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수원 양궁장에서 장애인양궁 국가대표에 발탁된 금천구청 김범철 주무관이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해 연습하고 있다.
금천구청 1층의 통합민원실, 민원여권과의 김범철(53) 주무관을 만나기 위해서는 번호표가 필요했다. 여권을 발급받으려는 민원인보다 그와 인터뷰하려는 언론의 요청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공무원 신분으로 장애인양궁 국가대표에 선발된 그를 <서울&>이 업무 장소와 연습 장소에서 만났다.
“많이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네요.” 휠체어를 탄 김 주무관의 웃음에는 멋쩍음이 묻어 있었다.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중증 장애인이 된 김 주무관은 지난해 말 장애인양궁 국가대표로 뽑혔다. 취미로 양궁을 시작한 지 13년 만이다.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럽죠.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다니….” 그날을 떠올린 김 주무관은 감격에 겨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후 충격과 괴로움으로 8년 가까이 집에만 처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3년 장애인 특채를 통해 공무원이 된 후로 운동을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휠체어럭비와 같은 격렬한 운동을 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팀 연습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주말에 혼자 할 수 있는 종목을 찾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양궁이었습니다.” 김 주무관은 그렇게 양궁과 인연을 맺었다. “활시위를 떠난 활이 과녁 정중앙에 꽂힐 때 정말 통쾌합니다.”
주말마다 양궁장으로 출근하며 실력을 갈고닦은 김범철 주무관은 2014년 전국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해 값진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지난해 장애인양궁 세계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컴파운드 W1 부문(휠체어 경추손상 선수들이 겨루는 종목) 3위를 차지했다. 쟁쟁한 실업팀 선수들이 경쟁하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개인 자격으로 출전해 태극 마크를 달기란 쉽지 않다. “양궁을 시작한 뒤로 13년 동안 계속해서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했습니다. 양궁은 개인 기록 경기이기 때문에 저만 열심히 노력하면 태극 마크를 달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오랜 도전 끝에 많은 실업팀 선수들을 제치고 뽑혀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 주무관은 다음 달 13일 이천 장애인선수촌에 입소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장애인양궁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한 훈련에 매진할 예정이다.
장애인양궁 국가대표 선수인 김범철 주무관은 구청 통합민원실에서 여권 배부 업무를 맡고 있다. 금천구청 제공
지난 18일 아침 10시 수원시 양궁장, 김범철 주무관은 휠체어에 몸을 끈으로 묶은 채 과녁으로 향했다. “사고로 경추가 손상되어 가슴 아래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요. 자칫 활을 쏠 때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휠체어에 고정해야 합니다.” 활시위를 당길 때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대신 손목을 이용한다. 활시위와 손목을 끈으로 연결하고, 손목을 뒤로 당기자 활시위가 팽팽해졌다. 과녁을 조준하는 김 주무관의 눈빛이 매섭다. 오른쪽 손가락으로 특수 방아쇠를 살짝 누르자 바람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날아간 화살이, 탁, 수십 미터 떨어진 과녁의 노란색을 명중시켰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300발 이상의 활을 쏘는 연습벌레지만 정작 그는 “실업팀 선수들의 연습량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 지금껏 혼자 연습하다가 이제 다른 나라 선수들과 실력을 겨뤄야 하는데 긴장이 많이 되네요”라며 어깨를 낮췄다. 양궁에서 독보적 강국인 대한민국, 장애인양궁도 강국의 면모를 보여줄까. “예전에는 장애인양궁도 세계 정상급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열린 리우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아쉽게도 금메달을 하나도 못 땄어요. 장애인 스포츠는 장애인에 대한 그 나라의 복지 수준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 선수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죠.”
세계의 높은 벽에 대한 걱정도 잠시, 6개월 뒤로 다가온 세계선수권대회의 목표를 묻는 말에 김 주무관은 “당연히 금메달이죠. 그뿐만 아니라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꼭 순위권 안에 들어 내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도 태극 마크를 달고 나가고 싶습니다”라며 강한 포부를 밝혔다. “국가대표에 뽑힌 것은 너무 좋은데 합숙 훈련 기간 업무 공백이 생기니까 팀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그동안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요. 민원대에 앉아서는 양궁대회 걱정, 양궁장에서는 또 업무 걱정이었죠. 그런데 다행히도 구청에서 배려를 해주겠다고 하네요. 이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훈련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일발 장전. 김 주무관이 힘껏 쏘아올린 화살들이 금빛 과녁에 시원스레 꽂혔다.
글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사진 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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