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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 은하수길 탄생, 쉴 공간 부족한 공중 정원

‘서울로 7017’ 비평

등록 : 2017-06-08 15:22
저녁 무렵의 서울로 7017. 땅거미가 지면 가로등에 새파란 불이 들어와 서울로 7017은 낮과는 딴판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서울시 제공
은하수의 계절이라 하는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하늘에 총총 뜬 별을 바라기는커녕 미세먼지와 스모그로 몸살을 앓는 우리가 딱했던지, 서울역으로 넘어서는 고가도로가 푸른빛 은하수로 우리를 다시 찾았다.

1970년대 초 교통 체증 덜어보려고 올린 서울역 고가도로. 오랜 시간 힘들게 버티며 고생했지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나는 허망하게 퇴역하기보다는 묵은 때 씻어내고 아픈 곳 보강해서 힘든 역할 다시 맡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갑자기 꽃단장을 하고 보행전용 공원 ‘서울로 7017’로 우리 눈앞에 등장했으니, 일단 시민들을 놀래키는 데는 성공했다. 누구보다 서울역 고가 인근을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는 주민, 상인, 직장인들은 고가도로가 사라지면 당장 닥칠 교통 체증과 상권에 미칠 영향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경마장에서 달리다 말고 꽃장식한 홍보용 말로 팔려가 관객을 울렸던 영화(<각설탕> 이환경 감독, 2006) 속의 경주마 ‘천둥’이가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입안자들은 고가도로는 낡아 위험하고, 교통 문제야 차차 익숙해질 것이니, 파리의 쿨레 베르트(푸른 오솔길)나 뉴욕의 하이라인 같은 멋진 고가 공원을 우리라고 서울 한복판에 두지 못하란 법 있나 하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시카고에서도 자전거까지 다니는 엄청난 고가 공원을 조성할 거라는데, 서울이 뒤처질 수는 더욱 없었다. 이 프로젝트의 건축가 비니 마스도 혀를 내두른 한국의 신속한 결정과 실행은 ‘서울로 7017’을 서둘러, 호기롭게 우리 곁에 불러앉혔다.

생태도시를 향한 단초 제공

‘서울로 7017’은 잘난 면도 꽤 많다. 먼저 차량 통행 대신 보행의 숨통을 텄다. 남대문 쪽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이동을 통한 목적 달성을 빼면 그 여정이 얼마나 지루하고 불편하며 의미 없는지. 서울역 지하도를 걸으며 항상 느끼는 불결함, 두려움, 연민에다, 매연으로 폐에 상처 나는 느낌까지 덤으로 받는다. 그렇게 삭막하던 길을, 온갖 수목 사이로 바람을 받으며 10여분이나 단축해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게다가 빌딩 섬들로만 빽빽하고 초록의 네트워크라고는 찾기 힘든 서울에 그려진 초록빛 보행로는 생태도시를 향한 가슴 벅찬 단초를 제공한다. 주변의 특징 있는 지역들을 보행 고가로 꿰어서 보배로 만들려는 노력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가나다순으로 배치되었다는 2만5000그루의 식물들은 각자 명패를 달고 자리를 지키니 모르던 이웃과 인사를 나누듯 그 이름들을 부르고 기억하게 한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서울로 7017이 아니었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도시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전이라면 불가능했던 위치와 높이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익숙하다 못해 지루했던 풍경이 이제는 시시각각 다른 표정으로 내 앞에 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좋을 수 있다. 앞으로 찾을 많은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서울로 7017 곳곳에 있는 높다란 둥근 콘크리트 화분. 자유로운 보행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여백 없는 600억원짜리 디자인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울로 7017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성격들은 서울역 고가도로가 가지고 태어난 것이지 디자인으로 새로이 생겨난 변화가 아니다.

전례들보다는 낫길 바랐고, 600억원짜리 청구서를 잊을 만큼 좋기를 바랐던 보행 고가는 각양각색의 문제를 드러낸다. 설계의 원안이 추구한 것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그대로라면, 디자인 공모에서 우승한 건축가와 그 안을 선택한 심사위원들에게 청구서를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울컥한다.

하이라인이나 쿨레 베르트의 녹지는 바닥에 뿌리를 두고 자라나며 보행로 곁을 지키지만, 서울로 7017은 둥근 화분에 이식된 자연이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폭 10m 남짓한 좁은 바닥에 옮겨놓은 거대한 화분의 크기도, 수량도, 위치도 보행자의 자유를 방해하고 걷는 내내 사람을 이리저리 밀쳐낸다.

공원을 설계한 건축가가 조경 전문가인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는 가족력을 흘리며 설득에 나설 만큼 녹지의 가치는 절박한 모양이지만, 식재의 지속가능성은 의문투성이다. 토심을 확보하기 위해 높아진 콘크리트 화분은 답답하고, 좁은 화분 속에서 뿌리내려 추운 겨울을 버티고 공해와 싸우며 언젠가는 우리에게 늠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나무들도 걱정이다.

햇볕 가릴 그늘 없는 것이 사소한 문제라고? 앉아서 쉴 자리 부족한 것도 투정이라고? 새로운 풍경과의 만남을 땡볕에 찡그리고 고단한 다리로 망치고 싶지도 않지만, 그 누구도 이런 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곳을 도심공원이라 하지 않는다. 그곳의 환경은 마주 앉아 천천히 대화를 나누기엔 터무니없고, 계속 밀려가다 구경을 마쳐야 빠져나오는 이케아 매장 같다.

원통형으로 맞춰진 시설들은 공간 효율이 떨어진다. 원형을 타고 오르내리는 계단은 좁아터져서 불편하고, 층계참이 없어 위험하다. 넓지 않은 보행가로에 공연장과 트램펄린까지…. 짧고 좁은 콘크리트 캔버스에 여백도 없이 너무 많은 그림을 담으려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상성 부족…화분 놓은 육교 같은 모습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일상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지금은 구경하려는 방문객으로 가득하지만 점차 점심이나 출퇴근을 포함한 이동을 위한 상시 이용객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돌아가도 괜찮고 좁아도 좋은 한적한 오솔길의 질서를 복잡한 도심에서 실현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적극적인 유희 공간도 있어야겠지만, 보행 고가라면 휴식을 원하는 시민에게는 온전한 사색과 독서와 대화의 기회가, 보행하는 시민에게는 큰 방해 없는 루트가 필요하다.

왜 하이라인은 공원이고 ‘서울 수목원’이라 주장하는 우리의 보행 고가는 화분 놓인 육교 같다는 소리를 들을까? 이 문제는 단순히 구체적이지 못한 건축주의 요구나 멋진 설계안에 숨겨진 허점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공사업은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예산이 큰 몫을 차지한다. 에이커(1에이커=1224평)당 연간 운영비가 일반 뉴욕 공원들은 1000만원이 채 안 되는데도, 하이라인은 150명 이상의 정규 직원이 관리하며 해마다 6억원가량을 쏟아부어 뉴욕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정도이다.

이에 비해 서울로 7017은 하이라인 10% 정도의 제한된 예산으로 고군분투 중이지만 여전히 뉴욕의 일반 공원 운영비보다는 대여섯 배 많은 예산이다. 인공 미인이 되려면 돈이 드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아직도 해결해나갈 문제가 쌓여 있고, 시시각각 삐져나올 크고 작은 관리와 운영 문제에 들 비용들로 해마다 새로운 청구서가 날아들까 걱정이지만, 어쩌겠는가? 유연한 자세로 시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개선해갈밖에.

글 안준석 공학박사·건축가,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