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10년 노숙 벗어나게 해준 “세상에 고마운 사람”

양천구 희망복지팀 민숙이 통합사례관리사

등록 : 2017-03-09 16:18
문영로씨와 함께 한 민숙이 통합관리사. 10년이 넘는 노숙생활에서 벗어난 문씨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 남을 돕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선생님, 손톱도 깎으셨네? 아이고 손도 아주 부드러워졌어요.”

양천구 신정동의 한 고시원 방, 문영로(61)씨의 손을 맞잡은 양천구 희망복지팀의 민숙이(50) 통합사례관리사는 남다른 감회에 잠겼다. 문씨는 몇 달 전만 해도 신정교 아래에서 지내던 노숙인이었다. “이 동네 유명인사였어요. 아침밥 대신 막걸리를 먹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싸우며 10년을 다리 밑에서 생활하셨지요.”

민숙이 사례관리사가 문씨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봄, 주민신고를 통해서였다. “원래 노숙인은 담당 부서가 따로 있어서 통합사례관리 범주에 들어가지 않아요. 그런데 가만히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왜 왔느냐’ ‘돈이나 달라’고 하면서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았죠.” 민 사례관리사는 대상자와 라포(상호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여기고, 출근길마다 들러 안부를 확인하고 요깃거리를 전하며 문씨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두 달 만에 간신히 마음을 연 문씨를 설득해 인천 노숙인 재활시설에 입소시켰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규정을 어기고 몰래 음주하다 걸려 퇴소 조처를 당하고 자취를 감추는 등의 사건이 반복되었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민 사례관리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는 수백 번을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걸을 수 있잖아요. 결국 이것들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지켜봐야 해요.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니까요.”

통합사례관리사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관리 대상자들을 발굴하고 전문 상담과 자활에 필요한 자원을 연계하는 등 통합적으로 지원한다. “사례관리사들이 다루는 대상자 중에는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아빠는 알코올의존증을 앓고 있고, 엄마는 가출 중이고, 아이들은 학교 적응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월세가 밀려 퇴거 위기에 놓이는 경우들이죠. 통합사례관리사는 그들이 겪고 있는 건강, 육아, 경제 등 여러 문제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적·민간 자원을 연결해 이들의 자립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례가 종결되기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민 통합사례관리사는 특히 공감과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가족, 친척과도 단절되어 도움 청할 곳이 없을 때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가 사례관리의 시작입니다. 다가갈 때는 공감이 제일 중요해요. 가식인지 아닌지는 그분들이 바로 알거든요. 또 저 혼자 손 내민다고 되는 일도 아니지요. 여럿이 함께 손을 내밀수록 이분들은 더 쉽고 단단하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던 문씨 역시 지역주민들의 손을 잡고 방황을 끝낼 수 있었다. “인천에서 퇴소당한 뒤로 서울에 오지 않는 거예요.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서 그분이 예전에 머무르던 신정교 근처의 야쿠르트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렸지요. 돌아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요. 얼마 후에 연락이 와서 바로 달려갔는데 문영로씨가 갑자기 제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 얼마나 겁이 나고 놀랐던지.” 다행히 병원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었지만, 이대로 두면 건강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민 사례관리사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문씨를 개인적으로 돕던 동네 교회 분이 계셨어요. 이분과 힘을 합쳐서 지난해 연말, 거처를 고시원으로 옮기고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했지요.” 다행히 문씨도 교회를 다니며 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고시원에서 사는 문씨는 폐지를 주우며 혼자 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 사례관리사의 도움을 받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는데, 선정되면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한 청약통장도 만들 예정이다.


“이렇게 세상에 고마운 사람이 있다는 걸, 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문씨는 “10년을 방황했는데, 민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길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앞으로 살면서 남을 돕고 싶다”며 굳은 결심을 전했다.

2011년 시작해 어느새 7년 차에 접어든 민 통합사례관리사는 베테랑 사례관리사로 통한다. “통합사례관리사는 정부가 운영하는 복지 제도는 물론이고 지역의 복지관 프로그램, 민간 재단에서 운영하는 장학금 제도까지 꿰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만큼 그분들에게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고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공부하고 항상 움직여야 하죠”라는 그에게서 복지 빈틈을 메우려 애쓰는 그의 따스한 진심이 느껴졌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