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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따뜻한 체온 접하는 순간 우울감 사라져요”

전국 지자체 최초 동물매개 치료 교실 시작한 ‘서대문 내품애센터’
참여 주민 만족도 매우 높아…서울시와 전국으로 확산해갈 계획

등록 : 2024-06-27 14:03
“인터넷중독이나 폭력적인 행동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갈 것”

심리상담사와 개, 펫파트너가 협업

심리치료와 재활치료 모두에 활용

노인치매·정서불안 아동 치유 도움

서대문구는 4월17일 홍은동에 ‘서대문 내품애센터’를 개소했다. 서대문 내품애센터는 5월10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동물매개 치유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동물매개 치유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이 18일 서대문 내품애센터 2층에서 동물매개 치유견 ‘서단’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8년 동안 강아지를 키웠는데 하늘나라로 가더라고요. 그 심정, 말도 못해요. 지금도 강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이명숙(85·홍은동)씨는 강아지를 잃은 상실감이 컸지만, ‘서대문 내품애센터’에서 동물매개 치유 교실에 참여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있다. “이렇게 강아지를 다시 만나니 좋죠. 다시 키우고 싶기도 하고.” 이씨는 간식을 들고 “이리 와~ 이리 와~, 이거 줄게”라며 강이지를 불렀다. 강아지가 간식을 받아먹자 “옳지” 하며 이번에는 “악수, 악수 좀 해봐”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귀엽고 이쁘잖아요. 먹을 것 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좋다 그래요. 그렇다고 간식 너무 많이 먹어도 안 되잖아요. 또 우리가 껴안고 하면 스트레스 받겠지.” 이씨는 강아지가 혹시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혼자 있어서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서 기억력에 좋다고 공부할 것만 가져다줘서 앉아서 그런 것만 하는 거지. 그런데 여기 나오면 얘들(강아지)이 말을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얘기할 수 있어 좋지.”

한 주민이 동물매개 치유견을 꼭 안고 있다.

이계수(82·홍제동)씨는 탁자 위에 올라온 강아지에게 머리핀을 꽂아준 뒤 “이쁘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씨가 강아지를 안아주려는데, 그 모습이 조금 어설펐다. “내가 나이를 먹으니까 조금 기억력이 그래요. 지난번에 강아지 안는 법을 배웠는데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이씨는 “강아지에게 간식도 주고 하다보니 마음이 즐거워진다”며 “이런 치유 교실이 있으면 계속 다니려 노력한다”고 했다.

나이가 지긋한 서대문구 주민 5명이 18일 홍은동에 있는 서대문 내품애센터에서 매개 치유견과 즐겁게 지냈다. 간식을 주며 쓰다듬기도 하고 차츰 익숙해지자 빗으로 털을 빗겨주고 머리핀도 꽂아줬다.

지난 4월17일 문을 연 서대문 내품애센터는 반려동물과 공존하기 위한 공간이다. 2층 건물로 1층에는 유기동물 보호·입양 시설이 있고 2층에는 커뮤니티·프로그램 교육 공간, 치유 라운지가 있다. 옥탑에는 실외놀이터와 교육장을 갖췄다. 애견가로 소문난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의지’로 만든 곳이기도 하다.

서대문 내품애센터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체험형 교육, 동물매개 치유 교실 운영, 유기견 보호·입양, 반려견 무료장례서비스 지원 등을 한다. 체험형 교육으로 반려동물의 문제 행동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동교정, 반려동물과 관련한 다양한 참여·실습형 수업, 홍제천이나 안산 반려견 산책로 등에서 하는 펫티켓 산책교실, 반려동물의 체력과 지구력 향상을 위한 장애물 통과(어질리티) 체험 등을 한다.

또한 구 내 반려견 가정을 찾아가 반려견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맞춤형 훈련 ‘찾아가는 우리동네 동물훈련사'도 운영하고 있다.

한 주민이 동물매개 치유견의 털을 빗어주고 있다.

특히 한국삽살개재단에서 매개 치유견인 삽살이 ‘대호’와 ‘서단’을 기증받아 5월10일부터 개를 활용한 동물매개 치유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매개 치료(치유)는 동물매개 심리상담사가 치료 도우미 동물을 활용해 상담자의 심리치료와 재활치료를 돕는 것을 말한다. 심리치료를 통해 상담자의 불안 감소, 자존감 향상, 우울감 감소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재활치료를 통해 운동 기술 향상, 활동 증가, 신체 기능 향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동물매개 치료에는 개, 고양이, 원숭이, 말, 햄스터, 돌고래, 물고기 등을 비롯해 다양한 매개 동물을 활용하는데, 심리치료의 경우 우울증, 자폐스펙트럼, 지적장애, 조현병, 약물중독, 치매 등 대상 범위도 넓다. 이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정서 발달과 심리 안정을 돕는 데도 활용한다. 안주현 서대문구보건소 보건위생과 동물보호팀 주무관은 “동물매개 치유 프로그램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물과 교감하면서 얻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며 “실제 참여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은 만큼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체계적으로 동물매개 치유 교실을 운영하는 곳은 서대문구가 처음이다. 동물매개 치유 교실을 맡아 운영하는 장영임(45)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반려동물학과 교수는 “미술이나 음악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이 있지만, 동물과 교감하면서 얻는 ‘치유의 힘’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며 “그래서인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이 동물매개 치유견을 예쁘게 단장하고 있다.

서대문 내품애센터에서 진행하는 동물매개 치유 교실 참여 인원은 한 번에 최대 6명이다. 이날 동물매개 치유 교실에는 심리상담사 1명, 펫파트너 3명, 개 4마리가 함께 참여했다. 한 프로그램에 여러 마리의 개가 참여하는 것은 개마다 집중력 등 능력의 차이가 있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1시간 동안 한마리가 혼자서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마리가 함께 번갈아가며 매개 역할을 맡고, 그렇지 않을 때는 펫파트너와 함께 옆에서 쉬며 대기한다.

펫파트너는 수시로 매개 동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전사고 등에도 대비하기 위해 꼭 참여한다. “상담자에 따라 힘 조절이 안되고 개에게 위협을 가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어요. 개들이 모두 어릴 때부터 매개 동물 활동 교육을 받았지만 동물이다보니 자신을 보호하려고 돌발 행동을 할 수 있고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살피는 펫 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해요.” 장 교수는 “매개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가 힘들어하는 강아지가 있으면 펫파트너가 따로 있는 휴식 공간으로 옮겨 쉴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 주민이 동물매개 치유견과 인사하고 있다.

“개들도 모두 성향이 달라요. 매개 동물로 선발된 개들은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릅니다.” 매개 역할을 맡는 개들은 타고난 성격에 더해 어릴 때부터 큰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사람을 경계하지 않도록, 접촉과 교감에 익숙하도록 배운다. 장 교수는 “사람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나와 같이 사는 존재라고 학습한다”며 “그래서 누가 만져도 거리낌 없이 만져달라고 들이대고 애교를 부린다”고 설명했다.

서대문 내품애센터는 화요일과 수요일 동물매개 치유 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화요일은 노인, 수요일은 젊은층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 각각 주 1회 1시간씩 4회로 구성됐다.

동물매개 치유 교실 참여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동물매개 치유 교실에 참여한 주민은 1인가구 노인들이다. “활동적인 수업을 하기는 어려운 연령대라서 주로 간식을 주면서 강아지와 친해지고 앉아서 만지고 교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유현정(27) 동물매개 심리상담사는 “사람한테 말하듯 강아지에게 말하면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며 “이런 활동을 통해 혼자 있으면서 느낄 수 있는 우울감, 상실감을 완화하거나 기분을 좋아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개를 만지면서 털과 따뜻한 체온을 접하는 순간 심리상태가 진정된다는 게 과학 실험을 통해 입증됐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죠.” 동물매개 심리상담사는 프로그램 구성이나 프로그램 현장 진행 등 모든 것에 관여하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자들을 치유하는 것이 최종목표다.

“지금은 치매 환자, 지적장애나 자폐스펙트럼, 정서불안 아동 등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치매 환자들의 치유 활동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윤희본 서대문 내품애센터장은 “1차적으로 서울시로 프로그램을 확산하고 효과가 좋으면 전국으로 확산해갈 계획”이라며 “앞으로 인터넷중독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청소년을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동물매개 치유 교실을 진행한 유현정 동물매개 심리상담사(왼쪽부터)와 이지호, 이종민, 여수연 펫파트너. 그리고 동물매개 치유견 뱃지(왼쪽부터), 트리, 빙고, 서단.

이충신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