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대선에 뛰어든 교수를 어찌 볼 것인가
축록투필(逐鹿投筆) 쫓을 축, 사슴 록, 던질 투, 붓 필
등록 : 2017-03-23 14:34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 위징이 지은 오언고시 ‘술회’에 나오는 ‘축록’(逐鹿)과 ‘투필’(投筆), 두 단어를 사자성어로 묶어보았다.
“중원의 축록이 시작된 뒤에, 나도 붓을 던지고 싸움터로 나섰네(中原還逐鹿, 投筆事戎軒)/열 가지 계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도, 난세를 구하려는 의기만은 변함없었네(縱橫計不就, 慷慨志猶存)/(…)/인생엔 뜻과 기개가 중요할 뿐, 그 누구가 다시 공명을 논하랴(人生感意氣, 功名誰復論).”
‘사슴을 쫓는다’는 축록은 황제의 자리를 다툰다는 뜻이다. 나중에 정권이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붓을 던진다’는 투필은 절필의 의미보다는 잠시 학문을 미뤄두고 일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바야흐로 영웅들이 천하를 다투니, 선비들이 붓을 내던지고 뛰어든다”가 ‘축록투필’이다.
축록의 출전은 <사기> ‘회음후 열전’이다. 한나라 대장군 한신이 여후의 음모에 걸려 죽임을 당한 뒤, 한고조 유방은 한신에게 자립할 것을 권했던 책사 괴통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괴통이 말했다. “진나라가 제위를 잃자(秦失其鹿), 천하의 영웅들이 그것을 차지하려고 앞다투어 쫓았습니다(天下共逐之). 그중 가장 지략이 뛰어나고 민첩한 자(유방)가 잡았습니다. 당시에 신은 오직 한신을 알고 폐하를 몰랐습니다. 천하가 평정된 지금 다시 축록의 일로 죽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흔히 쓰이는 중원축록(中原逐鹿)도 여기서 유래했다.
위징은 당태종 이세민의 형 이건성의 사람이었다. 이건성에게 이세민을 제거할 것을 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세민은 그런 위징을 오히려 중용해 중국 최고의 정치로 꼽히는 시대를 함께 열었다. 역사가이자 문인이기도 했던 위징은 난세를 만나자 축록대전에 뛰어들어 마침내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바야흐로 대선 시기이다. 자칭, 타칭의 군웅들이 ‘축록’의 전장에 뛰어들고 있다. 자천, 타천의 재사(계책을 세우는 사람), 지식인들이 ‘투필’의 대열을 이룬다. 야권의 선두 주자 진영엔 대학교수만 1000명이라고 하니 과연 구름같이 모였다. 난세의 국면에 등장하는 ‘투필지사’들을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위징의 예가 있다. 축록의 승자에게는 영광과 함께 천하 경영의 책무가 기다린다. 사슴몰이가 끝나면 내 편이든 네 편이든, 사냥개는 삶고, 인재는 우대한다. 괴통이라면 풀어주고, 위징이라면 손잡아라.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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