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가 있는 아랫마을은 골목마다 텃밭이 없는 곳이 없다. 초등학교 담장 아래에도 고추와 상추가 보인다. 마을 중간에 있는 넓은 터는 주말농장이다. 윗마을에는 논이 있다. 얼마 전에 모내기를 끝냈다. 농사짓는 서울의 마을, 무수골에 도봉08 마을버스 종점이 있다.
500여년 역사의 무수골
지하철 1·4호선 창동역 1번 출구 앞 ‘창동역 동측 도봉방면 정류장’에서 출발한 도봉08 마을버스가 ‘도봉1파출소 정류장’을 지나면서 무수천을 만난다. 무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도봉초등학교를 지나고 종점인 ‘무수골 정류장’에 도착한다. 도봉08 마을버스 종점 마을이 무수골이다.
무수골은 조선 시대 세종의 아홉째 아들인 영해군(1435~1477)의 묘를 만들면서 생긴 마을이다. 처음에는 수철동(水鐵洞)이라고 했는데 세월이 흘러 무수동(無愁洞)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철’이란 무쇠를 말하는 것이고, ‘무수’란 시름이 없는 것을 뜻한다. 두 말의 연관성은 없어 보이나, 시름이 없다는 뜻의 ‘무수’라는 이름이 낫지 않을까?
무수동은 ‘무시울’ ‘무수골’ 등으로도 일컬어졌다. 지금은 무수골이라고 한다. 무수골은 아랫마을, 중간마을, 윗마을로 나뉘었는데 윗마을은 전주 이씨가 살던 마을이었다.(중간마을과 아랫마을이 현재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도봉초등학교 앞에 무수골 유래비가 있는 것으로 봐서 도봉초등학교 앞 다리 부근이 무수골 아랫마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이 윗마을에 있다. 영해군의 묘를 만들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을이 생긴 지 500년이 넘은 것이다. 전주 이씨와 함께 안동 김씨도 10여 집 살았다. 지금도 전주 이씨 집안사람이 윗마을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
윗마을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250여년 된 느티나무도 있다. 윗마을에서 산으로 약 10여분 올라가면 자현암이 나오는데, 자현암 100m 전 이정표 부근에 ‘함열남궁씨대종산’이라는 비석이 있다. 자현암은 혜향 스님이 1943년에 폐사지에 다시 지은 절이다.
논이 있는 마을
윗마을에는 논도 있다. 마을에서 식당을 하는 전주 이씨 집안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마을이 생기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논이라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모내기를 했다. 도봉구민과 초등학생이 함께하는 모내기 행사도 열었다. 논에 어린 모가 줄 맞춰 심어졌다. 건듯 부는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초록빛 어린 모가 한여름 땡볕과 폭풍우를 이겨내고 자라나 어느 집 밥상에 올라 배고픈 누군가의 마음을 달래줄 것이다.
논이 있는 윗무수골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걷는다. 세일교를 건너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이곳도 윗무수골이다. 길가 도랑 옆에도, 집 앞 텃밭에도 채소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이 채소를 길러 판다.
길옆 담장 아래 작은 웅덩이에 붉은 꽃잎이 떠 있다. 찔레꽃도 피었다. 그 길로 올라가면 ‘북한산둘레길 도봉옛길’을 만난다. ‘도봉옛길’ 들머리 옆에도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 그곳도 다 윗무수골이라고 한다.
‘도봉옛길’ 들머리에서 되돌아 걷는다. 꽃잎 떠 있는 웅덩이 앞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교회가 있는 자리에는 절이 있었다. 오십대인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논두렁을 지나야 했다. 택시 한대 간신히 들어올 넓이의 길이 났을 때에는 택시 기사가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냐며 밤에는 무서워서 누가 이런 곳에 오겠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길은 조금씩 넓어져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벽화가 있는 무수골
세일교를 지나 내려가면 무수골 주말농장이 나온다. 농장을 찾은 가족들이 농사일에 바쁘다. 물을 뿌리는 아이도 있고, 무엇인가를 따는 아줌마도 보인다. 일을 다 끝낸 가족은 이른바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무수골 주말농장 옆에 무수천이 흐른다. 너럭바위가 드러났다. 흐르는 물의 양은 적지만 이번 봄 가뭄을 생각하면 물이 마르지 않은 게 다행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곳에 돗자리를 펴고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은 물에 발을 담그고 냇물을 오르내리며 놀기 바쁘다. 한참 떨어진 상류에는 농사를 끝내고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 옆에 작은 백로 한 마리가 날아와 앉더니 금세 자리를 뜬다.
흐르는 물을 따라 걷는다. 도봉08 마을버스 종점이 냇물 건너편에 있다. 도봉초등학교를 지나 작은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구와 과자를 파는 옛날 가게다. 지금 주인아줌마가 이 가게를 맡은 지 20년이 지났고, 그 이전에도 가게를 했다. 학교 끝난 아이들이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가게를 들락거린다. ‘아폴로’ ‘쫀드기’ 같은, 40여년 전에도 있었던 과자도 있다. ‘아폴로’를 손에 든 아이 얼굴이 밝다. 더위를 식히는 슬러시도 인기다.
아이들이 지나는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졌다. 벽 한쪽에는 연탄재가 쌓여 있고 그 옆에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시가 적혀 있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 아래에도 텃밭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작은 터만 있으면 채소를 심는다. 골목마다 그런 풍경이다. 벽화와 텃밭이 함께 있는 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보는데, 어디서 ‘꼬끼요오!’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