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인형극으로 자신 인생의 ‘주인공’ 돼가는 어르신들
동대문구 제기동 감초마을시니어인형극단 ‘은빛찬란’
손주 소통 위해 시작해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도 누려
자치구와 도서관 도움받아 서로 성장하는 공동체로
등록 : 2025-02-13 13:28 수정 : 2025-02-13 13:50
시니어극단 ‘은빛찬란’ 단원들이 6일 동대문구 제기동감초마을현진건기념도서관에서 해오름어린이집 원아들을 위해 ‘춤추는 노래 주머니’ 인형극 공연을 마친 뒤 인형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임은선·김미란·변호식·박순길·홍영임 단원과 장은령 자원봉사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시니어극단 ‘은빛찬란’ 단원들이 6일 동대문구 제기동 현진건기념도서관에서 해오름어린이집 원생에게 ‘춤추는 노래 주머니’라는 인형극을 공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모두 새로운 도전이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셨지만 의욕과 열정으로 정말 열심히 과정에 참여하시더군요.” 김수희 도서관장의 설명이다. 인형극이 완성된 뒤 공연장은 도서관 도움으로 5층 프로그램실을 사용하기로 하고 동대문구의 다른 도서관 원정공연도 추진하는 등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던 중 도서관과 극단원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동대문구가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시니어인형극단을 창단하고 과정 수료자들을 극단원으로 채용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2월부터 10개월 동안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로 활동비를 지급으며 활동하게 됐다. 소통으로 시작해 계속되는 도전 조카 손주를 돌보던 임은선(70)씨는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어휘가 풍부한지 내가 뭐라도 배워야 소통하며 아이를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인형극에 관심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 다른 단원들도 모두 한결같이 공감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했던 박순길(71)씨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즐거웠지만 인형극을 통해 몸으로 연기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깨닫게 됐다”며 “단원과 함께 인형극을 만들고 준비하는 과정은 더욱 즐겁다”고 전했다. 변호식(72)씨는 “책을 빌리러 도서관을 자주 찾다가 우연히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함께 계속하자는 동기생들의 격려 덕분으로 교육과정을 완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각자의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인형극으로 한마음이 된 이들은 도서관에서 제공한 인형극단 양성교육을 받으며 어설펐던 동작도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단순한 동작을 넘어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성취감도 느꼈다. 현재 은빛찬란은 인형극에 이어 ‘그림자인형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도 준비하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단원들끼리 스토리부터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가는 중이다. 경기도 이천에 살다 손주 둘을 돌보기 위해 동대문구로 옮겨온 김미란(68)씨는 “서로 이기고 지는 경주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아 3단계 구성으로 만들고 있다”며 “독서 뒤 독후 활동을 하듯 공연 뒤 요즘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감정 나누기 활동까지 포함해 아이들과 소통에 도움이 되도록 준비해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 자신을 찾는 기회가 된 인형극 아이들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시작한 인형극이지만 단원들은 그 활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다른 단원들과 어울리며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는 것도 큰 보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영임(65)씨는 “목소리가 작아 꼭 필요한 얘기를 안 하고 살았던 내가 인형극단 활동을 하면서부터 내 감정을 표현하고 아이들 앞에서 발표도 하니 내게 없던 새로운 면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임은선씨도 “공연 준비를 위해 하루 서너 시간 대화하고 커피숍과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도 하면서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돼가는 데 적응하다보니 세상 변화를 따라가게 되고 손주들과 소통도 잘돼 극단 활동이 나 자신의 성장에 진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형극단 최고령인 변호식씨는 “평생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서 살아왔는데 일흔이 넘어서야 단원들과 내 생각을 말하고 나눌 수 있게 돼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라며 지난 세월이 떠오른 듯 젖은 눈가에서 눈물을 닦아냈다. 고령인구 비중이 높은 편인 동대문구의 시니어인형극단 은빛찬란. 이들은 아이들을 향해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변화를 통해 자신을 찾고, 서로 이해하는 공동체로 성장을 모색하고 있었다. 은빛찬란 지원 등 동대문구
역량 활용 새 어르신 일자리 ‘눈길’ 시니어인형극단 ‘은빛찬란'의 적극적인 활동 배경에는 동대문구(구청장 이필형)의 어르신 일자리 지원 정책이 있다. 구는 올해부터 어르신 일자리 사업 4종을 추가했는데 그중 하나가 시니어인형극단이다. 구는 기존 어르신 일자리의 약 90%가 청소, 교통정리, 배송, 안내 등 단순 반복, 보조적인 성격의 일자리여서 참여자들의 성취감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구는 관내에 영화학교 등 다양한 시니어 교육과정이 있지만 취미활동에 그치는 현실에 주목했다. 무관하던 이 둘을 연계함으로써 새로운 시너지를 모색하자는 발상을 했는데 그 결과가 올해 시작된 ‘재능꾼 어르신 일자리사업’이다.
시니어줍깅단과 시니어스트레칭강사단 활동 어르신(가운데 조끼 입은 이). 동대문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