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기억의 공간이다. 도시의 가로와 건물 하나하나가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고, 그것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이 모여서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 시민의 열망도 도시 공간 속에서 제대로 기억되어야 올바른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독일 베를린에 있을 때 인상적인 거리 이름은 ‘6월17일 거리’였다. 베를린 공대에서 전승탑까지 연결된 가장 큰 도로의 이름인데, 동독 시절 벌어졌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 동베를린이었던 도심지를 지날 때, ‘칼 마르크스 거리’,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를 보면서 이념으로 분단되었던 도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도시가 역사를 기억하고 시민이 이를 토대로 비판적 현실인식을 갖는 것이다.
파리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억하기 위해 왕의 이름을 딴 거리명을 ‘자유, 평등, 박애’ 등으로 바꾸었다. ‘기사의 길’은 ‘평등의 길’로, ‘왕의 정원’은 ‘나무의 정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를 통해 파리의 시민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온전히 기억하고, 민주 사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도로명은 1946년에 만들어졌으니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동시에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되새기는 의미를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인물명을 쓰는 경우 조선 시대의 인물과 일제강점기의 인물명을 따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물과 관련된 서울시의 주요 도로명(32개)을 분류해보니, 조선 시대의 인물이 22개로 68%를 차지하고, 일제강점기의 인물이 6개로 19%를 차지한다. 해방 후 현대사의 인물을 딴 도로명은 없다.
2002년 월드컵의 승리는 거리 응원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고, 이런 시민적 연대의 경험은 촛불시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섹션만 기억할 뿐 당시의 체험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했다.
올해는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지만, 우리는 6월이라는 이름의 주요도로명이나 광장 이름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 2017년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는 촛불 시민들의 열망도 기념 거리 하나 없이 사라져버린다면 치욕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서울의 도로명이 해방 직후에 만들어진 것이고, 지난 70년 한국의 현대사가 격동의 현대사였다면, 이제 현대사의 인물도 중요한 도로명으로 들어갈 만한 시점이다.
4.19 대로, 전태일 대로, 이한열 대로 등으로 주로 도로명을 바꾸어 쓰고, 광화문광장을 촛불시민광장쯤으로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이제까지 촛불시민혁명을 뒷바라지해온 사람이 박원순 시장이니, 서울의 주요 도로명과 광장명을 현대사의 인물과 사건을 따라 바꾸는 것도 함께 마무리했으면 한다. 매사 신중한 서울시장이라지만, 이런 일은 과감하게 실행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 이창현 국민대 교수·전 서울연구원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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