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먹는 것 따라 몸·지구의 미래 바뀌어요”
성북세계음식축제에 사찰음식 선보인 수월암 주지 혜범 스님
등록 : 2024-06-13 16:07 수정 : 2024-06-13 17:09
6월5일 성북구 성북동 수월암에서 혜범 스님이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 등으로 양념을 최대한 적게 쓰는 사찰음식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혜범 스님은 1992년 출가했다. 공양간 소임 등을 하며 사찰음식을 배웠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2013년 한국사찰음식체험관에서 지도법사를 거쳐 강사로 활동해왔다. 혜범스님은 제철 재료로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양념은 가능한 한 적게 쓰는 것을 강조한다. “오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절여, 참기름에 살짝 볶으면 수강생은 ‘이게 맛있을까’ 하는 표정을 짓는데, 그릇에 담아 내놓으면 대부분의 수강생은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느끼면서 놀라워한다”고 했다. 음식 만들 때의 마음가짐에 관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도 수행의 하나이다. 혜범 스님은 “나쁜기운이나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면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남을 위해 음식을 하는 게 곧 나를 위한 것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찰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타불이’(나와 네가 둘이 아니고, 만물과 내가 하나이다)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사찰음식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할 수 있는 음식이다. 사료 등 탄소 배출이 많은 고기를 쓰지 않고 채소와 곡류, 해초류 등을 재료로 사용한다. 채수(채소 물)를 낸 뒤 남은 버섯, 무, 다시마 등을 다시 요리하는 등 재료는 거의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혜범스님은 축제에서 뻥튀기를 그릇으로 내놓은 이유를 “빈 그릇으로 시작해 빈 그릇으로 마치는 친환경적 식사법 ‘발우공양’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는 “사찰음식을 경험하면서 환경 문제를 같이 생각하면 좋겠다”며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과 지구의 미래가 바뀌기에 먹거리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했다. 사찰음식을 더 널리 알리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혜범 스님은 2021년 마인드푸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을 함께 딴 비구니 스님 1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협동조합 사업은 주로 지자체, 공공기관 등과 손잡고 진행한다. 지난해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사찰음식을 만들어보고 함께 공양한 뒤 밀키트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전엔 힐링다도와 다식체험, 사찰음식과 문화공연을 접목해보기도 했다. 혜범 스님은 “다른 종교를 가진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다가 음식을 같이 만들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사찰음식(알리기에 나선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쉽게 다가가기에 여전히 문턱이 있다. 혜범 스님은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건강과 환경을 위한 사찰음식을 만들어보고 느껴볼 기회가 열려 있길 바란다. 뜻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푸드트럭을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는 “언젠가는 사찰음식 반찬집도 생겨 손쉽게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다가오는 가을 두 번째 사찰음식 축제마당에선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음식을 준비해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5월19일 성북로 일대에서 열린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에서 혜범 스님이 봉사자들과 뻥튀기에 올린 사찰음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