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ESG 관련 여성 목소리 키운다” 위셋의 ‘힘찬 발걸음’
BSI코리아와 손잡고 ‘지속가능성보고’ 관련 교육 진행
대기업·중소기업·공공기관 등 다양한 분야 여성 참여
등록 : 2024-05-09 14:51 수정 : 2024-05-09 14:53
“다양성 중시하는 ESG 관련 일에 여성 비율 낮은 것 모순”
지난해 세미나 등 통해 관련 수요 파악
“실제 보고서 작성에 큰 도움 될 것” 평가
위셋 “바이오 등으로 교육과정 넓힐 것”
“저희 1조에서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환경·사회·거버넌스(ESG) 중대성 평가를 했습니다. 그 결과 반도체 산업에서 환경부문에 가장 영향이 있는 요소로 ‘에너지 관리’를 꼽았습니다.”
지난 4월30일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비에스아이(BSI)코리아’ 교육장. 전날인 29일부터 ‘2024년 지속가능성보고의 요구사항 및 프로세스 심화과정’을 듣고 있던 최선우 동행복권 사업전략팀 과장이 ‘1조’를 대표해 토론 결과를 발표했다. 최 과장과 함께 교육에 참여한 4개 조 19명의 남녀 수강생이 최 과장이 발표한 내용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이 이날 수강한 교육은 ESG 관련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핵심 가이드 구실을 하는 ‘글로벌보고이니셔티브’(GRI)였다. GRI는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 비영리기구 GRI’가 만든 공시 지침이다. 현재 ESG 공시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날 교육의 수강생은 여성이 남성보다 6 대 4의 비율로 많았다.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ESG 관련 종사자 상황과 대비를 이루는 듯해 이채롭게 느껴졌다. ESG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 전체를 놓고 봐도 여성인력 재직자 비율은 2022년을 기준으로 22.7%에 머문다. 전체 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 26만2900여 명 중 5만9760여 명에 불과하다.
이번 GRI 교육에서 여성 수강자 비율이 높은 것은 이 교육을 기획한 곳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 이사장 문애리)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위셋(www.wiset.or.kr)은 우수 여성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2013년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공공기관으로, 복권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셋은 지금까지 미래 신산업 여성인재 양성을 위해 초·중등 여학생 스템(STEM, 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확대를 위해 노력해오는 한편,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 다변화 지원을 위한 교육훈련을 제공해왔다.
이번 GRI 교육도 여성 재직자 경력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여성 재직자 프로그램에 남성 수강생이 함께한 데 대해 최문용 위셋 아카데미팀 팀장은 “과학기술 부문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좀더 생산성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설계하는 차원에서 남성 수강생도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한다.
최 팀장은 “위셋의 여성 과학인력 교육은 미취업자 과정과 재직자 과정으로 크게 나뉜다”며 “미취업자 교육은 경력복귀(전환) 희망 여성의 신산업 분야 재취업을 위한 일자리 진입 교육훈련으로 구성하고, 재직자 교육은 현업에서 지속적인 경력 성장을 하기 위한 최신 전문 기술 트렌드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번 GRI 교육은 기획단계에서 과학기술 분야 여성 재직자들의 선호가 반영됐다고 한다. 최 팀장은 “지난해 8월 ESG 기초 세미나를 진행한 뒤 과정 설계를 위한 의견 수렴 결과, ESG는 환경 이슈뿐만 아니라 안전과 정보보안 등 국내외 다양한 이슈를 올바로 진단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개설이 필요한 주제로 선택됐다”고 말했다.
위셋은 이렇게 ESG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 뒤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BSI코리아(대표이사 임성환, www.bsigroup.com/ko-KR)와 함께 교육을 준비했다. 영국표준협회(BSI)는 1901년 세계 최초의 ‘국가표준 제정기구’로 설립된 이후 해마다 약 3천 개의 표준을 만들어오고 있다. BSI는 1947년 국제표준화기구(ISO) 창립 때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국제표준화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세계 182개 국가의 8만여 고객을 대상으로 국제 표준 관련 인증 및 교육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건설, 에너지, 금융, 헬스케어, 인공지능(AI) 등 전 산업 분야에서 최신 표준과 솔루션을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위셋과 BSI코리아는 2020년 업무협약을 맺었다. 정보보호 분야 전문 여성인력 양성이 목적이었다. 두 기관은 협약 이후 지난 3년 동안 ‘ISO 27001 정보보호경영시스템 심사원 자격’ 교육과정을 해마다 2회 이상 운영해왔다. 90여 명의 수강생이 이 과정을 통해 심사원보 자격을 취득했다.
이번에 진행된 GRI 과정은 BSI코리아가 ‘국제 비영리기구 GRI’와 업무협약을 맺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진행하는 ‘GRI 공식교육과정’이다. 강의는 20년 이상 BSI의 GRI 과정을 강의한 전민구 리브릿지 대표가 맡았다. 월드헬스시티포럼(kr.worldhealthcityforum.org) 표준위원회 본부장으로도 활동하는 전 강사는 유머 넘치는 강의로 이틀 동안 이론 학습과 토론 등을 주도했다.
강의는 △GRI 표준에 대한 소개 △GRI 표준의 구성과 함께 GRI 표준을 이용한 지속가능보고서 작성 방법 등으로 진행됐다.
수강생들의 다양한 면모는 최근 ESG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줬다. 수강생 19명은 지엠(GM)과 같은 대기업은 물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반도체 장비 부품인 ‘히터블록’을 공급하는 ㈜메카로 등 중소기업, 서울테크노파크,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 공공기관, 부산시의회 정책지원담당관실 등 지자체, 그리고 벤처기업과 민간교육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소속 기관 내에서 ESG와 ISO 인증, 그리고 환경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다.
수강생들은 여성 과학기술 인력에게 질 높은 ESG 교육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에 높은 점수를 줬다. 황옥정 ㈜메카로 ESG 사무국 수석은 “지난 10년 정도 ISO 인증이나 ESG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주변의 관련 여성 인력은 정말 ‘미미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며 “위셋이 이번 프로그램처럼 여성 과학기술 인력 확대를 위해 노력해온 부분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황 수석은 “특히 최근 ESG 실무를 진행하면서 정말 궁금한 것이 많은 상태”라며 “이번 교육은 정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교육’”이라고 평가했다.
강윤진 지엠인터내셔널(GMI) 환경&에너지팀 차장은 “교육 자체가 취지도 좋을 뿐아니라, 실제 보고서 작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이런 교육이 늘어나서 ESG 분야에 여성 진출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민구 대표는 기후, 환경 및 인권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ESG 활동이 크게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표는 “노르웨이 전 총리이며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로 할렘 브룬틀란(1939~ )이 주도해 1987년 발표한 ‘브룬틀란 보고서’가 ESG의 핵심 사상인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며 “우리 아이들, 후손과 미래 등에 대한 여성들의 높은 감수성을 감안할 때 ESG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 확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지금이야말로 더 많은 여성 리더가 기후환경과 인권 문제와 관련해 기업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적절한 시점”이라며 “앞으로 여성들에 대한 ESG 교육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성환 BSI코리아 대표이사도 “ESG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 중 하나가 ‘다양성’”이라며 “그런 ESG와 관련해 활동하는 인력 중 여성이 지나치게 적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BSI코리아는 1998년 세워진 뒤 한국에서 표준과 관련한 문화 향상을 위해 애써왔다”며 “앞으로도 위셋과 함께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문용 팀장은 “위셋은 앞으로 ESG뿐만아니라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며 “그 가운데 하나로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정도에는 제약·바이오와 관련된 교육과정을 새롭게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ESG 교육현장에서 여성들이 중심이 된 활발한 토론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더 많은 과학기술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런 다양성이 우리나라를 ‘보다 건강하고 생산성 높은 나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지난 4월30일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비에스아이(BSI)코리아’ 교육장에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위셋)이 마련한 ‘2024년 지속가능성보고의 요구사항 및 프로세스 심화과정’ 수료생들이 교육을 마친 뒤 밝게 웃고 있다. 환경·사회·거버넌스(ESG) 공시의 핵심 가이드인 ‘글로벌보고이니셔티브’(GRI)를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교육한 이번 프로그램에는 과학기술 분야 여성 재직자들이 수강생 다수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날 교육의 수강생은 여성이 남성보다 6 대 4의 비율로 많았다.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ESG 관련 종사자 상황과 대비를 이루는 듯해 이채롭게 느껴졌다. ESG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 전체를 놓고 봐도 여성인력 재직자 비율은 2022년을 기준으로 22.7%에 머문다. 전체 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 26만2900여 명 중 5만9760여 명에 불과하다.
20년 이상 영국표준협회(BSI)의 GRI 과정을 강의해온 전민구 리브릿지 대표가 GRI를 참고해 지속가능보고서를 쓰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지속가능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할지 토론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위셋이 진행한 ‘정보보안 전문가 트레이너 양성과정’ 참가자들 모습. 2013년 설립된 위셋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 다변화 지원을 위한 교육훈련 등을 제공해왔다. 위셋 제공
지난 3월30일 강남구 역삼동 위셋 강의실에서 진행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SC) 창의실험지도사 양성교육 기본과정’ 교육 수료생들 모습. 위셋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