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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경유 없이 스스로 목소리 내는 시민들에 주목”

3년 임기 끝내고 2기 선장 맡은 정선애 서울NPO지원센터장

등록 : 2017-06-01 14:35
정선애 서울NPO지원센터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센터 사무실에서 ‘잊지 마세요, 사회 변화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입니다’는 문구가 새겨진 센터 홍보 포스터를 가리키며 밝게 웃고 있다.
“센터에서 만든 사이트 ‘미트쉐어’(meetshare.parti.xyz)는 ‘작지만 멋진 일’이라는 모토로 ‘하루 한번 텀블러 쓰기’ 등 개개인들이 정한 의미 있는 일들을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세 사람 이상만 모여서 좋은 일을 하면 지원했어요. 재미있겠죠?”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사무실에서 진행된 1시간 반 남짓한 인터뷰 동안 정선애(52) 서울NPO지원센터장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재미있죠? 재미있겠죠?’다. 그는 센터에서 주최한 전시회를 소개할 때도, 센터에서 만든 팸플릿을 보여줄 때도 ‘재미’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았다.

그 반복되는 ‘재미’라는 말 탓에 2014년 초 창립 이후 지난 3년간의 서울NPO지원센터 일들이 마냥 즐거웠을 거라고 잠시 착각했다. 하지만 그가 인터뷰 중간에 “처음엔 너무 낯선 일들이 많아서 일이 안 풀려 힘들었다” “상근자들 중에는 눈물을 흘린 사람도 많았다”고 말할 때에야 다가오는 게 있었다. 우리가 체험하는 그 ‘재미’는 사실 정 센터장을 비롯해 15명 직원이 ‘맨땅에서’ 때론 땀으로, 때론 눈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었다.

정 센터장은 지난 3년간 서울NPO지원센터를 맡아 1차 항해를 마치고, 다시 센터장으로서 임기 3년의 2차 항해를 시작했다. 재미와 눈물이 공존하는 1차 항해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펼쳐질 2차 항해의 새로운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힘들면서도 재미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달라진 시민들을 만나고 그들 속에서 시민운동의 미래를 찾는 과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정말 시민들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빚진 마음을 가지고 시민단체 회원이 되고 가끔 광장에 나가는 정도의 활동을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여러 활동을 만들고 주도한다. 시민들이 시민단체를 경유하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어떤 시민들은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해 ‘세월호 우산’을 만들어서 그 수익금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쓰레기 도감을 만들어 경로를 추적하는 분도 있다. 이분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무브먼트(운동)가 아니라 프랙티스(실천)라고 한다.”

시민들이 시민단체를 통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면 시민단체들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가?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한 예로 기존 시민단체들은 조직을 강조해왔는데, 새로운 시민들은 각성된 개인의 느슨한 연대를 중요시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이 상황을 잘 건널 수 있다면 시민단체의 토대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정 센터장은 ‘박근혜 탄핵’도 “자발적인 시민들의 의지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며 모아낸 ‘박근혜정권퇴진행동’ 등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조직이 있어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일을 할 수 있다”며 “새로운 시민들도 그런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3년 센터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마른 논에 물을 조금 준 정도다. 3년 전 센터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 시민단체 이미지는 링거 꽂고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가 떠오를 정도로 기초 토대가 많이 취약해진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사회문제는 복잡해지고 시민들은 변하는데, 단체의 대응은 개별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상황을 헤쳐가기 위해 전통적인 지원을 넘어서는 지원활동을 해왔다. 센터가 ‘서울시민 공익활동의 베이스캠프’라는 자세로 시민단체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개별 단체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고, 전체 ‘시민단체의 생태계’를 강화해온 것이 그것이다.”

정 센터장은 이를 위해 “센터가 ‘공공재를 생산하는 기능’을 주로 해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모범 사례를 스스로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센터에서 해마다 펴내고 있는 <지속가능보고서>가 대표 사례다. 이 보고서는 새로운 시민 등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담음으로써 그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데 유용하다고 한다. 센터가 이 보고서를 펴낸 이후 지금까지 모두 12개의 단체가 같은 형태의 보고서를 발행하면서 회원 등과 소통 면을 넓혔다고 한다.

2기 NPO지원센터 활동은 어떤 데 주력할 건가?

“1기 때 마른 논에 물을 준 것을 기초로 이제는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협치’ 정신의 강화다. 국가가 시민단체에 보조금을 많이 주는 방식으로는 사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시민단체를 ‘사회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 역량을 강화해나가겠다. 특히 시민사회를 지원 대상으로 보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을, ‘시민 성장이 사회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는 ‘시민사회발전기본법’(가칭)으로 바꾸는 데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정 센터장은 ‘엔피오의 미래를 연구하는 기능 강화’도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미 엔지오나 엔피오라는 말 대신 하이브리드 조직, NFPO(Non For Profit Organization), WGO(With Government Organization)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우리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시민단체 조직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NPO지원센터의 ‘두번째 항해’도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도 정 센터장은 다시 ‘재미’를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해본다. 1996년 이후 ‘최초의 시민단체’인 경실련 활동에서부터, ‘최초의 온라인 시민활동단체’인 함께하는시민행동, 그리고 인권의 주류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인권 영역을 개척했던 한국인권재단 활동까지 ‘최초라 이름 붙은 맨땅’에서 시민활동의 의미 있는 성과물들을 만들어낸 그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