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유럽’ 가입, 연구 환경의 새 변화

문애리 ㅣ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등록 : 2024-06-13 16:10
지난 5월 초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9회 유엔 STI 포럼’에서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이 세션6의 좌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며 발언하고 있다. 세션6에서는 ‘여성 중심의 과학기술 솔루션을 통한 지속가능발전 증진’을 주제로 전문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지난 3월,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로 유럽연합(EU)의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준회원국으로 공식 가입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약 955억유로(약 140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세계 최대의 다자 협력 사업이다. 이번 가입은 무척 의미 있는 성과로, 연구개발(R&D) 및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협력의 폭을 넓히고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첫째, 한국의 연구개발 규모가 대폭 확충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투자 규모 면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번 가입으로 한국은 내년부터 회원국과 동등하게 주관기관 자격으로 과제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회원국 연구자가 지원하는 과제에 파트너로만 참여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 직접 과제를 수주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연구개발 자금 조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연구개발 역량 강화와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연구자들에게는 유럽의 선진 연구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고 기후, 에너지, 모빌리티, 디지털 등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개발 분야의 연구 협력도 활발해질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유럽 시장 접근성이 향상돼 산업 경쟁력 향상에 발판이 될 것이다.

셋째, 포용적 연구·학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이 뒤따를 것이다. 호라이즌 유럽은 연구 및 혁신 시스템 전반에서 성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호라이즌 유럽의 자금을 지원받으려면, 회원국·준회원국의 공공기관, 연구기관, 고등교육기관은 의무적으로 성 평등 계획(Gender Equality Plan)을 마련해야 한다. 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원 간의 성별균형도 강력히 권장되며, 과제 평가에서 동점을 받은 경우, 성 평등 수준 및 주류화 노력이 우선 선정 기준이 된다.

이는 전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한 과학·기술·혁신’(STI for SDGs)을 촉진하기 위해 세계 과학기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10-멤버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필자가 선정돼 활동 중이다. 지난 5월 미국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9회 STI 포럼’에서 각 나라 전문가들은 지속가능 발전의 완성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분야 성 평등이 반드시 달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생 쇼크와 맞물려 과학기술 인력난에 허덕이는 현 상황에서 여성 인재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다양한 관점과 아이디어가 반영될 수 있는 포용적 연구 문화 조성을 위한 노력이 증대되길 기대한다.

과학기술계 성 평등과 더불어 우리나라 R&D 기획·선정·평가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럽연합의 R&D 시스템을 적극 반영해 우리나라 연구 환경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개선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하겠다. 아울러 전세계의 기술 혁신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체계로의 전환이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은 우리나라 연구자들에게 큰 기회임과 동시에 과학기술과 산업의 혁신을 위한 중요한 도전이다. 이 기회를 십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연구자와 기업이 호라이즌 유럽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고 정부 차원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럽의 최신 기술과 지식을 국내로 이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연구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산업계와의 연계를 강화해나가야 하겠다. 호라이즌 유럽 가입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