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어여쁜 나비 보면 마음은 어느새 ‘어린 시절’

등록 : 2024-07-26 15:28 수정 : 2024-07-26 16:47
만천곤충박물관 4층 전시실.

소년 때부터 곤충 좋아한 김태완 관장

국내외서 10만 점 곤충 표본 수집한 곳

항생제 탓 사라지는 소똥구리 등 보고

‘귀한 여치 소리’ 들으며 동심에 빠진다

영등포구 만천곤충박물관


신작로 가로수 미루나무 그림자가 송곳처럼 땅에 박히는 오후 2시, 땡볕 아래 개울에서 멱 감고 노는 아이들 소리와 어울려 여름을 시원하게 해줬던 매미 소리가 떠올랐다. 입추가 말복 전에 있는 까닭은 더위에 지친 아이들 힘내라고 선물 같은 고추잠자리를 보여주기 위한 건 아닐까? 가을이 무르익으면 황금 들녘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았다. 큰 병 가득 메뚜기를 잡아 가면 할머니는 고소하고 짭조름한 메뚜기볶음을 만들어 저녁 밥상에 올렸다. 초록색 긴 책상 가운데 선을 긋고 짝꿍과 같이 앉아 공부하던 초등학교 교실 쉬는 시간, 필통마다 담아온 사슴벌레를 꺼내 힘겨루기를 시키면서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소리 지르며 응원했다.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마당에 고이는 어둠이 짙어지면서 밤의 세상이 열렸다. 어둠 속 풀벌레들의 합창을 들으며 잠들던 밤이 있었다. 서울시 영등포구 만천곤충박물관에서 그렇게 놀던 유년의 시골이 생각나 마음이 그윽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의 온갖 곤충과그들이 가진 이야기에 마음은 어릴 때로 돌아가 신이 났다.

5층 전시실에 있는 곤충채집 도구들.
5층 전시실 ‘윙아트’

작은 광에 만든 곤충의 세계

서울도 도심만 빼고 시골이었던 시절, 용산 한강은 그의 놀이터였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도 했지만 그곳에는 그만의 세상, 곤충의 세계가 있었다. 강가의 수풀을 헤치고 다니며 벌레를 잡고 곤충을 채집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강가의 수풀이었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곤충의 세계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곳이 세상 전부였다. 만천곤충박물관 관장 김태완씨의 어릴때 이야기다.

그렇게 잡은 곤충을 집으로 가져왔다. 당시 집 마당 한쪽에 있던 작은 광에서 곤충을 길렀다. 먹이도 주고 물도 주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도 관찰하며 같이 놀았다. 작은 광은 어린 김태완의 커다란 우주였다.

초등학교 때 내준 방학숙제 곤충채집은 그에게는 더없는 놀이였다. 선생님들도 처음 보는 곤충으로 표본을 만들어 냈다. 그의 곤충 표본이 교장실에 걸린 적이 많았다.

공부에 매진하던 중고교 시절에도 곤충채집은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푸는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대학 시절 설악산에 갔을 때 곤충채집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군 시절에도 일과 시간이 끝나고 곤충을 채집할 정도였다.

사회에 나와서 이 일 저 일 하다가 인쇄소를 차려 바쁘게 살았다. 밤낮없이 일하는 날이 많았다. 취미로 낚시하러 다녔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낚시터를 찾았다. 낚싯대를 던져놓고 마음을 비우던 그때 수로에서 뭔가 작은 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다가가 자세히 보았다. 물장군이었다. 물장군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름다웠다. 물장군의 모습에 감탄했다. 일 때문에 소홀했던 곤충채집 본능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국내에서도 곤충채집이 가능했지만, 겨울이 문제였다. 그게 외국으로 곤충채집의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외국 곤충채집 초창기에는 현지 택시기사나 마을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다녔다. 불빛에 모여드는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불 켜진 현지 주유소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숙소 주인에게 숙박비 외에 조금 더 얹어주고 숙소 앞 외등을 밤새 켜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김 관장은 지금도 1년에 10여 회 곤충채집차 외국에 나가고, 회원을 모아 외국 곤충채집 투어도 진행한다고 했다.

헤라클레스장수풍뎅이.
부엉이(눈)나비.

포세이돈금비단제비나비.
130.5㎜ 크기의 ‘키론장수풍뎅이’.

만천곤충박물관에 가면

만천곤충박물관에서 약 5천 종, 10만 점 정도의 곤충 표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소장 개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벽, 진열대, 진열대 아래 서랍에까지 빼곡한 전시품을 다 볼 수 없어 눈에 보이는 것만 봐야 했다. 그것도 많아 김 관장께 10개 정도 표본을 골라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가 남미 ‘헤라클레스장수풍뎅이’였다. 세계 곤충 1호로 명명된, 덩치가 큰 곤충 중 하나이며 외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곤충이란다. 그다음에 보여준 건 남미 페루의 ‘몰포나비’였다.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나비이며,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자유를 꿈꾸는 상징으로 새겼던 나비 문신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엉이 눈 같은 무늬를 자신의 몸에 지닌 ‘부엉이(눈)나비’였다. 천적은 주로 눈을 먼저 공격하는데, 눈 무늬가 있는 날개를 다쳐도 몸통은 도망갈 수 있다고 한다. 날개 길이가 가장 길다는 ‘안티마쿠스대왕제비나비’도 보여줬다.

곤충 중 싸움의 왕인 ‘리옥크대왕여치’는 턱이 발달한 육식곤충으로 새들도 피한다고 한다. 실제로 ‘리옥크대왕여치’가 철망으로 된 보호망을 잘라 탈출한 것을 본 적이 있단다. 흔히 ‘버드윙’이라고 불리는 ‘포세이돈금비단제비나비’는 옛날 영국의 한 식민지에서 영국인이 새로 잘못 알고 총을 쏴서 잡았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나비다. 인도네시아의 의태곤충인 ‘나뭇잎벌레’는 서식하는 나무의 잎과 비슷한 모습으로 산다. 녹색 잎 사이에서는 녹색으로, 시든 잎에는 시든 잎처럼 몸을 변신한다. ‘악어머리뿔매미’는 머리가 악어같이 생겼다.

옛날 초등학교 때 뒷동산에서 잡아 필통에 넣고 다니며 교실에서 힘겨루기를 시켰던 ‘사슴벌레’는 ‘넓적사슴벌레’라는 설명과 함께 그 옆에 같이 전시된 ‘왕사슴벌레’ ‘통사슴벌레’도 보여줬다.

요즘 시골에서도 소똥구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질문에 김 관장은 소 사료에 든 항생제 때문에 소똥에 낳은 알이 모두 죽어버려 소똥구리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이어 소똥구리 중 한 종류인 ‘긴다리소똥구리’는 멧돼지 똥에도 산란하기 때문에 개체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치 소리 들으며 둘러보는 세계의 곤충 이야기

아시아에서 가장 큰 장수풍뎅이인 ‘키론장수풍뎅이’ 중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130.5㎜ 크기의 키론장수풍뎅이 표본을 보고 다른 전시실로 발길을 옮겼다.

새로운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이른바 ‘윙아트’라는 전시물이었다.나비와 곤충의 날개로 다양한 무늬를 만든 것이다. 지금은 윙아트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나비를 주제로 한 대형 전시회에 상징처럼 윙아트를 만들어 전시했다고 한다.

눈길을 사로잡은 전시물이 윙아트라면 귀를 사로잡아 마음을 집중시키는 건 여치 소리였다. 살아 있는 여치를 키우기 때문에 여치 먹이 주기 체험도 할 수 있단다. 덕분에 전시실을 돌아보는 내내 요즘 듣기 어려운 여치소리를 실컷 들었다. 옛날에 마당에 내린 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여치 소리를 들으며 잠들 던 밤이 있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푸근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전시실을 돌아봤다.

신화 속의 곤충들이란 제목의 설명 글 옆에 ‘헤라클레스하늘소’ ‘악타이온장수풍뎅이’ ‘아틀라스장수풍뎅이’를 전시했다. ‘골리앗대왕꽃무지’ ‘토르쿼타귀신뿔꽃무지’ 등 아프리카 곤충과 ‘참나무하늘소’, 의태곤충인 ‘부엉이(눈)나비’도 보았다. ‘아시아의 갑충’이란 설명 아래 모아놓은 ‘오각뿔장수풍뎅이’ ‘키론청동장수풍뎅이’ ‘루데킹멋쟁이사슴벌레’도 있었다. ‘오각뿔장수풍뎅이’는 다섯개의 뿔로 자신을 보호한단다.

아시아의 나비, 중남미의 나비 등 화려한 빛깔과 아름다운 곡선으로 날개를 수놓은 나비는 전시실을 나서기 전 마지막에 보았다.꽃보다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이 전시실을 나선 뒤에도 잊히지 않았다.

관람 정보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12시~1시 점심시간은 쉼) 휴관일: 설날·추석 당일 관람요금: 2천원 문의전화: 02-2675-8724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