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석의 좋은 건축 나쁜 건축 이상한 건축
현대의 바벨탑, 마천루 강국 한국
등록 : 2017-06-01 16:11 수정 : 2017-07-20 15:25
하지만 자고 나면 여기저기 더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니 이런 식의 등수 싸움은 부질없다. 2020년에 인류 역사상 1㎞ 높이의 벽을 최초로 깨고 높이 경쟁의 신기원을 이룰 제다타워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완공될 예정이고, 2020년대 초만 돼도 중국 각지에서 비 온 뒤 죽순마냥 올라오는 마천루들이 롯데타워를 10위 밖으로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상도 계획 중인 프로젝트들은 제외하고, 현재 건설 중인 것들만 따진 것이니 애초에 순위에 대한 미련은 갖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세계 100대 마천루 높이 80m나 높아져 재미있는 것은, 2000년 이후에 건설된 전 세계 모든 200m 이상 건물의 높이 평균은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2010년 이후로는 약간의 내림세마저 보인다. 그런데 이에 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100개의 평균 높이는 해마다 상승세를 거듭해 21세기 들어와서만 80m나 높아졌다. 마천루의 실용적 필요에 의한 높이는 230m 남짓인데, 높이 경쟁은 이와는 관계없이 가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천루는 기실 엄청난 예산이 드는 대공사가 따르는 사업이라, 계획할 때 합목적성과 경제성을 가장 먼저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 건물이 지어질 도시의 환경과 인구밀도, 경제, 부동산 가치 등 실제적 지표가 실행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 일반적인 건설 사업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최고 높이를 다투는 마천루들의 개발은 쉽게 손꼽을 수 있는 기본 여건들과 딱 떨어지는 상관관계를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인구밀도 높은 한국이나 중국,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마천루가, 인구밀도도 크게 높지 않고 끝없는 모래밭에 인프라마저 열악한 지역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거나, 뚜렷한 현실적 용도가 아닌 어떤 이유로 추진되기도 한다. 떠오르는 국가의 권력 또는 문화적 과시? 세계화에 편승? 세계적 존재감에 도전하는 기업 또는 지역·정부의 욕구? 하지만 경제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에 계획되었던 마천루가, 완공될 즈음 불어닥치는 불황으로 건축주는 물론 사회경제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마천루의 저주’라고도 하는 이 현상을 그저 남의 잔치에 괜한 트집으로 보기에는 사안이 무겁다.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인류는 알게 모르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왔다. 최소한 기술문명의 발전 면에서는 그러했다. 마천루 건설이 막아설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 그것에 반대할 기회도 없이 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 후세에게 덜 미안하도록 효용 높고 안전한 방향으로 발전시켜가야 한다. 건축의 가치는 결코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 유럽 나라 중 완성된 도시의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밀쳐두고 마천루를 옮겨 심으려는 나라는 없다. 마천루 경쟁은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아시아와 중동 산유국들의 리그이고,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은 그 소용돌이에서 저만치 비켜 서 있다. 마천루의 개발은 존재감의 과시보다는 논리적 접근이 먼저고, 건축주와 건축가는 사회적 편의를 최상위에 두어야 한다. 하늘에 닿으려면 걸맞은 능력과 무거운 책임이 따르고, 바벨탑은 두드리고 또 두드려 건너야 할 조심스러운 돌다리다. 글·그래픽 안준석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