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먹는 것 따라 몸·지구의 미래 바뀌어요”

성북세계음식축제에 사찰음식 선보인 수월암 주지 혜범 스님

등록 : 2024-06-13 16:07 수정 : 2024-06-13 17:09
6월5일 성북구 성북동 수월암에서 혜범 스님이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 등으로 양념을 최대한 적게 쓰는 사찰음식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오이 등 제철 재료로 맛과 영양 살린

6가지 음식과 연잎밥, 그릇은 뻥튀기

몸·마음 건강과 환경 위한 실천 기회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길”

“1천 명이 먹을 음식이 4시간여 만에 동날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지난 5일 성북구 성북동 수월암에서 만난 혜범(55) 스님이 올해 ‘누리마실’에서 첫선을 보인 사찰음식에 대한 참여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누리마실은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이 16회째 이어온 세계음식축제다. 올해는 5월19일 성북로 일대에서 열려 6만여 명이 찾아 즐겼다. 누리마실은 40개 외국 대사관저가 있는 지역특성을 살린 문화축제로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지역문화매력 100선 ‘로컬100’에도 뽑혔다.

올해 축제에선 19개국의 대사관, 20개 지역 가게 음식 부스와 함께 성북 사암연합회 소속 사찰 2곳(수월암, 운선암)의 사찰음식 부스가 운영됐다. 사찰음식은 절에서 먹는 음식으로 육류나 어패류를 전혀 쓰지 않고 수행에 방해가 되는 오신채(파·마늘·달래·부추·흥거(무릇))도 뺀 채식 음식이다. 지난해 9월 성북구청 앞 광장에서 열린 첫 사찰음식 축제마당에서 참여자들의 호응이 좋아,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이뤄졌다.

수월암 부스에서는 연잎밥과 6가지(가지새싹말이, 오이만두, 고추장아찌 주먹밥, 청국장김말이, 애호박고추장전, 버섯강정꼬치) 음식 세트, 두 가지 메뉴를 구성해 각 5천원에 판매했다. 혜범 스님은 “제철 재료로 맛과 영양을 살린 사찰음식의 매력을 알릴 수 있게 메뉴를 짰다”고 했다. 그는 “새벽 4시부터 봉사자 10여 명과 함께 준비했는데, 알록달록 예쁜 색깔에 깔끔하고 담백해서 맛있다고 좋아해줘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며 “첫 참여라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가 부족했던 점 등은 내년엔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움도 전했다.


혜범 스님은 1992년 출가했다. 공양간 소임 등을 하며 사찰음식을 배웠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2013년 한국사찰음식체험관에서 지도법사를 거쳐 강사로 활동해왔다. 혜범스님은 제철 재료로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양념은 가능한 한 적게 쓰는 것을 강조한다. “오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절여, 참기름에 살짝 볶으면 수강생은 ‘이게 맛있을까’ 하는 표정을 짓는데, 그릇에 담아 내놓으면 대부분의 수강생은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느끼면서 놀라워한다”고 했다.

음식 만들 때의 마음가짐에 관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도 수행의 하나이다. 혜범 스님은 “나쁜기운이나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면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남을 위해 음식을 하는 게 곧 나를 위한 것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찰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타불이’(나와 네가 둘이 아니고, 만물과 내가 하나이다)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사찰음식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할 수 있는 음식이다. 사료 등 탄소 배출이 많은 고기를 쓰지 않고 채소와 곡류, 해초류 등을 재료로 사용한다. 채수(채소 물)를 낸 뒤 남은 버섯, 무, 다시마 등을 다시 요리하는 등 재료는 거의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혜범스님은 축제에서 뻥튀기를 그릇으로 내놓은 이유를 “빈 그릇으로 시작해 빈 그릇으로 마치는 친환경적 식사법 ‘발우공양’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는 “사찰음식을 경험하면서 환경 문제를 같이 생각하면 좋겠다”며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과 지구의 미래가 바뀌기에 먹거리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했다.

사찰음식을 더 널리 알리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혜범 스님은 2021년 마인드푸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을 함께 딴 비구니 스님 1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협동조합 사업은 주로 지자체, 공공기관 등과 손잡고 진행한다. 지난해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사찰음식을 만들어보고 함께 공양한 뒤 밀키트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전엔 힐링다도와 다식체험, 사찰음식과 문화공연을 접목해보기도 했다. 혜범 스님은 “다른 종교를 가진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다가 음식을 같이 만들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사찰음식(알리기에 나선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쉽게 다가가기에 여전히 문턱이 있다. 혜범 스님은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건강과 환경을 위한 사찰음식을 만들어보고 느껴볼 기회가 열려 있길 바란다. 뜻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푸드트럭을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는 “언젠가는 사찰음식 반찬집도 생겨 손쉽게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다가오는 가을 두 번째 사찰음식 축제마당에선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음식을 준비해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5월19일 성북로 일대에서 열린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에서 혜범 스님이 봉사자들과 뻥튀기에 올린 사찰음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