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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발달 촉진, 치료실보다 일상에서”

‘가족 중심 조기 개입’ 운영 3년차 맞은 서초아이발달센터의 최진희 센터장

등록 : 2024-05-02 15:00
최진희 서초아이발달센터장이 4월18일 서초동 센터 상담실에서 ‘0~12개월 아이를 위한 발달 참고서’를 들고 웃고 있다. 센터는 6살 이하 영유아 부모 등이 상담을 의뢰하면 전문팀을 꾸려 가정을 방문해서, 가족 중심 조기 개입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미국의 조기 개입 사업에서 16년 경험

‘파일럿 거쳐 지원사업’ 독립 센터 맡아

발달 어려움 겪는 영유아 가정 대상

전문팀이 가정 방문해 평가·양육코칭

“제도화로 어디서든 서비스받길 기대”

“영유아기에 발달지연 가능성을 일찍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지난 4월18일 서초구 서초아이발달센터에서 만난 최진희(64) 센터장은 자신이 경험한 미국의 조기 개입 제도에 관해 설명했다. 유아 특수교육 박사인 최 센터장은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유아 뇌 발달에 관해 연구하고,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조기 개입 기관 등에서 16년 동안 일했다. 직접 가정을 방문해 부모 등 양육자들이 아이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도록 도우며 국가 조기 개입 제도의 효과를 체감했다.

2014년 안식년을 맞아 서울에 온 그는 서초구립 한우리정보문화센터(장애인복지관)에서 조기 개입 파일럿 프로그램을 18개월 동안 운영하며 발달지연 등의 문제를 겪는 영유아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보았다. 그는 “공공 차원의 조기 개입 제도가 없다보니 부모 등 양육자는 치료기관을 알아서 찾아 선택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사설 치료기관 의존도가 높아 입시 준비하듯 일정표를 만들어 치료실 투어를 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아이들은 치료실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하며 점차 흥미를 덜 느끼고, 학습된 무기력을 보이기도 했다.


가족 중심 조기 개입 프로그램을 2016년 서초구 지원사업으로 추진하면서, 그는 완전히 귀국했다. 서초구는 2021년 전국에서 처음 ‘장애·장애위험군 영유아 등 발달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조례를 근거로 발달촉진 기관으로 서초아이발달센터가 2021년 문을 열었고 그가 센터장직을 맡았다.

어릴 땐 일상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뇌세포 간의 연결이 반복되면서 뇌 발달이 이뤄진다. 치료실보다는 일상에서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는 가족이 중심이 되어 발달촉진을 지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다. 센터는 6살 이하 영유아 부모 등이 상담을 의뢰해오면 전문팀(특수교사, 물리·작업·언어 치료사, 사회복지사)을 꾸려 가정 방문한다. 상담 뒤 평가와 부모 역량 강화, 지역사회 연계 등 조기개입 지원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일원화해 제공해왔다. 지역의 이른둥이(임신 37주 미만 또는 출생 당시 몸무게가 2.5㎏ 이하) 가정은 일정 기간 무료, 인근 지역 가정 등은 합리적 수준의 비용을 내고 이용한다.

가끔 양육자들이 치료실 등에서 알려주는 것과 다르다며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그는 “관련한 연구 결과들을 양육자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몸짓과 소리 등의 베이비 사인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 일상에서 자주 사용할 수 있는 단어를 사인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아이의 언어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아이에게 긴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부모에게는 일상에서 같이하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길 권한다.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우유를 먹일 때 등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쓰면 발달촉진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 연인원 3천여 명이 센터를 이용했다. 센터는 해마다 연말에 양육자 대상 설문조사를 했다. 조기 개입 참여 뒤 양육자가 느끼는 자신의 역량 변화와 전문팀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데, 5점 만점에 평균 4.6~4.8점 나왔다. 아이가 어릴수록 양육자의 만족도가 높았다. 실제 이용자들 추천으로 센터에 상담 신청을 하는 이가 느는 추세다. 최 센터장은 “아이가 일상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며 탐색할 수 있게,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관심을 두고 상호작용하라고 조언한다”며 “이용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줘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다”고 했다.

상담 신청자가 늘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조기 개입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적기에 서비스를 받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 센터장은 “상담 의뢰 뒤 45일 안에는 개별화된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워놓고 있다”며 “대기 기간이 센터 개소 초기에는 2주 정도였는데, 요즘엔 한 달이 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문의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는 점도 그는 못내 아쉬워했다. 한동안 서초구 이외 지역 아이들에게도 방문 조기 개입 서비스를 했지만, 지금은 소수에게 비대면 서비스로만 진행하고 있다. 그는 “발달촉진 기관이 지역별로 들어서면 어려움을 겪는 아이와 가족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며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지자체 10여 곳의 자문도 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 차원의 조기 개입 제도 마련에도 최 센터장은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서초구 프로그램이 보건복지부의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의 운영 방안 연구에서 영유아기 모델로 다뤄져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3월 한국보육진흥원에서 연 포럼 ‘발달지연 영유아 조기 개입 및 지원 방안 모색’에선 센터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내년에 최 센터장은 정년을 맞는다. 은퇴 뒤에도 그는 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에서 활동하며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설치가 실행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생각이다. 최 센터장은 “조기 개입이 국가 제도로 시행돼 전국 어디서든 필요한 영유아 가정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