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새 정부, 검증된 서울시 정책 콘텐츠로 새 시대 열자”

서울시 10대 분야 과제 각 정당에 제시, 7대 핵심 과제 특징 분석

등록 : 2017-04-20 15:52
서울시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데 포함해야 할 10대 분야 66개 정책 과제를 지난 12일 각 정당에 전달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은 대한민국 혁신의 시험대(테스트베드)이고 다양한 정책으로 세계 도시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서울 정책 콘텐츠와 노하우가 국정에 반영되면 새로운 시대로의 대전환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 재임 5년 동안 서울시가 펼쳐온 정책과 중앙정부에 요구한 내용 등이 66개 정책 과제에 총망라되어 있다. <서울&>은 이들 가운데 7대 핵심 과제를 추려 자세히 소개한다.

지역 성격의 세원은 지방에 이관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지방분권 토크쇼’ 기조연설에 나선 박 시장은 “이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20년이 넘어 성년에 들어섰지만, 청년수당 사태 등을 겪으며 지방자치가 성숙했는지 의문이 든다. 지방정부는 아직도 중앙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가 재정자립도다.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는 1992년 69.6%에서 지난해 46.6%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의 세출 규모는 전체의 40%에 불과한데, 세수는 중앙 대 지방이 8 대 2로 배분되는 비대칭 구조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중앙정부에 예산과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부가가치세의 11%인 지방소비세율을 2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음식업·부동산중개업 등 지방행정과 밀접한 업종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지자체에서 인허가권을 가진 시설에 대한 개별소비세, 그리고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아예 지방세로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막는 특별법 제정

도시의 서민은 높아진 집값과 물가 때문에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 대표적 현상이 이른바 `뜨는 동네'에서 임대료가 오르면서 상권을 활성화시켰던 원주민이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이다. 박 시장은 지난해 3월10일치 <서울&> 창간 인터뷰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건물주들에게도 큰 손해가 되는 일이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한 번에 잡아먹는 것과 같다. 상생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대한 특례를 마련해 지역상생발전구역의 상가건물을 임대차할 때는 계약갱신요구권 등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특별법(지역상권 상생발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주장했다. 또 임대차 거래의 법적 보호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지자체가 임대료 증액 한도를 직접 설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생활임금제의 근거 법령 마련

서울시는 지난해 광역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시가 100% 예산을 대는 민간위탁사업장에 생활임금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생활임금제는 노동자가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다. 지난 3월에는 경기도가 지자체와 산하기관 등에서 일하는 모든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2015년부터 서울시가 선도적으로 도입한 생활임금제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확장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입되고 있는 현황을 보면 야당 출신이 지자체장으로 있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선거로 단체장이 바뀌더라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생활임금위원회에 노동계나 시민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생활임금을 전국의 공공성 있는 분야까지 확산시키기 위해 최저임금법과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노동자이사제 단계적 법제화

지난 1월6일 국내 첫 노동자 이사가 탄생했다. 이날 박 시장은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의 배준식 도시경영연구실 연구위원을 노동자 이사로 임명했다. 노동자이사제는 해당 기관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이사가 돼, 이사회에서 회사가 선임한 이사와 동등한 의결권을 행사한다. 노동과 경영이 완벽히 분리된 기존 시스템에선 불투명한 회사 경영으로 인해 노사 간 반목과 불신이 커지고 결국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치닫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에선 이미 활성화된 제도다.

국내에선 서울시가 처음으로 지난해 조례를 만들어 서울연구원 등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 13곳에서 노동자 이사를 뽑기로 했다. 서울시는 노동자이사제를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방공기업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해 단계적으로 의무화하자고 주장했다. 1단계는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지방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먼저 노동자 이사 선임을 의무화하고, 2단계로 회사법인을 중심으로 민간기업까지 의무화하자는 내용이다.

청년기본법으로 사회안전망 마련

지난해 9월 서울시는 19~29살 서울시민 2831명에게 50만원씩 청년활동지원금(청년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에게 최대 6개월 동안 매달 50만원씩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사업 대상자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직권취소 처분을 내려, 이 사업은 지원금을 한 번만 지급한 뒤 바로 중단됐다. 서울시는 대상자 선정 기준 등을 놓고 복지부와 협의를 계속했지만 최근에야 복지부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청년수당은 오는 6월부터 다시 지급하게 된다. 정부의 반대로 청년수당 지급이 무려 9개월 동안 미뤄진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서울시는 중앙과 지방의 협업을 위한 지원체계가 재정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 청년기본법과 같은 단일한 청년 지원 법안을 제정해 안정적인 지원 근거를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지금까지 고용 중심으로 짜온 청년지원정책도 주거·문화·소득 등을 포괄하는 청년정책으로 전환해 청년들의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하철 무임수송 손실, 국고로 보조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부산교통공사, 대구도시철도공사 등 16개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은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올 상반기 안에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다. 이들은 “무임수송은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 법령과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시행되는 보편적 복지서비스”라며 “이에 대한 재정 지원은 하지 않은 채, 운영기관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의무만 부과하고 있는 정부는 무임수송 지원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5년 동안 서울 지하철 1~9호선의 무임수송 손실 비용은 1조5605억원에 육박한다.

반면 도시철도와 똑같이 만 65살 이상 노년층에게 무임수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레일은 정부로부터 손실액의 70%가량을 지원받고 있다. “국가공기업과 지방공기업을 차별하고 있다”는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의 주장에, 정부는 지자체 산하 도시철도 운영기관에 대한 손실을 보전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시는 무임수송 등 공익서비스 제공으로 발생하는 비용 전액을 국가 또는 원인자가 부담하도록 도시철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직속 용산공원위원회 설치

지난 2월24일 서울시장으로는 처음으로 박 시장이 용산 미군기지를 방문했다. 그는 “미군은 기지를 되도록 빨리 반환하고 남는 터는 최소화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협의하기 위한 채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국토교통부와 미군은 공원 중심부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 등 일부 시설을 당분간 남겨놓는 쪽으로 협의하고 있다. 반면 용산 미군기지 터 전체 그림을 그려 공원화하려는 서울시는 용산공원이 허리만 잘록한 형태로 단절돼 ‘반쪽짜리 공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군이 빠져나간 터의 용도를 두고도 국토부와 서울시는 대립하고 있다. 서울시는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대형 도심공원을 만들려 하나, 땅의 소유권을 가진 국토부는 애초 박물관과 문화시설 등 정부부처 유관시설로 꾸미려다 지난해 11월 백지화를 발표한 뒤 아직 뚜렷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금처럼 국토부에만 맡겨놓으면 반쪽짜리 공원이라도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하기 십상”이라며 정부·서울시·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가 차원의 의사결정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