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처음에 끓어오르던 기세는 누그러지고 마음을 뒤덮었던 어둠은 걷히거나 최소한 더 짙어지지 않게 된다.”
부산에서 34년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서윤씨는 직장에서 화가 날 때면 로마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년~65년)의 <화에 대하여>에 나오는 이 구절을 떠올린다. 이씨는 이어 ‘손에 잡히지 않는 공허한 바람같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화를 계속 낼 것인가? 아니면 의지를 키우며 화를 서서히 정복해갈 것인가?’를 자신에게 묻는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이씨가 최근 펴낸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도서출판 클래식북스)에는 <화에 대하여>를 비롯해 그가 최근 5년 동안 읽은 고전 39편에 대한 서평이 빼곡히 담겨 있다. 모두 정년을 5년 남긴 이씨에게 은퇴 뒤의 삶에서 철학적 지침이 돼줄 고전이다.
사실 이씨는 20대부터 자기계발서 위주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아침형 인간>을 읽고 실천하면 성공한다고 믿었다. 새벽 시간 눈을 비벼가면서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퇴근하면 컴퓨터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에 다녔다. 어학원에 다니면서 영어를 공부했고 토익시험 점수가 오르면 배움의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2019년 50살이 된 이씨는 바쁘게 살아왔음에도 ‘10년 뒤로 다가온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철학적 기둥을 얻지는 못했다고 느꼈다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고전 읽기다. 계발서 위주로 책을 읽던 이씨에게 고전 읽기는 힘든 작업이었다고 한다. 부산에 있는 독서학교인 ‘생각학교ASK’에 등록한 뒤 읽은 첫 책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는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부터 어리둥절했단다. 학창 시절 세계사 공부를 못한 게 후회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메모하고 책 읽기를 5년간 계속하자 그는 고전 속에서 제2의 인생의 지침이 될 철학을 찾아냈다고 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철학을 독서가 그에게 제공해준 것이다.
그는 <인형의 집>에서는 결혼 생활을,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삶의 방향과 목표를, <오디세이아>에서는 자기 주도적 삶을, <보바리 부인>에서는 욕망의 허상을 다시 성찰했다. 그리고 읽은 고전에 대한 서평을 엮어 독자를 초대했다. 그는 “이 책을 덮을 무렵 독자들도 고전과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책갈피에 담았다.
김보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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