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구로구 ‘실버놀샘터’, “‘놀이 스포츠’로 삶에 활력 불어넣어요”

승부욕 발동시키는 4가지 ‘뉴스포츠’로 주민 건강 책임
노인 비율 20%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 계기 올해 시작

등록 : 2024-06-06 13:28 수정 : 2024-06-06 14:41
지금껏 경험 못한 경기에 호기심 자극, 소근육 발달하고 치매 예방


단순 운동보다 이기기 위해 힘껏 노력

다소 복잡한 점수 계산하며 ‘두뇌 회전’

“구민 건강 지킬 수 있도록 확산해 갈 것”


실버놀샘터 참가자들이 5월30일 구로구 고척2동 주민센터 4층 대강당에서 디스크골프를 배우고 있다.

주머니를 들고 목표물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매섭다. 순간, 손을 앞으로 쑥 내밀며 주머니를 던졌다. 콘홀 판 구멍으로 주머니가 쏙 들어가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와” 환호성을 질렀다.


구로구가 고령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건강프로그램 ‘실버놀샘터’ 참가자들이 5월30일 고척2동 주민센터 4층 대강당에서 즐겁게 콘홀 경기를 배웠다.

콘홀은 450g 정도 되는 네모난 주머니를 8m가량 떨어진 직사각형 판(보드)에 던져서 승부를 겨루는 경기다. 주머니 4개를 차례로 던져, 직사각형 판 윗부분에 난 구멍 안에 넣으면 3점, 보드 위로 올리면 1점, 바닥에 떨어뜨리면 0점이다. 원래 주머니 안에 옥수수를 넣었는데, 요즘은 주로 콩을 넣어 사용한다. 1 대 1로 겨룰 수도 있고, 여러 명이 편을 갈라 겨룰 수도 있다. 먼저 21점을 내면 승리한다.

강사로 나선 박성진 용인대 겸임교수(체육학 골프레저)가 경기 방법과 규칙을 설명하고 경기를 진행했다. “두 사람씩 나와서 경기해볼게요.” 가위바위보로 선공을 정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던지는 콩주머니가 탁, 탁 판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1·2·4·7·8 참가자들이 콘홀과 디스크골프 경기를 배우는 내내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하면 재미없잖아. 팀을 나눠서 해야지.” 갑자기 한 참가자가 승부욕이 발동했는지 편을 나누자고 했다. 경기를 지도하던 박 강사가 “그럼 빨간색 주머니는 ‘홍팀’, 검은색 주머니는 ‘흑팀’”이라며, 곧바로 편을 나눴다.

그러자 참가자들이 웬만하면 봐줘도 될 만한 것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선 밟으면 안 돼요. 다시 해요.” 상대편 선수의 ‘반칙성 플레이’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다. 처음 조용하게 시작할 때와는 달리 자기편이 던진 주머니가 구멍 안으로 들어가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반면, 주머니가 바닥에 나뒹굴 때는 아쉬운지 한숨을 쉬었다. 중간중간에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몇 판을 거듭하자 홍팀과 흑팀의 점수가 16 대 8이 됐다. “손바닥 위에 평평하게 올려놓고 던지면 좋아요.” 점수 차이가 벌어지자 박 강사가 지고 있는 팀에 ‘특별 지도’를 했다.

열기가 점점 고조됐다. “들어가~, 들어가~.” 흑팀 선수가 던질 준비를 하자 옆에 있던 같은 편 참가자가 구멍 안으로 들어가길 기원했다. 주머니가 구멍 근처로 날아가자 “들어가신다”며 ‘간절한 주문’까지 외웠다. 주머니가 구멍 앞에서 멈추자 “아깝다”며 아쉬워했다. 주머니를 던진 선수도 “욕심부렸더니, 안 되네”라며 아쉬워했다.

어느덧 홍팀과 흑팀 점수가 16 대 11이 됐다. 이어 나온 흑팀 선수가 잘 던져 흑팀이 8점, 홍팀이 2점 나왔다. 점수를 계산해보니, 홍팀과 흑팀 점수가 16 대 17로 드디어 역전이다. 흑팀 참가자는 기분이 좋은지 두 팔을 위로 들어올리며 춤까지 췄다.

콘홀 경기 점수 계산은 고령자에게 조금 복잡할 수 있다. 양편이 주머니를 4개씩 던진 뒤, 높은 점수 팀의 점수에서 낮은 점수 팀의 점수를 뺀 차이만큼 이긴 편이 점수를 얻게 된다. 주머니를 4개씩 던져 나온 점수가 흑팀이 8점이고 홍팀이 2점이라면, 흑팀이 6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점수를 쌓아 21점에 딱 맞춰야 승부가 결정된다. 그렇지 않고 점수가 넘치면, 그 득점은 인정하지 않고 직전 점수에서 경기는 계속된다. 그래서 점수가 21점에 가까워지면 고도의 ‘두뇌 플레이’가 필요하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양편은 다시 홍팀이 역전해 19 대 17로 앞서갔다. 경기가 막판에 이르자 참가자들이 선수들을 위해 힘차게 격려의 박수를 쳤다.

“제가 운동신경이 좀 있나봐요. 이기고 싶어서 점수만 생각하다보니, 너무 지나쳤어요.” 운동을 좋아하는 김명희(68)씨는 지난 4월 실버놀샘터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온몸을 다 쓰고 집중하다보니 건강에 굉장히 도움되는 것 같아요. 인지능력도 좋아지는 것 같고요. 물론 승부욕도 생기죠.” 김씨는 “오늘따라 사람들이 더 많이 와서 열성적으로 하다보니 더욱더 재밌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운동하며 소리도 지르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점수를 계산하다 보면 두뇌 활동에도 좋죠. 콘홀 경기는 오늘까지 4회째 진행했는데, 시작할 때보다 표정들이 무척 밝아졌습니다.” 콘홀은 성별, 나이, 신체 능력에 크게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데, 전신 운동 효과와 집중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실내에서 할 수 있고 부상 위험도 적다. 박 강사는 “지자체에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기는 처음”이라며 “앞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도록 널리 확산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앞서 디스크골프 경기를 배웠는데, 시작 지점인 티 라인에서 원반(플라잉 디스크)을 던진 뒤 떨어진 지점에서 원반을 던져가며 앞으로 나아가 디스캐처(골홀)에 넣는 경기다. 원반과 디스캐처만 있으면 야외에서 지형과 지물을 활용해 경기할 수 있다. 원반은 고무 재질로 지름 25㎝, 디스캐처는 높이 160㎝, 넓이 90㎝이다. 경기 방식이나 용어가 골프와 비슷하다.

콘홀 경기를 배우고 있는 참가자들이 콘홀 판을 향해 주머니를 던지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날 원반을 디스캐처에 넣는 법을 배웠다. “자~, 정면으로 서서 던지면 힘들어요. 그래서 약간 옆으로 서서 하나, 둘, 셋 하고 날리면 됩니다. 손을 앞으로 평행하게 내뻗어야 일직선으로 날아가죠.” 박 강사가 먼저 던지는 시범을 보였다. 참가자들이 박 강사를 따라 디스캐처를 향해 손에 들고있던 원반을 던졌다. 모두 날아가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강당 천장으로 가는 것도 있고,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있고, 디스캐처를 넘어 날아가는 것도 있다. 한 참가자가 던진 원반이 디스캐처 안으로 쏙 들어가자 “우와~”하는 함성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이 동시에 원반을 던졌다. 어쩐 일인지 디스캐처에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던지는 자세를 한번 더 보여드릴게요. 엄지는 디스크 위를 잡고 검지는 디스크 옆, 나머지 손가락으로 디스크 아래를 받쳐요. 약간 옆으로 서서 하나, 둘, 셋 하고 던지면 돼요.” 박 강사의 말을 듣고 참가자들이 다시 한번 동시에 원반을 던졌다. 효과가 있었는지 원반이 디스캐처에 쏙쏙 들어갔다. 참가자들이 신나게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처음에는 설명을 안 듣고 했더니 안 들어갔어요. 자세와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 했더니 잘 들어가더라고요. 세 번 던져 모두 들어갔어요.” 구로동에 사는 손순심(69)씨는 구로구보건소에서 실버체조를 배우고 있다. 걷기 행사 때는 도우미 활동도 할만큼 건강에 관심이 많다. 손씨는 이날 처음 ‘실버놀샘터'에 참가해 디스크골프와 콘홀을 배웠다. 손씨는 “체조나 운동을 반복하는 게 지겹기도 하고 힘이 들 때가 많다”며 “내가 승부욕이 강해서인지 게임 방식으로 하니 집중도 잘되고 운동 효과도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놀이 스포츠를 가르치는 강사와 참가자들이 콘홀 판 위에 떨어진 주머니를 보며 점수 계산을 하고 있다.

실버놀샘터는 놀이가 샘솟는 터라는 의미로, 60살 이상 79살 미만 주민들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놀이 스포츠’(뉴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로구가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땅에서 스톤을 미는 뉴에이지 컬링, 원반을 날려 골홀에 넣는 디스크골프, 모래주머니를 구멍 안에 넣는 콘홀, 공을 표적구에 최대한 가까이 가도록 굴리는 보치아 등으로 구성됐다. 종목마다 8회 과정으로 강사와 함께 4회 동안 경기를 배운 뒤 나머지 4회는 참가자들끼리 경기한다. 구로구보건소와 고척2동 주민센터에서 4월부터 7월까지 진행한다.

구로구가 실버놀샘터를 기획한 이유는 올해부터 구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실버놀샘터는 고령자들이 ‘놀이 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신체 소근육을 강화하고, 치매도 예방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또한 자연스럽게 취미 활동으로 이어져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 “경로당에 가면 어르신들이 주로 고스톱 등을 하면서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게 마음에 걸렸어요. 실버놀샘터는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전신을 움직이는 시간을 늘려주죠.” 박혜빈 구로구보건소 보건행정과 생활보건팀 주무관은 “손으로 만지고 던지고 날리고 굴리는 행동은 나이가 들어도 꼭 필요하다”며 “승부욕도 끌어내고, 점수 계산도 하고, 몇 점을 따야 이길 수 있는지 계산해야 해서 어르신 정신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강사가 순서가 그려진 지도를 보여주면, 참가자가 그대로 발을 디디며 가는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구로구는 실버놀샘터 프로그램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하반기에도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박 주무관은 “앞으로 경로당에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할지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어르신이 행복하고 건강한 구로구를 만드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