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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시민이 만들고, 소비하고, 파는 시대”

박진섭 서울에너지공사 사장

등록 : 2017-04-06 14:20
지난 3일 박진섭 서울에너지공사 사장이 에너지의 미래와 개선 방안을 이야기하며 색이 들어간 태양광 전지판 활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장실에 들어서자 특이한 설치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로 2m, 세로 1m 크기의 금속판이다.

“가정에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260W급 미니 태양광 모듈(전지판)이에요. 4인 가족 기준으로 1년 치 냉장고 사용에 충분한 전기를 만들죠.”

박진섭(53) 서울에너지공사 사장의 목소리가 열기를 띤다. 그는 지난해 12월21일 설립된 공사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에너지공사는 친환경에너지의 이용과 보급,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 등을 위해 설립된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다.

취임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공사 설립 배경은?

“기존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출발점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 그해 9월 국내에서 발생한 대규모 순환 정전 등은 에너지 소비와 안전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서해 쪽에 집중된 화력발전소는 서울 시민이 고통받는 미세먼지의 주범 가운데 하나다. 중앙정부가 효율·공급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주도한 결과인데, 지속가능한 에너지 분권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사를 낳았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분권화라니?

“지금까지 에너지 생산은 정부의 몫이었고, 시민은 그저 쓰기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시민 개개인이 생산의 주체가 되는 시대로 바뀌었다. 태양광만 하더라도 기존에는 햇볕이 있는 낮에만 생산과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장장치가 개발돼 밤에도 쓸 수 있다. 현재 서울에서 미니 태양광 모듈을 포함해 태양광 발전에 참여하는 가구가 2만2000가구에 이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누구나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팔기도 하는 에너지 프로슈머(프로듀서+컨슈머) 시대가 열릴 것이다. 서울을 ‘에너지 소비도시'에서 ‘에너지 생산과 자립의 도시'로 만들자는 것이다.”

미니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면 정말 이익이 생기나?


“260W급 베란다형 미니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면, 900L 양문형 냉장고를 1년 내내 쓸 수 있는 전기(300㎾h/년) 생산이 가능하다. 월평균 4700원의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서울시와 자치구 등의 보조금을 이용하면 15만~20만원에 설치할 수 있고, 이후엔 특별한 관리 부담 없이 15~20년 동안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당연히 경제적으로도 이익 아닌가? 지난 폭염 때 평소 5만원이던 전기세가 20만~30만원이 나오는 누진세 폭탄을 맞은 가정이 적지 않았는데, 미니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 가정은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서울시는 그동안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추진해 1단계를 완료했다. 성과를 소개해달라.

“2012년 4월에 시작한 이 정책으로 2년도 채 안 돼 원전 1기 분량에 해당하는 200만TOE(석유환산톤)의 에너지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1TOE는 원유 1t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열량으로, 일반 가정에서 대략 3년5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전기량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다. 서울의 전력자립률도 2011년 2.9%에서 2016년 9.0%로 높아졌다. 이 정책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세계그린빌딩협회(WGBC) 기후변화 리더십상' ‘유엔 공공행정상 시민참여촉진 분야 우수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현재 추진 중인 2단계 사업의 목표는?

“2020년까지 서울시 전력자립률을 20%로 높이는 것이다.”

친환경에너지의 대표적인 외국 사례를 든다면?

“독일 뮌헨이다. 뮌헨은 이미 2015년에 가정과 지하철에 필요한 전력을 친환경에너지만으로 공급했고, 2018년에는 도시 전체 전력의 50%를 친환경에너지로 공급하게 된다. 또 2025년까지 도시에서 필요한 모든 전력을 친환경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에너지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는데, 어떤 전환이 필요한가?

“이미 우리는 탈원전, 탈석탄의 에너지 전환 시대에 접어들었다. 위험하고 불완전한 에너지에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친환경에너지가 답이다. 또 미국 ‘리뉴어블 워크'(Renewable Work) 보고서를 보면, 5900㎿의 친환경에너지 발전시설이 건설되면 1년간 2만8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시설의 운영·유지와 관련된 일자리도 3000개가 생긴다고 한다. 미래 에너지는 일자리의 블루오션이기도 한 셈이다.”

초미세먼지가 큰 숙제다. 어떤 대응 방안이 있을까?

“국가적 차원에선 서해 쪽의 화력 발전을 줄여나가야 한다. 차량의 오염 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전기자동차 사용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 전기가 친환경에너지라면 더 좋을 테고. 연내에 서울에너지공사 안에 태양광에너지 저장장치에서 전기자동차로 연료를 공급하는 ‘솔라 스테이션’을 만들어 시범사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박 사장은 서울시립대 환경정책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실장과 생태지평연구소 상임이사 등 민간 영역의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이후 국가에너지위원회 갈등관리 전문위원 등을 거쳐 2014년부터 SH서울주택도시공사 집단에너지사업단 전문위원과 사업단장을 역임했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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