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 꽃, 혁명의 시를 만나는 북한산 숲길

장태동의 서울문학기행 김수영 시인의 흔적

등록 : 2016-04-14 17:22 수정 : 2016-04-14 17:26
4월을 4월답게 만드는 것이 있다. 산등성이 신록은 껍데기를 뚫고 나온 새싹의 함성이다. 일제히 피어나는 꽃들은 산천을 뒤덮는 ‘꽃사태’다. 뿌리부터 안간힘으로 길어 올린 생명의 빛이다. 허투루 빛나지 않는 우리들의 4월을 북한산 숲길에서 만난다.

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에서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지구 쪽으로 걷는다. 상가 거리를 지나면 북한산국립공원이 나온다.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 오른쪽에 김수영 시비가 보인다. 출발 지점부터 시비까지 약 1.8다. 시비에 시인의 시 <풀> 2연이 새겨져 있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김수영 시인의 시 <풀> 2연)

1968년 5월29일 김수영 시인은 <풀>이라는 제목의 시를 쓴다. 교과서에도 실린 이 시가 시인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잘 알려진 시다. 1968년 6월15일 밤 11시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좌석버스가 시인을 덮쳤다.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다음 날 아침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주머니에서 막내 동생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메모가 습관이었던 시인은 메모지가 없을 때에는 담배 종이, 서류 봉투 등 글자를 쓸 수 있는 것에다 메모를 했다. 메모가 시로 완성되는 시간은 고스란히 시인의 몫이었다. 쪽지에 적은 막내 동생의 이름… 막내 동생에 대한 시를 쓰고자 했던 것일까?

시인은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선영에 묻혔다. 이듬해 6월 현대문학사 주관으로 문우와 친지의 뜻을 모아 묘 앞에 시비를 세웠다. 시비는 199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991년 가족들이 뜻을 모아 시인의 묘를 개장하고 시신을 화장한 뒤 시비 아래 묻었다.

 

꽃으로 피어나는 시

김수영 시비부터 김수영 문학관까지 5 정도 되는 숲길을 걷는다. 북한산 둘레길 18구간(도봉옛길)과 19구간(방학동길)을 지나면 김수영 문학관이다.

시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서원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진달래가 핀 산길을 걷는다. ‘자운봉’ ‘우이암’ ‘도봉탐방지원센터’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나면 도봉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봉사에 도착한다. 낭창거리는 수양벚나무가 인상적인 도봉사를 구경하며 쉰다. 도봉사를 나와, 왔던 방향으로 가다 보면 북한산 둘레길 18구간인 ‘도봉옛길’ 입구가 나온다. 그곳부터는 ‘무수골’ ‘북한산 둘레길(방학동)’ 이정표를 따른다.

숲길에 피어난 진달래꽃에 햇볕이 든다. 햇볕 받은 꽃이 반짝거린다. 김수영 시인은 꽃과 관련된 시를 몇 편 안 썼는데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 같고/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한 잎의 꽃잎 같고/혁명 같고/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 같고/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김수영 시인의 <꽃잎 1> 중 부분)

숲길에 피어난 진달래꽃을 보며 시인의 외침을 떠올려 본다.

(좌측상단부터)1.김수영 문학기행 지도 2.김수영 문학관에 재현된 김수영 서재. 3. 전시된 김수영 육필 원고. 4.북한산 국립공원 도복지구에 있는 김수영 시비.

하늘에는 그림자가 없듯이

‘북한산 둘레길 도봉옛길’이 끝나는 곳이 무수골이다. 서울이 아닌 곳 같은 마을길을 따라간다. 세일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면 ‘북한산 둘레길 방학동길’이 시작된다.

쌍둥이 전망대에서 사방이 트인 전망을 감상한다. 개나리꽃, 벚꽃이 신록과 함께 빛나는 포도밭을 지나면 ‘북한산 둘레길 방학동길’이 끝난다. 그곳에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 묘’가 있고 그 주변에 ‘연산군 묘’ ‘원당샘’ ‘방학동 은행나무’ 등이 모여 있다.

원당샘을 지나 김수영 문학관에 도착한다. 8·15 광복, 6·25 한국전쟁, 4·19 혁명 등 격랑의 역사를 살아 낸 김수영 시인의 삶과 시들을 둘러본다.

원고지, 서류 봉투, 메모장에 써 내려간 시인의 육필 원고가 전시돼 있다. 시인의 서재를 재현한 곳에서 원고를 쓰던 탁자와 생전에 보던 책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이 시인의 시를 직접 낭송해서 녹음 파일을 만들 수 있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하늘에는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김수영 시인의 시 <하… 그림자가 없다> 중 일부)

김수영 시인은 4·19 혁명 전인 1960년 4월3일 이 시를 썼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그해 4월26일 또 한편의 시를 쓴다.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기념탑을 세우자/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김수영 시인의 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중 일부)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