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천연 염색 40년, 세계 최고의 홍색 뽑아내다

조선 시대 왕실 염색기술 ‘홍염장’으로 첫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김경열씨

등록 : 2017-05-11 14:19
김경열 장인이 서울 북아현동 가구단지에 있는 자신의 명주공방 작업실에서 새로 뽑은 홍염 비단을 펼쳐보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시는 조선 시대 왕실 염색기술인 홍염장(천에 붉은 물을 들이는 기술)을 서울시무형문화재(제49호)로 지정하고 김경열(59)씨를 기능 보유자로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 홍염 기능이 문화재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40년 이상을 명주실 등 직물 제조와 염색 공예에 종사하면서 2008년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2013년 섬유 가공 부문 대한민국 명장 지정 등 탁월한 기능을 인정받은 한편, 각종 문화재 복원에도 기여한 공로가 커 서울시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서울시가 홍염장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서울이 궁중 문화의 중심지라는 것과 관련이 깊다. “조선왕실 문화 보존에 책임이 있는 서울시가 조선 시대 최고의 색이자 궁중의 격조 높은 색을 보전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서울시는 자평하고 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김씨의 명주실 공방에서 홍염 명장이 되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반인에게 홍염은 낯선 분야이다.

“홍염은 홍화 꽃잎을 따서 옷감 등에 붉은색을 들이는 천연 염색 기술이다. 조선 시대에 홍색은 왕실의 상징 색이다. 왕세자와 당상관 이상만 관복에 붉은색을 쓸 수 있었다. 임금의 용포, 왕비·공주의 예복인 홍원삼에는 가장 짙은 대홍색을 썼다. 왕실 의복과 재화 전담 기관들인 상의원(조선 시대에 임금의 옷과 궁내의 일용품, 보물 따위를 관리하던 관아)과 제용감(조선 시대에 각종 직물 따위를 진상하고 하사하는 일이나 채색이나 염색, 직조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각각 장인 10명이 홍염 일을 전담했다.”

홍화는 어떤 꽃인가?

“홍화는 국화과 일년생 식물로 붉은색을 내는 대표적인 염료식물이다. 잇꽃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 중국 당나라에서 전해졌다.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만 쓰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천연 홍색을 만들어냈다.”

김씨의 홍염 기능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문화재 복원에 홍염 기술이 다양하게 활용되면서부터. 김씨는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재 복원에 참여했다.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 소장 네팔 승려 가사와 충무공 이순신 5대손 이봉상 장군 갑옷, 명성황후 10첩 병풍,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가사 복원 등이 김씨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프랑스로부터 반환받은 규장각 의궤 표지 복원 작업을 맡았다.

김씨의 홍염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것은 남다른 손 감각에 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장인에게는 손끝이 직관입니다. 이론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원하는 색을 뽑아내는 최적의 타이밍은 손 감각이 찾아냅니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이던 16살에 전통 직물 공예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진학조차 어려워진 가세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씨가 의탁한 외삼촌 댁은 당시 명주실 공방으로 이름난 집안이었다. 외가 친척 할아버지(오성일)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명주실 색실공방을 열었고 그것을 외삼촌이 이어받은 것. 김씨는 이곳에서 명주실 염색과 각종 용도의 합사, 연사, 꼬임 등을 배웠고 표백 정련의 염색 전처리 공정 기술을 전수할 수 있었다. “홍염 인생은 이미 이때 시작됐어요. 그로부터 40여년을 꼬박 조선 시대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홍염의 전 과정이 사실 조선 시대 수작업 그대로니까요.”

김씨는 1982년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자기 공방을 차렸고, 1985년 동갑내기 자수 공예가 이형숙씨와 결혼했다. 남편이 옷감 재단과 염색을 맡고, 아내가 자수를 맡으면서 부부는 자연스레 도반의 길을 걸었다.

홍화 염색은 어떻게 이뤄지나?

“보통 염색은 꽃잎을 짓이겨 색을 들이지만, 홍화는 알칼리성 잿물에 넣어야 홍색을 뺄 수 있습니다. 잿물도 홍홧대나 콩대를 태운 천연 잿물을 써야 해요. 여기에 오미자나 매실초를 섞으면 염액이 됩니다. 홍염은 이 염색물을 깨끗하게 정련된 옷감에 색을 입힌 것이죠. 홍염은 염색을 거듭할수록 색이 짙어지기 때문에 더 깊고 좋은 홍색을 얻으려고 수십 번 이상 반복하기도 합니다.”

김씨가 인터뷰 도중 펼쳐보인 본보기첩에는 염색 1회차의 엷고 은은한 홍색 샘플에서 수십 차례의 염색으로 짙을 대로 짙어진 대홍색 등 40여종의 다양한 천연 홍색이 색채의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었다.

김씨 부부는 홍염에 필요한 양질의 염재를 얻기 위해 1989년부터 밭과 임야를 마련했다고 한다. 지금 홍화밭은 충북 단양 고지대에 있다. “자연 염색은 기후와 풍토에 매우 민감합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충청도 구석구석까지 홍화 염색에 좋다는 곳은 다 다녀봤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더욱 겸손한 자세로 홍염의 전승과 문화재 복원에 최선을 다하렵니다.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서울시가 도와준다면 홍염의 명품화에도 나서보고 싶습니다. 홍염 비단으로 최고급 한복을 지을 수 있고, 넥타이나 스카프 같은 양복 소품도 만들 수 있겠지요. 한국의 미를 알리는 훌륭한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요?”

김씨는 큰딸을 비롯한 자녀 삼 남매가 모두 홍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홍염장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싶은 바람도 나타냈다.

“저 혼자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으로 비칠까봐 늘 겁이 납니다. 부족한 사람이 문화재 지킴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은 김인숙(전 이화여대 자수과 교수), 김지희(전 효성여대 교수), 김영숙(전 문화재 전문위원)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