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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유적지에서 우리는 오늘 ‘인디아나 존스’가 된다”

강동구, 올 봄부터 선사체험 교실 개편해 상시·정기 프로그램 운영
발굴부터 석기 이용 사냥·낚시·요리, 출토 유물 활용 만들기 등 진행

등록 : 2024-07-11 13:44 수정 : 2024-07-11 13:59
선사인 일상생활과 비슷한 활동…유물과 유적의 의미 알아가

실험 고고학 과정 거친 복원 도구로

신석기시대 생활과 자연 모습 상상

“청년층 등 대상 넓혀 운영할 계획”

강동구는 지난봄부터 암사동 유적 선사체험 교실 프로그램을 전면 개편해 정기와 상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실제 유물과 비슷한 재료와 형태로 만든 도구 등을 직접 써보면서 유물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점이 개편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지난 6월21일 어린이집 5살 반 아이들의 유물 발굴 체험과 4살 반 아이들의 흙인형 만들기, 사냥 체험을 진행했다. ‘고고학 꿈나무 발굴단’의 박준희 강사가 발굴 때 사용하는 도구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보여주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지난 6월21일 오전 강동구 암사동 유적지 발굴체험장. ‘암사동 선사 유적 발굴조사 현장’이라 적힌 펼침막에는 유물 발굴에 대한 안내 글과 유적 발굴 모습 사진이 담겼다. 바로 앞 작은 흙무덤엔 삽, 호미(땅 고르게 정리할 때 쓰는 도구), 브러시(흙을 털어주는 도구), 트라월(흙을 긁어내고 날카롭게 잘라내는 도구) 등이 꽂혔거나 눕혀 있다. 그 옆 흙 웅덩이엔 멧돼지 머리뼈, 빗살무늬토기, 간돌도끼, 찍개 등 발굴 유물들과 팻말을 볼 수 있다. 마치 실제 유물 발굴 현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체험장 천막 안에는 노란색 모자에 주황색 조끼를 입은 어린이집 5살 반 아이 17명이 흙 웅덩이를 둘러싸고 둥그렇게 모여 서 있었다. 이날 유물 발굴 체험 ‘고고학 꿈나무 발굴단’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박준희 강사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주인공처럼 탐험복을 입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암사동 유적지의 의미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발굴 활동에 대해 안내했다. 발굴 때 사용하는 도구를 하나씩 보여주며 “모종삽으로 땅을 살살 파고요, 붓으로 찾아낸 유물에 묻은 흙을 살짝 털어주는 겁니다”라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5살 반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모종삽을 잡고 땅을 파고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유물을 찾아볼까요?” 박 강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은 두 동의 천막으로 나눠 활동에 들어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종삽을 잡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뼈, 돌도끼, 토기 조각이 나오면 아이들은 “이게 뭐예요”라고 박 강사에게 물었다. 그는 “풀 자를 때 쓴 석기네요, 쓱싹쓱싹.” “이건 동물 머리뼈인데 송곳니가 없고 어금니만 있는 것을 보면 육식동물은 아닌 것 같아요”라며 고고학 전공자로서 최대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쉽게 표현하며 답했다.

아이들은 찾아낸 유물들을 개인 양동이에 담았다. 옆에서 돌봄교사들이 “유물은 소중하니까 살살 다뤄야 해요”라고 알려줬다. 유물에 붙은 흙을 조심스럽게 붓으로 살살 털어내는 손놀림은 서툴지만, 아이들은 재밌어했다. 간돌칼, 만들다 만 돌칼, 뼈, 토기 조각 등 7개를 찾은 김나림양은 양동이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이집의 김영아 원장은 “아이들은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접한다”며 “놀이처럼 체험하면 아이들 기억에 더 잘 남는다”고 했다. 그는 “내일부터 놀이터 가서 땅 파고 놀며 고고학자를 꿈꾸는 아이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한 아이가 직접 찾아낸 동물 머리뼈를 보여주고 있다.

강동구는 지난봄부터 암사동 유적 선사체험 교실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전면 개편해, 정기와 상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10년 선사체험마을이 문을 연 뒤 그동안은 어린이집·유치원 등 단체 방문자 대상의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만 진행해왔다. 선형탁 선사유적박물관팀장은 “유적과 유물의 가치도 함께 알리고 체험을 다양하게 하고 싶어 하는 (방문객들의) 욕구를 반영해 새로운 위탁 기관과 손잡고 추진했다”고 했다.

정기 프로그램 5가지는 4월 말 운영을 시작했다. ‘선사 사냥꾼 학교’에서는 석기를 만들고 사냥꾼이 되어 활을 쏴보고, ‘신석기 요리교실’에선 석기시대에 사용하던 도구로 먹거리를 만든다. ‘신석기 낚시왕’에선 족대로 물고기를 잡고, ‘고고학 꿈나무 발굴단’에선 고고학자가 되어 발굴에 나선다. ‘신석기 장신구 공방’에선 옥목걸이와 토우를 만든다. 선형탁 팀장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선사시대에 흥미를 갖고 생활상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고고학적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4살 반 아이들의 사냥 체험에서 박준희 강사가 오리나무 활로 화살을 쏴 사슴 과녁을 맞히고 있다.

개편 프로그램의 참가 대상은 유치원생, 초등생, 중등생 등이다. 사냥꾼학교와 요리교실은 성인도 참여할 수 있다. 평일엔 단체 대상 60분, 주말엔 개인 대상 90분 진행하며 체험료는 1인당 1만2천원이다. 사전 예약제로 암사동 유적 누리집(sunsa.gangdong.go.kr)에서 할 수 있다. 선 팀장은 “월 단위로 예약을 받는데 한두 주 만에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좋다”며 “앞으로 청년층 등 대상 연령대를 넓혀갈 계획이다”라고 했다.

상시 프로그램은 6월 시작했다. 선사체험교실 1층 로비에 조성한 ‘암사랑 체험존’에서 키트를 구매해 현장에서 10~20분 정도에 만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키트 종류는 유적지에서 출토한 옥 장신구와 빗살무늬토기를 활용해 만든 두 가지다. ‘옥 장신구 키링’(3천원)은 흑요석으로 초실을 잘라 만든 열쇠고리이고, ‘빗살무늬토기 시문 방향제’(5천원)는 빗살무늬 문양을 새긴 방향제다. 체험 교실을 찾는 사람 누구나 자율로 이용할 수 있고, 주말엔 필요하면 운영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

개편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유물과 비슷한 재료와 형태로 만든 도구 등을 직접 써보면서 유물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점이다.

아이들이 점토를 주물러 만든 고래, 빗살무늬토기 등을 보여주고 있다.

요리교실에서는 격지석기(몸돌에서 떨어진 돌조각)를 커트칼로 사용하고, 사냥에서는 오리나무로 만든 활과 깃털 달린 화살을 쓴다. 발굴 체험 때 찾는 빗살무늬토기 조각은 모닥불로 직접 구워 만들었다.

개편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하는 ‘피에이엘(PAL) 문화유산센터’의 박준희 프로젝트 매니저(PM)는 “실험 고고학적 방법에 기반을 둬 선사시대 유물에 최대한 가깝게 도구 등을 직접 만든다”고 했다. 그는 “체험 참여자들은 선사인이 한 것과 비슷한 활동을 해보면서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짐작하며 유물과 유적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알아간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어린이집 4살 반 17명이 사냥 체험을 했다. 선사체험교실 로비에 모인 아이들에게 박준희 강사는 “신석기 사람들은 멧돼지, 고라니 등을 사냥해 고기를 먹었어요”라며 “우리도 신석기인처럼 사냥하러 갈까요” 하며 뿔소라로 나팔을 불며 출발을 알렸다. 아이들은 두 명씩 손잡고 줄지어 숲 쪽으로 따라나섰다. 박 강사가 “사냥감이 도망가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가야 해요”라고 속삭이며 말하자, 아이들은 몸을 숙여 까치발을 하며 걸었다.

5분쯤 지나 오른쪽 낮은 언덕에 사슴, 멧돼지가 그려진 과녁이 보이자 모두 걸음을 멈췄다. 박 강사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자연환경과 사냥법, 사냥도구 등이 어떻게 변했는지 짧게 설명했다. 오리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을 손에 든 그는 아이들에게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도록 안내했다. 그가 화살을 쏴 사슴 과녁을 맞히자 아이들이 “우와!” 하고 손뼉을 쳤다. 몇몇 아이는 “멧돼지도 쏘아봐요”라고 조르기도 했다.

사냥 체험에 앞서 아이들은 흙인형(토우) 만들기도 했다. 박 강사는 신석기 시대 유물로 발굴된 곰·돼지·사람 모양의 토우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신석기인들은 사냥하고 어두워지면 동물 인형을 만들며 다음날 사냥이 잘되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직접 만든 빗살무늬토기를 보여주며 “흙을 빚어 불에 구우면 이렇게 딱딱해져 물이나 죽을 끓여 먹을 수 있어요”라며 “무늬도 무지개, 문살, 생선뼈 등 다양해요”라고 알려줬다.

책상 앞에 있는 점토(스컬피)를 주물러 좋아하는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보라는 박 강사의 말에 아이들 대부분은 ‘뭘 만들어야지?” 하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5~10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찰흙을 조물조물 만지더니 붕어빵부터 조개껍데기, 토끼, 강아지, 고래, 돼지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애써 만든 고래 꼬리가 떨어져 시무룩하던 한 아이가 이내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돌봄교사가 가까이 가 달래며 꼬리 붙이는 방법을 같이 고민해줬다. 금방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빗살무늬 모양을 처음 봤다는 이다은양은 “(무늬가) 예쁘고, 만드는 게 재밌어요”라고 했다.

6월21일 강동구 암사동 유적 선사체험 교실 강의실에서 박준희 강사가 어린이집 4살 반 아이들에게 신석기 시대 유물로 발굴된 동물 머리뼈를 보여주고 있다. 강동구는 서울을 대표하는 선사 유적지로 사시사철 볼거리, 즐길거리, 만들거리가 있는 곳으로 운영해나가려 한다.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지를 많은 사람이 찾고 다시 방문하는 곳이 되도록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8월엔 지하철 8호선 암사역사공원역이 개통해 접근성도 좋아진다. 한강변으로 이어지는 암사초록길을 하반기 중에 완공할 예정이고 탐방로 정비사업을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 선형탁 팀장은 “서울을 대표하는 선사 유적지로 사시사철 볼거리, 즐길거리, 만들거리가 있는 곳으로 운영하려 한다”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