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가진 둘째 치료 힘쓴 어머니
특수학교 설립 위해 발 벗고 나선 뒤
제도와 주민 사이 인식 간극 해소 위해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만들기로 결심
서울 자치구 ‘첫 일자리 지원 사업’ 시작
“학교 청소, 발달장애인 일 될 것” 판단에
인력 수요 다 못 채울 정도로 ‘호응’ 얻어
‘발달장애 요양시설 건립’ 꿈 위해 노력
이은자(52)씨는 5년 전부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씨가 대표로 있는 ‘에이블위㈜’는 건물 위생 관리를 주업으로 하고 직원 중 발달장애인이 70명이나 된다. 전업주부였던 이씨가 어떻게 기업체 대표가 됐는지 궁금했다.
이씨는 둘째가 초등학생 때까진 여느 발달장애인 엄마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아이를 데리고 특수치료를 받으러 열심히 돌아다녔다. 둘째를 중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갈 수 있는 특수학교가 없었다. 서울 남부교육청 관할에서만 특수학교를 탈락한 학생 수가 70명이 훨씬 넘었다.
“그때 제가 너무 화가 났어요. 부모들은 모를 수 있지만 정부는 충분히 알았을 거고 대비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한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유일하게 ‘서울장애인부모연대’(이후 부모연대)에서 도움을 준다고 했다. 연대의 힘으로 일곱 명의 발달장애 학생이 ㄱ중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들의 요구로 학교에는 특수학급이 만들어졌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덕분에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2017년 이씨의 둘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서진학교 자리에 한방전문병원을 짓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이에 동조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주민토론회가 열렸고 이씨도 참석해 발언했다.
“집에서 두 시간 전부터 학교에 가려고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도 부모이고 저도 부모입니다. 단지 장애가 있단 이유만으로 학교를 여기에 지을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욕하면 욕을 듣겠습니다. 여러분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는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에이블위 소속 발달장애 근무자들이 오전에 요리 등의 수업을 듣는 공간.
이후 부모연대 엄마가 나와 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었다. 서진학교는 3년 뒤 개교했고 이 이야기는 영화 <학교 가는 길>로 제작돼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끈질기게 학교 설립을 위해 싸운 이씨를 포함한 부모들은 자녀가 학령기를 넘어서 아이들을 서진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이씨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서진학교 주민토론회에서 제도와 주민 인식 사이의 간극을 보았다. 그 간극을 해결하려면 발달장애인이 지역 사회로 들어가야 하고 그 일은 결국 지역 사회에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8년 이씨는 근로지원인이 되어 취업한 발달장애인의 근로를 돕는 일을 6개월간 했다. 그 일을 하면서 발달장애인 일자리 사업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씨는 구청의 지원을 받아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강서구에서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교 교실 청소에 학부모 동원이 금지되면서 교육청에서 학교로 용역 인건비를 내려보냈다. 하루 2시간에 일당 2만원을 주는 일자리라 지역 주민들이 소일거리로 많이 참여했다. 그런데 ㄴ초등학교에서 청소 상태가 엉망이라며 사람을 바꿔달라고 용역업체에 요청했다. 이씨는 그 일자리에 발달장애인을 넣을 계획을 세웠다.
“청소 용역회사에 가서 우리가 그냥 해줄게. 월급 안 줘도 돼. 그렇게 우리는 무조건 일부터 해요. 학교에 가서도 일단은 써보고 결정해라. 기간도 없어요. 기간을 두면 안 쓰기 때문에. 옆에 잡코치 하는 사람도 따라가고.”
오죽하면 ㄴ초등학교 행정실장은 “왜 우리가 처음이냐? 다른 데 먼저 해보고 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도 그 돈으로는 마땅한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서 결국 이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학교운영위에서 이 안이 통과된 뒤에도 2명의 발달장애인 근로자가 저학년 교실 청소를 담당할 예정이라는 통신문을 전 학년 가정에 보냈다. 이씨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초기엔 매일 학교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석 달 뒤 결과가 좋았다.
“우리 친구들이 본인이 뭔가를 해서 선생님 칭찬을 받은 경험이 없잖아요. 선생님들이 고맙다고 하니까 자존감이 높아진 거예요. 그리고 어린이들한테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그때 이 친구들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본인들이 정말 사회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었구나! 하는….” 근처 학교에서도 발달장애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씨는 다음해에 사회적협동조합 ‘강서 퍼스트잡 지원센터’를 정식으로 세웠다. 퍼스트잡은 발달장애인이 취업할 때 그들의 근로를 도와주는 ‘근로지원인’을 보내는 일을 했다. 그런데 퍼스트잡의 협력업체인 에이블위가 문을 닫을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에이블위에는 발달장애인이 15명이나 고용돼 있는데, 이들이 실직의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씨는 이들의 실직을 막기 위해 개인 자금을 들여 에이블위 지분 일부를 인수해 회사를 살렸다. 현재 회사에는 발달장애인이 70명이 고용돼 있고, 적합한 발달장애인 인력을 찾지 못해서 학교가 원하는 인력 수요를 다 채워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만큼 학교의 만족도가 높다.
제도상 회사가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을 채우지 않으면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에이블위와 같은 장애인 채용 비율이 높은 회사에 투자하면 ‘간접 채용’으로 인정이 돼 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는 이런 제도를 통해서 장애인 채용 기업에 지분 투자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뭘까?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힘들겠지만 버티면 좋겠어요. 경험상 그래도 엄마가 중심을 잡으면 좀 낫더라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 발달장애인 요양시설이 없어요. 발달장애인은 노화 과정이 다르거든요. 그들에게 맞는 요양시설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발달장애인을 위한 생애 서비스가 완성되는 거죠.”
이씨가 하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사업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정부가 해주길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씨는 지금 발달장애인을 포함해 200명 직원이 일하는 에이블위가 잘 운영되게 애쓰고 있다. 이 어려운 일에 도전하여 회사를 운영하는 이은자씨는 우리 사회를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글·사진 강정민 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