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 사회적경제특구추진단이 운영하는 동네 식당 ‘열린밥상‘에서 주민들은 영양 갖춘 식사를 싼값에 하고, 청소, 간병 등의 서비스 정보도 얻을 수 있다
“5000원으로 어디에서 이렇게 먹을 수 있겠어? 밥해 먹기 힘든데 정말 고마운 일이지.”
광진구 구의동에서 혼자 사는 김종환(71)씨는 요즘 끼니 걱정을 덜었다. 동네 식당 ‘열린밥상’ 덕분이다. 반찬이 8~9가지나 되어 영양도 충분하고, 현미죽도 있어 잘 씹지 못하는 노인들도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그간 집에서 혼자 식사를 대충 때웠다는 김씨는 “한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어 건강 상태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강동원(71), 김초남(67)씨 부부는 단골손님이다. 부부는 오전에 근처 어린이대공원에 산책 갔다 오는 길에 열린밥상을 찾아 점심을 먹는다. 열린밥상이 문을 연 지난해 10월부터 거의 날마다 오고 있다는 강씨는 “주방이 훤히 보이고 음식도 맛있다”고 한다. 부인 김씨는 “노인복지관 식당과 달리 젊은 사람들도 같이 이용해 더 좋다”고 말한다.
40평에 70여석 규모의 한식 뷔페 ‘열린밥상’의 주인은 광진구 사회적경제특구추진단(돌봄특구추진단)이다. 추진단에는 복지유니온(노인용 영양식 개발·공급, 반찬 배달 서비스), 도우누리(간병 서비스), 인스케어코어(집 청소와 위생 관리), 한국아동국악협회(정서돌봄 서비스) 같은 사회적기업들이 참여한다. 여기에 광진구청과 사회적경제조직의 협의체이자 중간 지원 조직인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힘을 보태고 있다.
사회적경제특구란 지역 문제를 지역사회가 협력해 해결하는 사회적 경제 방식의 지역발전모델을 말한다. 서울시는 자치구마다 여건에 맞는 시민참여형 특화사업을 심사하고 선정해 예산을 지원한다. 시는 예비사업과 본사업으로 나눠, 본사업에서는 3년간 최대 5억원의 지원금을 준다.
광진구에서 사회적경제특구 사업(돌봄특구 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돌봄특구추진단의 목표는 ‘지역 기반 공동 돌봄 서비스 구축’이다. 돌봄특구추진단은 본격적인 사업에 앞서 2015년 노인과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들이 바라는 점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식사가 가장 큰 문제였다. 홀로 지내거나 부부 단둘이 지내는 노인들은 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가 힘들다는 응답이 많았다. 그래서 재가형 돌봄 서비스를 하는 지역 사회적기업들이 손잡고 앞장서서 만든 것이 열린밥상이다.
식당 운영을 맡은 장성오 복지유니온 대표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하는 많은 노인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정보 부족으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특구 사업 예산으로 지역 노인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알리고 체험해보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맞벌이 가정 등 돌봄 서비스 대상을 넓혀가며 지역경제 활성화 모델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광진구처럼 사회적기업들이 힘을 모아 사회적경제특구 사업을 진행하는 자치구는 지난해까지 6곳(광진·관악·노원·마포·성동·성북구)이었다. 관악구에서는 마을이 아이를 돌보는 육아 모델을 만들어가고, 노원구에서는 지역의 재사용 가게와 네트워크들이 ‘되살림 가게’라는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자원 순환 시스템을 확산시키고 있다.
마포구에서는 홍대 앞 문화예술인들이 대안적 문화산업 모델을, 성동구에서는 봉제·수제화 소공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의류패션 기술인들을 키워간다. 성북구에서는 장위동에서 주민들이 조합원과 노동자로 참여하는 지역관리협동조합을 만들어 주거환경정비 업무와 주민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올해에는 4곳(강동·강북·금천·은평)의 자치구에서 특구 사업이 시작되었다. 강동구 가죽패션 소공인 협업, 강북구 청년창업, 금천구 학교협동조합, 은평구 지역재생 모델 등이다.
사회적경제특구 조성에는 지난 5년간 서울시의 자치구 생태계 조성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서울시가 사회적 경제 활성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2012년부터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서울시는 정책 방향을 개별 사회적기업 지원에서 전체 생태계 조성으로 전환했다. 무엇보다 25개 자치구마다 지역에 기반을 두는 지원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한 사업 방향으로 잡아 추진했다.
사회적경제특구가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갖춰야 할 필요조건들이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기업들이 지역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어내야 하고, 민관 협력으로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박용수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광진구 돌봄특구의 경우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영양과 주거, 간병 등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만들려 한다. 지역의 노인들이 통합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려면 바우처 등 자치구나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회적경제특구는 사회적 경제와 시민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를 꾸준히 만들어, 사회적 경제의 인지도를 높여갈 것으로 기대된다. 강선섭 서울시 사회적경제 담당관은 “사회적기업들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해 돌봄, 보육, 주거, 환경 등 지역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자치구의 성공 사례들이 활발하게 공유되고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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