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의 즐거움

서울, 이곳 l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등록 : 2025-02-27 14:06
방화대교와 행주대교 사이 강서습지생태공원

지난가을 지인이 서울 근교 농가를 개조해 공방을 열었다. 그곳에서 제비집을 보았다. 지붕과 벽이 만나는 곳 언저리에 착 붙은 모양새가 아주 야무지다. 까치집도 그렇고 제비집도 그렇고 새들은 어디서 건축 기술을 배우기에 저리도 집을 잘 짓는지 경이롭다.

나무 높은 곳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때가 가을이라 제비는 날아가고 빈집뿐이었지만, 어려서 보았던 제비집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줄곧 제비를 기다리고 있다. 강남 갔던 제비가 과연 다시 올지 궁금하다. 영어 속담에 ‘주전자를 지켜보고 있으면 물이 끓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겨우내 끄떡없이 잘 기다려 놓고 3월을 목전에 두고 있자니 봄이 왜 이리 더디 오나 조바심이 난다. 어디 제비집뿐이랴. 예전엔 참새도 참 많았다. 주거 형태가 달라져서 그런 건지 개체 수 자체가 줄어든 건지, 이제 이 도시에선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뚱뚱해진 비둘기만 득시글하다.

조류전망대

그런 줄만 알았다. 도시에서 새가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동화책에서나 보던 부엉이, 개똥지빠귀, 백로 같은 새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서울 하늘 아래 말이다. 내가 찾은 이곳은 강서습지생태공원이다. 강서습지생태공원은 방화대교 남단과 행주대교 남단 사이 한강 둔치에 있는 생태공원이다. 2002년 개원했는데,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 먹이가 풍부한 이곳에 생태계를 복원하자 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칡부엉이, 황조롱이, 청딱따구리, 박새 등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새들이 이곳에 산다. 서울시가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쌍안경도 무료로 빌려주고 있으니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를 통해 참여해보길 추천한다.

‘탐조’는 새를 보는 활동이다. 서구에선 꽤 인기 있는 취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최근 들어 점차 느는 추세다. 동물을 좋아하고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탐조는 매우 추천할 만한 취미 활동이다. 자연을 찾아 걷다가, 새가 나타나면 쌍안경으로 관찰하고, 날아가면 또다시 새를 찾아 걷는다. 보호색을 하고 있어 눈에 띄지 않던 녀석들도 자꾸 보다보면 숨은그림찾기 하듯 제 모습을 드러낸다. 맨눈으로 새를 발견한 뒤 살며시 쌍안경을 갖다 대면 새들 고유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전세계 수십억 인구 중 똑같은 얼굴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뺨에 흰 점이든, 부리의 색깔이든, 꽁지의 모양이든, 정수리 깃털이든 어디가 달라도 다른 자기들만의 특징 말이다.


자연에 푹 파묻혀 새를 관찰하다보면, 어른이고 아이고 똑같이 동심을 품게 된다. 고맙게도 새들의 날갯짓을 쫓는 사이 잡념도 날아간다. 탐조에 재미를 붙이고 나니 야생의 생태계가 잘 보존된 국외로도 탐조 여행을 떠나고픈 욕심이 생긴다. 한발 더 나아가 관찰한 새를 그림으로도 그려보고 싶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미래한강본부에서는 다양한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음주면 3월이다. 겨울 철새가 날아가고 여름 철새가 찾아올 것이다. 기러기가 떠난 자리엔 어떤 새가 날아들려나? 겨울 철새와 여름 철새가 계절을 갈아타며 번갈아 이사하고, 나그네새와 텃새까지 가세해 이 공원을 함께 쓴다. 관심 없는 자의 눈엔 그저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겠지만 자연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부디 명심하길! 이곳에선 새들이 주인이고 사람은 손님이다. 생태계가 왜곡되지 않도록 손님은 잠잠히 바라볼 뿐이다. 그것이 손님의 예의다.

남편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시간이 더 많아질 텐데, 차고 넘치는 시간을 뭘 하며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낼지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눈다. 어떤 이는 은퇴 후 따뜻한 동남아로 날아가 한 달 살기를 하며 여행자로 살고 싶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봉사자로 인생 후반기를 보내고 싶다고도 한다. 다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가 꼭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탐조는 자연을 감상하며 운동도 겸하는 최고의 취미가 될 수 있다. 이번에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새를 관찰하는 재미를 톡톡히 들였으니, 신록이 우거지는 계절엔 수목이 울창한 광릉수목원으로 탐조를 다녀오고 싶다. 나무에 딱딱딱 구멍을 내는 딱따구리를 마주할 생각을 하니 벌써 아이처럼 신이 난다. 그전에 우선 쌍안경부터 하나 장만해야겠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