 경험을 하며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노원구 제공

서구의 각 분야 전문가·저명인사 100명으로 구성된 비영리 연구기관 ‘로마클럽’이 1972년에 낸 첫 보고서이자 책인 <성장의 한계>는 환경 문제를 다룬 고전으로 꼽힌다. 이 책이 환경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확산하고 행동을 촉구한 것이 벌써 50년이 지났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탄소중립기본법도 제정되는 등 시민사회와 국가기구가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른바 ‘기후투표’라 불릴 만큼 환경 문제가 사회의 중요 의제로 다뤄지는 유럽에 비하면 미지근한 게 현실이다. 구청장인 필자 역시 마찬가지지만, 주변의 다른 지자체장들의 사정도 별 차이가 없다. 관심이 없거나 전문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전문가 수준의 포부와 전문성을 갖춘 이들도 본인의 공약 첫 문장으로 탄소중립을 외치지는 않는다. 아마 두 가지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 한 명이 임기 내에 성과를 보여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유권자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몰라서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첫 번째 두려움이 틀렸음을 추정하는 사례를 직접 보고 왔다. ‘탄소중립 도시 노원’의 정책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독일과 네덜란드의 도시를 다녀왔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신재생 에너지 보급과 탄소배출 저감, 친환경 교통체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견학했다.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와는 지속적인 정책교류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고, 데이크엔바르트에서는 도시형 탄소중립 모델 정책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중앙정부와 국제연대를 통한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지만, 도시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다채롭다니…, 시민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역의 환경 정책을 촉구하고 동참하며 실천한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두려움을 흔드는 여론조사 결과를 귀국 뒤 접했다. 무려 1만7천 명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인식조사’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한국 시민은 편견과 달리 기후위기 이슈를 꽤 많이 알고 있었고, 기후위기를 상당히 심각한 사회적 도전 과제로 꼽고 있었다. 기후위기 정보에 민감하고 투표의 방향에 반영할 의사가 있는 이른바 ‘기후 유권자’ 집단이 무려 33.5%에 이른다는 것이다.

위 두 가지 두려움은 사실 시민들의 무지를 전제하는 ‘오만’이자 작은 도시와 작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편견’이었다. 그렇다면 희망이 생긴다. 그것은 ‘범세계적인 문제의 해결은 마을의 변화로부터’라는 용기다.

필자 역시 첫 구청장 임기 동안 환경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는 데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재선 임기를 시작하며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기후환경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전국 지자체 최초로 부구청장 직속의 ‘탄소중립추진단’으로 격상해 정책개발 기능을 강화하고 ‘아무도 안 해본 것’ ‘시민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과 지자체가 도와줘야 할 수 있는 것’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노원구 탄소중립지원센터’가 4월 개관해 탄소중립도시로의 이행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한편, 공공건축물 신축과 리모델링은 패시브공법을 적용해 당장 예산이 조금 더 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에너지효율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어렵지 않은 ‘10가지 수칙’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참여를 독려했다. 행사와 축제를 즐기면서도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넷제로 행사 가이드’를 만들어 전국 지자체 최초로 적용한다.


기획단계에서부터 탄소배출 요인을 점검하고 줄이는 행사가 내일(13일) 열린다. 백화점 앞 도로를 비우고 개최되는 ‘차 없는 거리 행사’다. 자전거문화체험, 그린마켓, 북 페스티벌, 힐링 존 등으로 구성된 실험적인 행사다. 지난해 처음 개최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부터는 확대하게 됐다.

기후재난 극복에 지자체장의 책무는 무겁고 할 일은 많다. 모른다면 무지요, 꾸물거린다면 직무유기일 테다. 작은 실천이 가진 힘을 외면하는 ‘오만과 편견’에서 한 발 나아가보자. 함께하는 이들이 주는 용기는 즐겁고, 강하고, 지속가능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지금 심는 녹색 미래의 씨앗은 머지않아 숲을 이룰 것이다.

오승록ㅣ노원구청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