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천연 염색 40년, 세계 최고의 홍색 뽑아내다
조선 시대 왕실 염색기술 ‘홍염장’으로 첫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김경열씨
등록 : 2017-05-11 14:19
김경열 장인이 서울 북아현동 가구단지에 있는 자신의 명주공방 작업실에서 새로 뽑은 홍염 비단을 펼쳐보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김씨는 중학교 3학년이던 16살에 전통 직물 공예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진학조차 어려워진 가세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씨가 의탁한 외삼촌 댁은 당시 명주실 공방으로 이름난 집안이었다. 외가 친척 할아버지(오성일)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명주실 색실공방을 열었고 그것을 외삼촌이 이어받은 것. 김씨는 이곳에서 명주실 염색과 각종 용도의 합사, 연사, 꼬임 등을 배웠고 표백 정련의 염색 전처리 공정 기술을 전수할 수 있었다. “홍염 인생은 이미 이때 시작됐어요. 그로부터 40여년을 꼬박 조선 시대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홍염의 전 과정이 사실 조선 시대 수작업 그대로니까요.” 김씨는 1982년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자기 공방을 차렸고, 1985년 동갑내기 자수 공예가 이형숙씨와 결혼했다. 남편이 옷감 재단과 염색을 맡고, 아내가 자수를 맡으면서 부부는 자연스레 도반의 길을 걸었다. 홍화 염색은 어떻게 이뤄지나? “보통 염색은 꽃잎을 짓이겨 색을 들이지만, 홍화는 알칼리성 잿물에 넣어야 홍색을 뺄 수 있습니다. 잿물도 홍홧대나 콩대를 태운 천연 잿물을 써야 해요. 여기에 오미자나 매실초를 섞으면 염액이 됩니다. 홍염은 이 염색물을 깨끗하게 정련된 옷감에 색을 입힌 것이죠. 홍염은 염색을 거듭할수록 색이 짙어지기 때문에 더 깊고 좋은 홍색을 얻으려고 수십 번 이상 반복하기도 합니다.” 김씨가 인터뷰 도중 펼쳐보인 본보기첩에는 염색 1회차의 엷고 은은한 홍색 샘플에서 수십 차례의 염색으로 짙을 대로 짙어진 대홍색 등 40여종의 다양한 천연 홍색이 색채의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었다. 김씨 부부는 홍염에 필요한 양질의 염재를 얻기 위해 1989년부터 밭과 임야를 마련했다고 한다. 지금 홍화밭은 충북 단양 고지대에 있다. “자연 염색은 기후와 풍토에 매우 민감합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충청도 구석구석까지 홍화 염색에 좋다는 곳은 다 다녀봤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더욱 겸손한 자세로 홍염의 전승과 문화재 복원에 최선을 다하렵니다.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서울시가 도와준다면 홍염의 명품화에도 나서보고 싶습니다. 홍염 비단으로 최고급 한복을 지을 수 있고, 넥타이나 스카프 같은 양복 소품도 만들 수 있겠지요. 한국의 미를 알리는 훌륭한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요?” 김씨는 큰딸을 비롯한 자녀 삼 남매가 모두 홍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홍염장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싶은 바람도 나타냈다. “저 혼자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으로 비칠까봐 늘 겁이 납니다. 부족한 사람이 문화재 지킴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은 김인숙(전 이화여대 자수과 교수), 김지희(전 효성여대 교수), 김영숙(전 문화재 전문위원)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