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마포구 한겨레 사옥 앞에서 이수희 강동구청장(왼쪽)과 이순희 강북구청장이 초선 여성 구청장으로서 새해 구정을 더욱 잘 이끌어가자는 의미에서 손을 잡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
이수희 강동구청장 “50만 구민 시대 도시 환경·인프라 조성 매진”
이순희 강북구청장 “34년 고도제한 완화로 숲속 도시 비전 실현”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꾸물꾸물 흐릿한 지난 16일 오후, 미소와 함께 두 사람이 들어서자 한겨레 본사 로비가 환해졌다. 서울 북쪽 북한산 숲속 마을에서 온 이순희 강북구청장과 동쪽 한강 동네에서 온 이수희 강동구청장이다.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서로 손을 꼭 잡았다.
서울&이 ‘2025년 신년 특집-초선 여성 구청장 대담’을 기획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시 인구는 약 933만 명인데 이 중 여성은 483만 명, 남성은 450만 명이다. 서울시 25개 구청장 중 여성은 4명, 남성은 21명이다. 여성이 구청장인 곳은 강동(이수희), 강북(이순희), 용산(박희영), 은평구(김미경)다. 이들 여성 리더가 서울시민 전체 인구 중 15%인 143만 명의 살림을 챙기고 있다. 초선 여성 구청장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두 사람을 초대했다. 대담은 본사 5층 ‘하니티브이’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이순희(더불어민주당) 구청장은 사회복지 분야 전문가로서 강단에서 20여 년간 활동했으며 34년간 강북구에서 살면서 정치 경험도 키워왔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강북구 최초 여성 구청장으로 당선되면서 오랜 기간 쌓아온 정치적 내공을 펼치게 됐다. 1960년생.
이수희(국민의힘) 구청장은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며 국회의원 출마를 했지만 연이 닿지 않았고, 2022년 지방선거에서 강동구 최초의 여성 구청장으로 당선됐다. 1970년생.
여성 구청장으로서의 소회부터 물었더니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한 해 예산 1조원, 직원 1400명, 구민 28만 명. 이런 큰 살림을 여성이 잘할 수 있겠냐”는 말을 들었단다. 이수희 강동구청장도 선거운동 기간에 같은 말을 들었다. “여자가 구청장 후보로 나왔네?”
하지만 이런 일부 주민의 의구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순희 구청장은 말했다. “구청장으로서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니 주민들의 편견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지난여름부터 연말까지 관내 104개나 되는 경로당을 모두 찾아가 어르신들 손을 잡아드렸어요. 구청장이 온다고 하니 평소 경로당 안 나오던 분들까지 오셨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여성 구청장은 꼼꼼하게 이것도 챙겨주고 저것도 챙겨주고 해서 너무 좋고 고맙다면서 ‘구청장은 여자가 해야 하는 거야’ 하시더라고요.”
한강변 고덕비즈밸리를 품고 있는 강동구.강동구 제공
이수희 구청장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했다. “구정에 남성,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맞지 않지만 현장을 다니다보면 여성 구청장이라서 ‘꼼꼼하다’ ‘야무지다’ ‘세심히 잘 챙긴다’는 말을 많이 듣죠. 주민들 민원을 보면 정말 다양하잖아요. 자연스럽게 일하면서 ‘내가 완전 친정엄마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선거운동을 할 때 유치원 정도 다니는 딸아이를 데려가는 젊은 엄마가 ‘봐봐 여자가 구청장 후보야’라고 말하더라고요. 그게 저는 가장 보람 있었어요. 지금도 그때 그 모녀를 계속 생각해요. 첫 여성 구청장이라는 것이 대표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명의식, 사명감 같은 걸 좀 더 갖고 의식적으로 더 넓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여성으로 대표성에 대한 부담이 족쇄가 아니라 강점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은 참 좋게 생각해요.”
초선 구청장으로서의 소회도 들어봤다. 먼저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고도제한에 묶여 7층 이하 저층 주거지에 34년째 강북구에 살다보니 다른 지역은 정말 확 변했는데 우리 구는 왜 이렇게 발전이 더딜까 하고 답답했죠. 실제로 재산상 너무 큰 피해를 입고 사니까요. 강북구에 살면서 왜 이렇게 구청이 고도제한 문제를 못 풀까 궁금했죠. 당선 후 바로 오언석 도봉구청장과 만나 고도제한 문제에 공동대응하자고 제안하고 주민 서명도 받아 결국 지난해 6월 고도제한을 완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청장 일을 시작해보니 직원들 설득이 가장 어려웠단다. “공무원들은 관행에서 벗어나면 망설이는 경향이 있죠. 예를 들어 강북구는 빌라 비중이 46%나 됩니다. 제가 빌라관리사무소 만든 이유가 또 그거거든요. 그리고 예산을 별로 들이지 않고도 구민들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고 했는데 다들 현실적이지 않다며 어려워했어요. 제가 초선이니까 ‘그래도 해봅시다’라며 밀어붙일 수 있었죠. 관행에 의존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주민에게 도움이 될지 끝없이 고민해야죠. 구청만 바라보는 주민이 많잖아요. 직원들이 관행을 깨고 주민 편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하고 싶었거든요. 재선이나 삼선 같으면 좀 어려웠을 거예요. 초선은 관행이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워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상대적으로 쉽겠죠.”
이수희 구청장은 일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다. “초선은 구정을 완전히 외부인 시각으로 볼 수 있잖아요. 초선이 갖는 최대 강점인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처음에는 기존에 해오던 방식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경계인의 위치에 있으려 해요. 외부인의 시각과 내부인의 시각을 균형과 조화로 유지하려 애씁니다. 구정은 3개 축이 있거든요. 하나는 공무원 조직을 이끌어가야 하고, 다른 하나는 도시 계획적인 면이 있고 마지막으로 복지가 있어요. 도시계획과 복지, 그리고 조직의 장으로서 세 축에 대해 이상과 현실에서 경계인의 위치를 유지하려 합니다.”
이수희 구청장은 지난해 연말 바빴던 어느 날 하루 일정을 소개했다. ‘09:30 동지팥죽 나눔→ 10:30 위촉장 수여→ 11:00 단체 정기총회→ 14:00 성금 전달식→ 15:10 수상 사진촬영→ 16:00 송년 전시회→ 17:00 송년 단체 모임→ 18:15 동 주민 총회→ 18:45 동 주민 총회→ 19:10 시장 송년회→ 19:20 협회 송년회→ 19:50 이취임식→ 21:00 성과보고회’
여성 리더십이 조직이나 기업에서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는 많다. 지금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에선 여성의 강점인 관계 지향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서울의 두 여성 리더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가는 맞춤 행정으로 2025년을 맞은 구민들은 행복하다.
묵묵히 ‘주민 행복’만을 위해 달려온 두 여성 리더는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강변 고덕비즈밸리를 품고 있는 강동구.강동구 제공
강동구의 열쇳말은 ‘성장하는 디벨롭(develop) 도시’다. 고덕비즈밸리와 대규모 주거단지 입주로 신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천호·고덕·둔촌·성내·암사·강일·명일·상일동 등 19개 동에 주민 48만여 명, 21만여 가구가 있고 구 공무원은 1500여 명, 올해 본예산 규모는 약 1조1천억원이다.
임기 후반기 50만 구민 시대 맞이로 바쁘다. 특히 최대 숙원과제였던 지티엑스-디(GTX-D) 노선 강동구 경유가 확정됐고 2028년 9호선 4단계 연장사업이 완공되면 환승 없이 강남까지 20분대로 갈 수 있다. 또 직결화가 되면 노선 한 개 신설 효과가 있다는 굽은다리역과 둔촌동역을 연결하는 5호선 직결화 사업은 서울시, 국토교통부와 계속 협의해나갈 계획이다.
최근 고덕·강일·상일동은 신축아파트 입주로 30·40대 세대 전입이 대폭 늘면서 강동의 출산율은 4년 연속 서울시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국공립어린이집 8곳을 새로 열고, 서울형 키즈카페 2곳, 우리동네 키움센터 2곳을 추가로 연다. 고덕강일3지구 내 강솔초등학교 강현캠퍼스 신설도 확정됐다.
서울 동부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고덕비즈밸리는 지난해 18개 기업이 입주했고 올해 6개 기업이 들어오면 입주가 대부분 마무리된다. 특히 4월 말 서울시 최초로 이케아가 문을 열고, 하반기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착공, 아산병원의 신약 바이오벤처, 의공학연구소 이전이 계획돼 있다.
한강은 여전히 숙제이자 희망이다. 상수원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군사보호구역, 생태경관보전지역 등으로 묶여 있어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각종 규제 해소 방안과 친환경 한강변 개발을 위한 자체 용역을 추진 중이다. 한강변의 친환경적 개발은 강동구 미래의 필수사업으로 한강 수면을 걷는 듯한 산책로, 자전거 거점 시설 등 볼거리, 즐길거리를 조성해 한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동의 낙조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힐링 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구민 복지도 야무지게 챙긴다. 보건복지부 지역사회복지 평가 중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 제공’ 부분에서 4년 연속(2021~2024년) 우수 지방자치단체로 장관상을 받는 등 사례 관리 중심의 다양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도 강화할 계획이다.
북한산을 기반으로 웰니스 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강북구.강북구 제공
올해로 개청 30년을 맞는 강북구의 열쇳말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웰니스 도시’다. 어디서든 북한산을 조망하는 주거환경과 오패산, 우이천 등 자연환경에 더해 근현대사 기념관, 국립4·19민주묘지 같은 문화 콘텐츠가 조화로운 도시다. 미아·번동·수유동 등 13개 동에 28만여 주민, 약 14만여 가구가 있고, 구 공무원은 1400여 명, 올해 구 예산은 약 9500억원 규모다.
2026년 착공 예정인 강북구청 신청사 조감도.강북구 제공
강북구 최대 과제는 구민들의 더 나은 주거환경에 대한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주거정비사업이다. 1990년부터 30년 넘게 강북구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가로막은 북한산국립공원 일대 고도제한이 지난해 6월 서울시 도시관리계획 결정고시로 완화되면서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첫 수혜지인 소나무 협동마을을 시작으로 삼양동, 수유1동, 우이동, 인수동 일대의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구는 재개발재건축자문단, 정비사업 코디네이터 운영 등 다양한 지원책으로 정비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국 최초 ‘빌라관리사무소’ 개소식.강북구 제공
전국 지자체 최초로 주거정비 마스터플랜인 ‘주거지 정비 기본계획’도 수립 중이다. 무분별한 난개발을 방지하고 고도제한 완화에 따른 정비사업,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 등 정비사업을 더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아파트처럼 빌라를 공동관리하는 인기 만점인 ‘빌라관리사무소’ 사업도 확대한다. 올해 4곳을 추가 운영하고 내년에는 강북구 전역으로 확대한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틀도 다지고 있다. 2026년 착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신청사 건립 추진 사업과 수유·번동 지구단위계획 재정비를 통해 수유역을 포함한 도봉로 일대를 서울 동북권 대표 상업지구로 발전시키고 미아사거리역 일대도 지구단위계획 재정비를 추진해 용적률 상향 등 규모 있는 개발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교통 인프라 확충을 위해 도시철도 신강북선 유치, 동북선 조기 완공에도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우이천 수변활력거점 조성, 북한산 일대 우이령 문화공원, 북한산 시민천문대, 수유동 한옥마을 건립으로 새로운 관광명소를 만들고 지역상권과 연계한 개성 있는 축제들로 지역에 활기를 더해, 자연의 여유와 도시의 편리함이 함께하는 서울시 대표 웰니스 도시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강북구는 2024년 보건복지부 전국 지자체 장애인복지사업 평가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지역을 위해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로 더욱 세심하게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사진 강동구, 강북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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