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올해 41살 되는 주부입니다. 제가 작년부터 일을 다시 하게 되어 친정부모님이 아이들 하교 후 돌봐주고 계세요. 얼마 전엔 친정 근처로 이사하게 되었고, 제가 평일에 근무하다 보니 아버지께서 손수 정돈을 해주시는 일이 있었네요. 문제는 어제 제가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요, 당신이 오늘 하루 했던 업적을 알아주기 바라셨나 봐요. 에어컨 기사가 와서 에어컨 연결한 것, 제가 요청하지도 않은 식기 선반 달아주신 것과 저희 집 가구 리폼한 것을 보여주십니다. 감사한 일이나, 저는 그 마음 이전에 제 살림이고 제 가정인데 저에게 사전에 아무 알림도 없이 그렇게 하신 게 못마땅했어요. 특히 가구 리폼은 제 의도와 너무 다른 방향으로 하셔서 밥 먹다 무심결에 투덜댔어요. 아버지 맘대로 이렇게 하면 어떡하냐구요. 그랬더니 대뜸 버럭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고맙다, 수고했다 해야지, 넌 왜 내가 도와준 일에도 늘 시비냐!” 하시면서요. 밥 먹다가 어이가 없었죠. 내 살림인데 물어보지도 않고 아버지 맘대로 하시니 말씀드린 거라 했더니, 신발을 식탁 위로 집어 던지며 “넌 나쁜 새끼다! 네 자식들도 버릇이 없는데, 다 네 탓이다” 하며 광분하시더라구요. 저도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젓가락 내려놓고 “네, 저는 나쁜 새끼 맞습니다.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인가요!” 하며 또 강을 건넜습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오순도순 놀다가 또 올 것이 왔다는 듯 자기들 방으로 피하더라구요. 어머니가 보다 못해 아버지더러 집에 가자고 재촉하시니 나가면서 저희 아이들 방으로 가서 “나 내일 안 올 거다! 니들 알아서 해라!” 하시네요. 늘 하시듯요. 제가 어릴 땐 그렇게 저희 엄마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더니, 이제 그 공포를 제 아이들에게도 대물리시려나 봅니다. 아버지가 평생 제 삶을 존중하지 않고, 본인 뜻대로만 조정하려는 게 너무 속상합니다. 저를 도와주시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자꾸 이 분노가 치밀어올라 관계가 꼬이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하고 슬픕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도 저처럼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된 것 같아 너무 후회되고 비통합니다.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캐더린
A.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을 잊지 못하며 평생 분노에 시달리는 딸들이 참 많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으니 성장해서도 아버지가 용서되지 않습니다. 돈 리처드 리소와 러스 허드슨이 함께 쓴 세계적인 저서 <에니어그램의 지혜>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용서하기를 결.정.할 수 없다…. 용서는 우리가 자신의 분노, 미움, 적개심, 복수하고 싶은 욕망을 완전히 경험한 후에 - 그러한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 일어난다.” 다시 말해 용서의 마음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며,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용서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충분히 느낀다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다 상대가 가족이라면, 게다가 그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는 중이라면 죄책감까지 더해져 복잡하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감정이 됩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가능한 한 자기 비난 없이,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생긴 감정은 내 의식으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감정이 사라지게 강제할 수 없고, 다만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분노를 없애려는 무모한 노력을 포기하시고, 그 분노를 온전히 느끼세요.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시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행동으로 옮기면 다시 불화가 발생할 것이고, 그러면 트라우마를 재경험하면서 상처는 더욱 깊어집니다.
사실 저는 부녀간 싸움의 원인이 당신의 분노에 있지 않고, 아버지를 대하는 당신의 모호한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더린 님은 얼마 전 친정 근처로 이사 가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으며, 특히 아버지가 당신의 살림살이에 깊이 개입하도록 허용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당신의 태도가 아버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이를테면 내 살림의 어떤 것도 건드리지 말라는 식의 명확한 경계선 긋기 없이 아버지가 당신의 살림에 개입하게 하고, 나중에 불평하는 방식으로 말이지요.
인간은 행복하기를 갈망하면서도 불행했던 경험을 자꾸 반복하려는 무의식적 경향성을 보입니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반복 강박’이라고 일렀습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갈등이나 충격을 꿈이나 일상에서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복 강박의 심층에는 과거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목적성이 잠재해 있다고 하지요. 반복하는 과정에서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의식이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고통의 당사자였던 아버지와 맞서려는 시도는 위험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막강한 존재이며, 아버지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처 입은 당신 내면의 희생자 모드만 강화되겠지요. 심지어 당신은 아이들마저도 할아버지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애초 의도가 사랑의 희구였든 미움의 결과였든 쓰디쓴 과거의 감정을 반복하면서 상처만 더 깊어질 겁니다.
캐더린 님, 당신의 분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자각하고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아버지와 거리 두기를 시도함으로써 분노가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당신의 집을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맡기지 마시고, 아버지가 함부로 당신의 살림에 개입하지 않도록 경계를 명확히 하세요. 무엇보다 아버지가 당신의 삶을 존중해주는 것이, 당신이 아버지에게 가장 원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세요. 그러는 사이 분노가 잦아들고 천천히 용서의 마음이 당신의 가슴에 찾아들 것입니다. 용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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