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고종의 서재에서 시간여행

등록 : 2017-03-23 16:02
고종의 서재였던 경복궁 안 집옥재
지난 20일, 서울 경복궁의 북쪽 문인 신무문 앞에 자리한 전각 하나가 문을 열었다. 겨우내 외부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다가 봄과 함께 방문객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고종의 서재인 ‘집옥재'(集玉齋)다.

옥같이 귀한 보배를 모은다는 뜻의 집옥재는 1881년 창덕궁 별당으로 지어졌다가 189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동쪽은 협길당(協吉堂), 서쪽은 팔우정(八隅亭)과 복도로 이어져 있다. 고종은 대부분 서구 근대문물과 관련된 서적 4만여 권을 사들여 집옥재에 비치했다. 일종의 왕립도서관이다. 그리고 자신의 서재이자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열강의 야욕에 맞서 새로운 자주국가의 길을 모색하려 했던 개혁 군주의 단면을 보여준다.

집옥재는 1996년까지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 일대에 청와대 경비부대가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다. 1996년 말 경복궁 정비계획에 따라 부대가 철수하면서 비로소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4월 ‘집옥재 작은도서관'이라는 새 이름도 얻었다. 도서관은 역사 중심의 도서 3000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역사서에서부터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일성록> 영인본, 규장각과 장서각이 소장한 왕실 관련 자료 등으로 다양하다.

관람객이 집옥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도서관으로 바뀐 뒤 시민들은 집옥재를 즐겨 찾고 있다. 경복궁 관리사무소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해의 경우 도서관이 운영된 8개월여 동안 하루 평균 800명가량이 집옥재를 다녀갔다고 한다. 독서뿐 아니라 역사 체험 공간으로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개방한 20일에도 집옥재를 찾아 내부 사진을 찍고 소장 도서를 살피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복궁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곳은 고종 황제의 서재이자 사신을 접견했던 공간으로, 선인들의 마음과 생각을 더듬어볼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운영 시간은 경복궁이 쉬는 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상반기(6~7월)와 하반기(9~10월)에 왕실의 기록문화를 주제로 한 ‘집옥재 왕실문화강좌'를 운영했다. 올해도 상·하반기에 같은 이름의 강좌를 운영할 예정이다.

집옥재에서 독서도 좋지만, 북카페로 꾸며진 팔우정에서 차 한잔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다. 팔우정의 차림표에는 커피가 고풍스럽게 ‘가배’로 표기돼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고종은 실록 등 공식 기록이 보증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마니아'였다. 집옥재 작은도서관에 가면 커피 한 잔과 함께 고종 시대로 가는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