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격조 있는 정치

격탁양청(激濁揚淸) 부딪쳐 흐를 격, 흐릴 탁, 떠올릴 양, 맑을 청

등록 : 2017-05-25 14:14
‘탁한 흐름을 부딪쳐 흘려보내고 맑은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악을 제거하고 선을 권장하는 비유로도 쓴다. 능력 있고 깨끗한 인물을 등용해 새 시대의 기운을 진작하려 할 때 종종 인용되었다.

잘 알려진 출전으로 중국 <구당서> ‘왕규전’이 있다. 왕규는 당 태종 이세민의 현명한 신하다. 원래는 태자 이건성의 측근이었으나 이세민에게 발탁되어 태종의 치세에 기여했다. 그는 특히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태종이 어느 날 중신들과 주연을 즐기던 중에 왕규에게 본인을 비롯한 여러 중신들 인물평을 시켰다.

황제의 질문은 짓궂었지만, 왕규는 슬기롭게 대처했다. 방현령, 이정, 위징 등 내로라하는 재상들의 실무 능력, 전문성, 충성심, 청렴함 등 그 사람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자신은 그들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인재 발굴에 특출하다고 평가받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덧붙인 말이 바로 격탁양청이다.

“혼탁함을 제거하고 깨끗함을 드날리며(激濁揚淸), 사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량한 것을 좋아하는 점(嫉惡好善)에서는 제가 다른 대신들보다 약간 낫습니다.”

격탁양청은 전국 시대 제자백가서의 하나인 <시자>(尸子)에 처음 보인다. 좋은 정치를 물에 비유하면서, 물이 가진 격탁양청의 성질을 물의 의로움(義)이라고 하였다. 물의 덕에는 인의용지(仁義勇知) 네가지가 있다. “뭇 생물을 씻어주고 두루 통하게 하는 것”(沐浴群生 通有萬物)은 물의 어짐이요, “맑은 것을 들어올리고 흐린 것을 쓸어서 모든 찌꺼기가 휩쓸려내려가게 하는 것”(揚淸激濁 蕩去滓穢)은 물의 의로움이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여도 범하기 어렵고, 약한 것 같지만 이기기 어려운 것”(柔而難犯 弱而難勝)이 물의 용기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정치가는 물을 배운다. “큰 강을 이끌어 물길을 넓히며, 가득 차면 겸손하게 아래로 흘러간다.”(導江疎河 惡盈流謙).

몇년 전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면서 반부패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때, 많은 중국 인민들이 격탁양청을 외치며 환영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출범 모습에서는 살벌함을 덜어낸 부드러운 물갈이로서의 격탁양청이 느껴진다. 선거 때 외친 적폐 청산이라는 공약은 비슷한 의미라도 격조가 부족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양청의 밝은 기운이 격탁의 격렬함을 많이 가려주고 있다. 모름지기 격조 있는 정치는 물과 같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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